[생명의 말씀] 생명 되신 예수 그리스도

등록날짜 [ 2004-10-26 15:01:37 ]

요한복음 11:17~27
“예수께서 와서 보시니 나사로가 무덤에 있은지 이미 나흘이라 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가깝기가 한 오 리쯤 되매 많은 유대인이 마르다와 마리아에게 그 오라비의 일로 위문하러 왔더니 마르다는 예수 오신다는 말을 듣고 곧 나가 맞되 마리아는 집에 앉았더라 마르다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 마르다가 가로되 마지막 날 부활에는 다시 살 줄을 내가 아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줄 내가 믿나이다"


생명은 영원한 것
하나님은 어제도 계시고 오늘도 계시고 영원히 살아계신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영원히 살아 계신다는 것은 하나님 자신이 생명이심을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생명은 마감이 없고 제한이 없으며 영원한 것입니다. 우리 인간의 목숨은 생명이 아니기 때문에 칠십년, 팔십년을 살다가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것입니다.


육체는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가고,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혼은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을 포함한 세상의 모든 것들은 한계가 있고 천지간의 모든 것이 때를 따라서 마감되어 가는 것들뿐입니다.


그러나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은 영원한 생명이시기에 죽어도 살며 영원히 제한할 수도, 마감할 수도 없는 생명을 가지신 분이십니다. 그가 이 땅에 오셔서 채찍에 맞으시고 우리 인간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피 흘리시기까지 자기 안에 있는 생명을 우리에게 주셔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영원히 살기를 바라시는 주님의 애절한 사랑, 이 사랑의 절정으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죄에서, 저주에서, 지옥에서 나와서 영원한 생명으로 행복하기를 바라시는 주님의 열망대로 우리도 그를 믿음으로 영원히 사는 생명을 가진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부활의 믿음
하나님의 뜻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비록 자기 아들은 인간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 달려 죽을지라도 우리 인간은 그를 믿음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1장 25-26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는 예수를 믿음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그의 생명을 인류에게 주심을 말하는 것이며, 믿는 우리에게는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지는, 죽어도 다시 사는 부활을 말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12절 이하에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이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지 못하셨으리라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롬6:23)이기에 만약 예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시지 않았다면 그는 자기 죄 값으로 죽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부활하셨다는 것은 자기의 죄가 아님을 드러내는 것이니, 죽으신 것은 우리 인간의 죄를 짊어졌기 때문이며, 부활하셨다는 것은 그는 죄가 없으시다는 증거입니다. 바로 예수의 부활이 우리의 최고의 믿음인 것입니다.


생명 없는 자에게 생명을
이 지구상에 있는 모든 인간이 먹고 마시며 살고 있다고 할지라도 실상은 사는 것이 아니라, 젖을 먹는 어린 아이로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앞으로 백년 안에는 이 땅에 남아 있을 사람이 아무도 없고 모두가 다 죽어야 합니다. 오직 그 속에 예수의 생명이 있는 사람만 하늘나라에 가서 영원히 살게 될 것입니다. 영원히 사는 생명을 육신이 있을 때 믿음으로 가졌다고 하는 영광은 참으로 위대한 것입니다.


이 생명은 돈으로도 살 수 없고, 힘으로도 얻을 수 없고, 이 세상의 어떤 선덕으로도 가질 수 없는 오직 예수의 십자가의 피의 공로를 믿음으로만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생명을 가진 자보다 더 큰 부자가 어디 또 있겠습니까?


요한복음 14장 6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생명이시기에 그가 하신 모든 말씀이 생명이며, 그가 하신 모든 일들이 생명입니다. 이 땅에는 영원한 생명이 없기에 멸망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생명을 공급하기 위해서 우리를 부르시고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으니, 우리는 내 안에 있는 생명을 생명 없는 자들에게 전해주어서 그들도 우리와 같이 그 생명을 소유하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죽음에서, 영원한 지옥형벌에서 구원해 주신 하나님 앞에 우리는 참으로 진실한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돌려야 마땅합니다. 또한 구원받은 우리는 이 생명의 소식, 구원의 소식을 알지 못하고 멸망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서 그들도 살려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생명을 운반하는 수레로 땅 끝까지 한 사람도 멸망하는 자가 없도록, 고통당하는 자가 없도록, 저주받는 자가 없도록 전해주어서 그들에게도 생명이 공급되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의 목숨을 하나님의 일에, 영혼을 살리는 일에 소모품으로 사용당하는 것은 기쁘고 감사한 일입니다. 멸망하는 영혼 살려서 좋고, 주를 위해서 영혼 살리기 위해서 우리 목숨을 사용하신 만큼 위대한 보상으로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망의 법과 생명의 법
로마서 7장 22-24절에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라고 사도 바울이 이야기했습니다.


