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말씀] 엘리야의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

등록날짜 [ 2009-07-14 16:55:04 ]

엘리사가 엘리야를 사모함으로 좇았을 때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와 구원의 은총 사모하기를


열왕기하 2:1-14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나를 네게서 취하시기 전에 내가 네게 어떻게 할 것을 구하라 엘리사가 가로되 당신의 영감이 갑절이나 내게 있기를 구하나이다...나를 네게서 취하시는 것을 네가 보면 그 일이 네게 이루려니와 그렇지 않으면 이루지 아니하리라 하고...홀연히 불수레와 불말들이 두 사람을 격하고 엘리야가 회리바람을 타고 승천하더라...엘리야의 몸에서 떨어진 겉옷을 가지고 물을 치며 가로되 엘리야의 하나님 여호와는 어디 계시니이까 하고 저도 물을 치매 물이 이리 저리 갈라지고 엘리사가 건너니라



하나님이 예수로 정하신 인류구원의 뜻
하나님은 모든 일을 하시기 전에 모든 일을 계획하시는 설계자시며, 또한 모든 일을 행하시는 일에 단 한 가지도 못하실 것이 없으신 전능하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사역을 위하여 인간을 지으셨고, 자기가 지으신 인간을 사용하실 때에는 자기의 전능하신 능력을 주셔서 필요에 따라 값지게 사용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자신이 정하신 뜻을 이 땅의 인간에게 이루려 하심은, 인간이 죄 아래서 죄 값으로 저주 받고, 죄 값으로 지옥 가고, 죄 값으로 멸망하는 일을 해결하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을 얻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요한복음 6장 38~40절에 “내가 하늘로서 내려 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설계와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인류를 다 구원하는 것입니다. 바로 염려에서 구원, 고통에서 구원, 가난에서 구원, 저주에서 구원, 수많은 문제에서 구원, 죄에서 구원, 멸망에서 구원, 지옥에서 인류를 구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인류 구원을 이루시기 위하여 선지자들과 제사장들과 기타 필요한 모든 자를 택하여 보내셨으니,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총을 예비하기 위하여 보낸 자들이었습니다(마3:3). 이사야 선지자는 예수 그리스도가 육체를 입고 와서 인류를 위해 찔리고 상하고 채찍에 맞고 징계를 받으실 것을 예언하였고(사53:5-6), 요한 선지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 죄, 즉 인류의 죄를 담당하고 죽어야 하는 어린양이라고 선포했습니다(요1:29).

이런 소식을 구체적으로 전하면서 율법을 통해서 인간이 죄인임을 깨닫게 하시고, 하나님 말씀을 통해서 인간이 죄인임을 깨닫게 하시고, 죄인 된 자는 누구든지 그 죄를 해결할 예수를 간절히 기다리게 하는 일을 위해서 선지자를 보내신 것이고, 그들은 이 일을 위해서 예비된 것입니다.

믿는 자에게는 보편적인 능력과 권세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시기 전에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하기 위하여 왔던 선지자들에게 능력이 있고 이적도 있었습니다. 죽은 자를 살리기도 하고 하늘에서 불도 끌어내리는 엄청난 일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마귀와 죄를 멸하는 복음은 없었습니다. 세상 권세 잡은 악한 영들과 죄로 멸망하는 문제는 전혀 해결할 수 없었습니다. 오직 이것은 예수에게만 있었으니, 이것이 인류구원을 위하여, 나를 구원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정하신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역사하시던 절대 권세와 이적의 복음을 하나님의 뜻 곧 자기 사역을 위하여 제자들에게 주셨으니, 제자들은 주의 일을 주님의 뜻대로 행했습니다(마10:5-8, 요14:12). 우리가 주의 일을 하는 것은 지식이나 학력, 세상의 부귀와 명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얼마나 믿고 쓰시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성경 전체를 통해서 말하고 있는 것은 과거 사람이 아니요, 미래 사람이 아니요, 오늘 그 말씀을 읽고 있는 내가 당사자요,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할 당사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명령으로 듣고 그 말씀대로 행해야 할 당사자입니다.

