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속에서 감사

등록날짜 [ 2006-08-16 11:16:52 ]

창세기 4:1~15
아담이 그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잉태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 치는 자이었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이었더라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으나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심히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찜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찜이뇨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찌니라 가인이 그 아우 아벨에게 고하니라 그 후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 아우 아벨을 쳐 죽이니라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가로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가라사대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네가 밭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가인이 여호와께 고하되 내 죄벌이 너무 중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 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찌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가 나를 죽이겠나이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렇지 않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만나는 누구에게든지 죽임을 면케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예배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지으신 창조자이십니다. 그리고 자기가 지은 모든 만물을 사람에게 주시면서 소유하고 정복하고 다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창1:28). 이렇게 하나님은 최초의 인간 아담에게 에덴동산이라는 최고의 행복한 환경을 부여해 주시면서 사랑을 베푸셨습니다. 아담이 얼마나 감사와 기쁨 속에서 하나님께 최고의 영광을 돌리며 살았을까요? 들판에 뛰노는 짐승과 공중에 나는 새, 아름다운 산천초목을 보면서 그 모든 것을 다스릴 수 있음에 감사하며 감사의 절정에서 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귀는 아담에게 선악과를 먹게 하여 에덴에서 쫓겨나게 만들었습니다. 그 후 아담은 가인과 아벨이라는 아들을 낳았습니다. 가인과 아벨은 에덴동산에서 부모의 실패를 거울삼아 자기들만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성공시키고 하나님을 찾고 싶은 소망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제사를 드린 아벨의 제물만 열납하시고,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드린 가인의 제물은 열납하지 않으셨습니다. 예물이 열납되었다는 것은 바로 그 예물을 가지고 하나님을 만났다는 것을 말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예배를 드릴 때도 하나님을 만날 만한 정신과, 하나님을 만날 만한 예물, 하나님을 만날 만한 믿음을 가지고 예배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을 만날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님이 나를 만나주시는지 하나님을 바로 알고 만나야 합니다. 그런데 가인은 무엇으로 어떻게 제사를 드려야 하나님이 만나주시고 제물을 흠향하시는지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자기 임의대로 농사한 것 중에 최고의 것으로 드리면 되겠다는 신념의 믿음으로 드렸던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내가 이렇게 하면 되겠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요구를 받아들이고 하나님이 하신 말씀에 동의하는 믿음이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신념의 믿음을 버리고 하나님의 요구가 무엇인지 알아서 그 요구에 동의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길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히11:1~2). 아벨이 양을 잡은 것은, 아비로부터 하나님께 범한 죄를 현재로써는 전혀 해결할 수 없지만, 양이 피 흘려 죽듯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어린 양으로 와서 피 흘려 제물이 되어 죽으시고 온 세상 죄를 다 짊어지고 해결하실 것이라는 내일을 바라본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만나고 싶어도 죄의 담이 가로 막혀서 만날 수가 없습니다(사59:1~3). 죄 값은 사망인지라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내 죄를 해결하셔서 하나님과 나와 만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고, 그 증거로 성령이 내 안에 와 계십니다. 이는 곧 죄 사함 받은 증거요, 그가 피 흘리시고 내 죄를 사했다는 증거니, 하나님과 인간의 문제 해결은 오직 피에 있음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죄 값은 사망이기 때문에 죽음의 증거가 있어야 죄가 해결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린 양을 잡아 제사를 드린 것은 예수의 죽음을 희미하게나마 미리 보고 믿음으로 드린 것입니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제물은 곡식이 아니라 피 흘리는 양이었습니다. 우리가 예배하고 충성하고 찬양하고 순종하는 중심 속에 “나는 예수의 피 공로로 구원받았으니 그 은혜에 감사합니다.” 하는 정신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가인과 같이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일방적으로 자기 마음대로 정하여 제물을 드리는 것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소치요, 교만하고 오만불손하게 하나님을 무시하고 우롱하는 소치임을 알아야 합니다.