우리 안에는 하나님을 향해 선하게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마음이 있고 또한 끝없이 죄를 향해 끌고 가는 또 하나의 사망의 법이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육체는 죄를 이길 힘이 없으니 죄를 이기지 못하는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우리를 건져 주겠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로마서 8장 2절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고 했습니다. 육체로 죄를 이길 수 없는 인간인 이상 죄를 짓지 않는 육체는 단 한 사람도 없으니 오직 예수의 흘리신 피의 공로로만,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만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가 해방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죄악을 날마다 예수의 피의 공로 앞에 깨끗하게 씻어야 합니다.

변하지 않는 생명
예수 그리스도께서 역사하신 생명은 이념이 아니고, 추상적인 것이 아니고, 오직 그의 죽으심과 부활로 역사하신 실상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신 것은 우리에게 있어 속죄의 은총이며, 그의 부활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이 되었습니다. 자기 자신을 우리 인간에게 주시면서까지 우리가 영원한 생명으로 살기를 죽기까지 원하셨던 것입니다.


이 세상의 학문도 변하고, 역사도 변하고, 문명도 변하고, 지식도 변하고 모든 것이 다 변해도 하나님의 말씀과 그의 생명은 영원히 변하지 않습니다. 그가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는 이것이 우리에게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는 문화가 아닙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21세기를 맞이하여 교회도 변화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21세기가 어떻게 흘러가든지 교회는 문화의 변화대로 따라가야 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만 따라가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변하지 않는 한, 그 안에 있는 우리의 믿음도 생명도 영원히 변할 수 없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3장 8절에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고 했으며, 야고보서 1장 17절에는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고 했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이 다 변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변치 않으신다는 이것이 생명이며 우리의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는 불가능을 해결할 능력
요한일서 5장 12절에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생명을 가진 자에게서는 그 아들의 생명이 나타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가 찔리시고 상하심은 우리의 허물과 죄악을 해결해 주시기 위함이며, 그가 징계를 받으심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게 되었고 그가 채찍에 맞으심으로 우리는 나음을 입게 되었습니다(사53:5).


그가 죽으셨으므로 우리는 살아야 할 권리가 있고, 예수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라고 말씀하셨으니 우리는 그의 이름으로 구하는 것마다 응답 받아야 할 권리가 있는 것입니다. 또한 그가 성령으로 우리 안에 와 계시니 우리에게 그의 성품과 사랑과 능력과 그의 본질이 나타나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우리 안에 예수가 있다는 사실을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도록 예수가 확실하게 나타나 보여지도록 예수의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누가복음 13장 11-13절에 “십 팔년 동안을 귀신들려 앓으며 꼬부라져 조금도 펴지 못하는 한 여자가 있더라 예수께서 보시고 불러 이르시되 여자여 네가 네 병에서 놓였다 하시고 안수하시매 여자가 곧 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지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는 순간 질병이 떠나가고 자유를 얻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귀에만 들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몫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2장 22절에도 “그 때에 귀신들려 눈 멀고 벙어리 된 자를 데리고 왔거늘 예수께서 고쳐 주시매 그 벙어리가 말하며 보게 된지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자신의 몫이 되면 역사는 일어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은 그를 믿는 모든 자에게 영육간에 풍성한 것이니,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은 질병도, 저주도, 사망도 순간에 해결하실 능력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없기 때문에 질병도, 저주도, 사망도 오는 것이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풍성한 자에게는 영혼이 잘 되고, 범사가 잘 되며 육체가 강건하여 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지식
생명을 갈망하는 세상에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외치면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인류는 생명의 봄이 약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생명의 복음이 전파되어 우리 안에 임하는 순간 우리도 생명의 새봄을 맞이했습니다. 아론의 바싹 마른 지팡이에서 새싹이 나듯이 메마른 인류에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육간에 생명이 약동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영원한 생명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메마른 우리의 심령에도 생명의 새싹이 나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신앙은 철학이 아니라 생명입니다. 철학은 사람 속에서 나온 신념이나, 신앙은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며 약속인 것입니다. 골로새서 2장 8절에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 이것이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 학문을 좇음이요 그리스도를 좇음이 아니니라”고 했습니다. 예수가 주시는 생명은 상징이 아니고 실제 나타나는 새 생명인 것입니다. 생명은 문자가 아니고 살아 약동하는 능력이며 힘입니다(고후3:3-6).


세상 사람들에게 돈을 버는 이유를 물어보면 거의가 다 먹고 살기 위해서 번다고 말합니다. 물론 돈을 벌어서 먹고 사는 것도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들이 이 땅에서 살기 위해 몸부림을 쳤지만 세월 앞에 모두가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은 문화나 문명이 아니고, 돈이나 권력이 아니고, 지식이나 철학이 아니라 오직 예수뿐입니다.


영원한 생명의 능력이 메마른 지팡이에서도 싹을 틔우듯이, 메마른 우리의 심령에도 예수 그리스도의 풍성한 생명이 약동하기를 바랍니다. 오늘도 이와 같은 살아역사하는 생명의 이적이 우리 모두에게 역사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65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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