또한 예수께서 능력을 제자들에게만 주신 것이 아니라 믿는 모든 자들에게 주셨으니,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로 사는 권세와 능력과 복음은 믿는 모든 자들에게 보편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를 사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치는 권세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 공로를 믿는 자에게 죄 사함과 함께 나타나는 성령 안에서 이루어지는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믿음은 주님을 분명히 알고 소유하는 것이며, 믿음의 이치와 믿음 안에 역사하시는 주님의 뜻을 분명하게 알면 자연스럽게 믿어지고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은총인 십자가의 피 공로를 알고 믿고 자유를 누리는 그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전지하고 전능하신 권세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실 것을 믿고 소유하는 자에게 절대로 제한하지 아니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의 권세는 죄와 악한 영을 지배하는 예수 안에 믿음 있는 자의 기업이요, 영원히 누릴 생명과 영생의 자본인 것입니다. 무기력한 생활에서 능력 있게 권세 있게 살기 원한다면 엘리야의 하나님이 곧 엘리사의 하나님이었던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와 구원의 은총을 엘리사가 엘리야를 좇아 얻은 것과 같이 절대적으로 믿고 사모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사모할 때 나타나는 능력의 역사
엘리사의 사모함을 보십시오. 길갈에서 벧엘로, 벧엘에서 여리고로, 여리고에서 요단으로, 요단에서 요단강을 건너가기까지, 즉 엘리야 선생이 회오리바람으로 올라감을 볼 때까지 그토록 사모하였습니다. 그리고 그토록 사모한 결과 약속대로 갑절의 영감을 받았습니다.

사모하십시오. 주님께서는 ‘나를 믿는 자는 나보다 더 큰일을 하리라’고 하셨고(요14:12), 믿는 자들에게는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치는 표적이 따른다고 하셨으니(막16:18), 엘리사와 같은 이적이 있을 때까지 사모하고 또 사모하여 얻어내십시오. 성경의 모든 말씀은 내게도 주신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주신 말씀이 내게 주신 말씀이요, 노아에게 주신 말씀이 내게 주신 말씀이요, 다윗에게 주신 말씀이 내게 주신 말씀이요, 모세에게 주신 말씀도 내게 주신 말씀입니다. 내가 그 말씀을 믿고 받아들이면서 사모함으로 움직일 때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당신에게 불가능이 있습니까? 무엇이든지 내 이름으로 구하라 하셨으니 주겠다고 하신 약속을 이룰 때까지 믿고 구하십시오. 응답을 사모하여 해결하십시오. 성령은 능히 행하실 것이요(행1:8), 응답은 믿는 자의 권리입니다. 사모하는 자에게, 주님을 인정하는 자에게, 오직 주님의 말씀을 절대 순종하는 자에게, 주님은 세상 끝 날까지 함께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28:20).

영혼 구원을 위해 능력을 사모하라
예수의 권세와 능력과 복음은 그를 믿는 자에게, 예수께서 내게 주셨다고 사모하고 소유하는 자에게, 누구에게나 똑같이 보편적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죄를 사하고 악한 영을 몰아내고 병을 고치고 저주를 해결하고 불가능을 파괴하는 권세는, 예수의 십자가의 피 공로를 믿는 자에게 죄 사함과 함께 나타나는 성령 안에서 이루어지는 당연한 사건입니다.

선지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하듯이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예비하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로 이루신 인류구원의 하나님의 뜻을 예수와 같이 제자와 같이 마귀와 죄를 파괴시키고 멸망하는 영혼을 살려내기 위하여, 우리도 성령 안에서 주님과 같은 능력을 제자와 같은 권세를 사모합시다. 그리고 멸망하는 영혼 구원을 위해서 제한 없이 사용합시다. 또한 자신의 고통과 해방을 위해서 사용합시다.

엘리야의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요, 곧 엘리사와 같이 사모하는 자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사모하는 자에게 주시는 능력으로 주님과 뜻을 같이하여 예수의 일을 합시다. 곧 그 권세와 능력으로 복음을 전하여 멸망하는 영혼을 살려냅시다.!!


■ 기도합시다
주여, 내게 주신 주님의 약속과 은혜를 소유함으로 내게서 치료가 일어나고 고통에서 자유하게 하옵소서. 제자와 같이 권능을 행하게 하옵소서. 엘리사와 같이 사모하여 응답을 얻게 하옵소서.

위 글은 교회신문 <162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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