감사로 승리하는 삶
아벨의 피에 사무친 호소를 하나님이 받아들이셨듯이, 우리의 감사와 찬양과 예배도 그렇게 하나님을 향한 태도가 바로 되어야 하나님이 받으십니다.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창4:10)고 말씀하신 것을 보면, 감사를 상달시킨 자는 죽어서도 하나님을 움직일 만큼 하나님의 관심사 속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고 말씀하셨으니, 하나님을 향한 모든 행위는 예수라는 기점을 통과해야 합니다. 그밖의 길로는 하나님께 나갈 방법이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서 살 찢고 흘리신 피의 공로를 수레 삼아 하나님께 찬양과 예배와 감사와 충성과 순종을 올릴 때 하나님은 예수의 피를 보시고 우리의 모든 것을 받아주십니다. 가인처럼 아무리 이 땅에서 나오는 최고의 것을 드려 감사한다 해도 하나님은 예수의 십자가의 피 공로를 망각한 감사는 받지 않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기뻐하고 기도하고 감사하는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살전5:16~18).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안에서 항상 기뻐하고 기도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그러나 악한 마귀역사는 우리가 하나님과 감사로 하나 되려고 할 때 끊임없이 시험 들게 하고 넘어지게 합니다. 마귀는 감사하는 일을 방해하고, 감사한 후에도 후회하게 만듭니다.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요일3:8)
마귀가 천국을 빼앗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빼앗고 신앙생활을 빼앗기 위해 온갖 수단을 부리며 방해를 하고 있지만, 우리는 마귀에게 당하지 않도록 날마다 예수의 피 공로에 감사로 젖어 있어야 합니다. 아무도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어놓을 수 없도록 평생에 오직 감사로 승리를 가지고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감사로 자손에게 축복의 유업을
아브라함은 갈대아 우르를 떠나서 가는 곳마다 제단을 쌓고 짐승을 잡아 피를 흘리면서 하나님께 감사의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 감사가 얼마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던지, 하나님께서는 그 감사에 감동하셔서 그의 자손이 천 대에 이르기까지 복을 주겠다고 결정하셨습니다. 우리도 이렇게 자손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축복을 유업으로 물려줄 수 있도록 예수의 피 공로에 대한 감사가 넘치기를 바라고, 후손까지 복을 받을 만한 감사와 예배와 충성으로 살기를 바랍니다.
영원한 멸망에서 건지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 공로가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사건인 것처럼, 당신이 올려드리는 감사도 하나님께서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충격적인 사건, 하나님의 가슴을 뒤흔들 만한 사건이 되도록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복 받는 길입니다.
미국이 잘 사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신대륙을 발견하고 미국으로 건너온 자들은 하나님께 감사예배를 드리고 교회를 짓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에 앞장섰습니다. 그래서 그 복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하나님을 가장 기쁘시게 했을 때 경제가 가장 크게 성장한 것처럼, 앞으로 누구든지 더욱 하나님을 감동시켜서 우리 민족이 복을 받을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민족의 장래가 기독교인과 교회에 있음을 알고 후손에게 자손만대에 약속된 하나님의 복을 유업으로 물려줄 수 있는 조상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시기에 가장 편한 장소가 감사하는 자의 마음이요, 성령께서 계시기에 가장 편한 장소가 감사하는 자의 거룩하고 신령한 마음입니다. 그러므로 믿음과 신앙은 전혀 감사를 피할 수가 없습니다. 아브라함이 독자를 바친 것처럼, 입다가 무남독녀 외딸을 바친 것처럼,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일에 물질과 목숨에도 제한 받지 말기를 바랍니다.
예수의 십자가의 피 소리가 없는 자에게는 감사가 없고, 예수의 십자가의 피 소리가 있는 자에게는 감사가 넘칠 것입니다. 우리 모두 예수의 피 공로에 감사함으로 예배하며 찬양하며 기도하며 순종하며 충성합시다. 만물을 주신 것도 감사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피 공로를 붙잡고 감사하여 하나님과 최고의 감사의 대로를 열고 그 대로로 쏟아지는 축복이 영육 간에 풍성하도록 합시다. 감사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여 성공하는 자가 되자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영광 돌릴 진실한 감사가 가슴 속에 사무치게 하시고, 예수의 피에 젖은 감사, 피의 공로로 죄와 지옥과 멸망과 저주와 파멸에서 나온 것에 대한 위대한 감사가 내 속에서 충만하게 넘치게 하옵소서.”

위 글은 교회신문 <92호> 기사입니다.


    아이디 로그인

    아이디 회원가입을 하시겠습니까?
    회원가입 바로가기

    아이디/비번 찾기

    소셜 로그인

    연세광장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