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말씀] 자기 영혼의 때를 위하여

등록날짜 [ 2010-09-01 07:29:33 ]

 누가복음 12장 13~21절
“무리 중에 한 사람이 이르되 선생님 내 형을 명하여 유업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 하니 이르시되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 하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또 비유로 저희에게 일러 가라사대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심중에 생각하여 가로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꼬 하고 또 가로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육체가 있는 동안 주 위해 값지게 살고
영혼의 때, ‘영원한 가치’로 보상받아야

하나님은 창조자이십니다. 하나님은 자기가 창조한 모든 만물을 친히 돌보시고 기르십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에 육체와 영혼으로 창조하셨습니다. 바로 이 땅에 태어나서 세월 속에 살다가 세월 속에서 한 줌의 흙으로 사라져 영원히 없어져 버리는 육체라고 하는 존재와, 육체와 함께 존재하다가 육체가 세월 속에서 사라지는 순간에 육체와 세월을 벗어나서 영원히 존재하는 영혼이라는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육체는 제한된 삶을 끝내면 사라져 없어지는 시한적(時限的) 존재요, 영혼은 영원히 살아야 할 무한적(無限的) 존재입니다. 인간은 육체인 나라고 하는 존재보다 영혼인 나라고 하는 존재가 절대 더 소중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기 자신에 대하여 무엇이 우선이며 무엇이 소중한가를 알아야 합니다. 모든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서 육체로 살다가 영으로 가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양식을 우선하라
본문에 무리 중 한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께로 왔습니다. 그는 형으로부터 아버지의 유산을 모조리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분명히 자식으로서 아버지의 유산을 물려받을 권리가 있는데, 형이 아버지 재산을 소유할 아우의 법적 권리를 인정하지 아니하고 독식한 것입니다.

아우는 이와 같은 형의 횡포와 탐욕 앞에 속수무책이었습니다. 그때 그 아우는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무슨 말씀이든지 하시면 그의 목소리가 들리는 순간에 수많은 이적과 능력이 나타나는 현장을 얼마나 많이 보았겠습니까? 예수께서 명하시자 앞을 못 보던 자가 눈을 떠서 보게 되고, 중풍병으로 걷지 못하던 자가 침상을 들고 걷게 되고, 심지어 죽었던 자도 살아났습니다. 이와 같은 수많은 이적의 현장을 바라보면서, 이분이면 자기 형도 꼼짝 못하고 아버지의 유산을 나눠줄 것으로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그 아우는 예수께 찾아와 “선생님, 내 형을 명하여 유업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라고 부탁을 드렸습니다.

예수께서 “네 형이 욕심이 많구나. 네 형에게 재산을 나눠 가지라고 말하리라” 하실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그는 예수께 일언지하(一言之下)에 거절당하고 말았습니다(눅12:14). 주님은 오히려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고 명하시면서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라
사람은 누구든지 육체를 가지고 있는 한 육체를 위한 재물, 육체를 위한 소유, 육체를 위한 권력, 육체를 위한 명예를 우선합니다. 그것이 육체에게는 엄청난 도움이 되고 엄청난 자랑이 되고 남보다 우월하게 살아가는 데 큰 힘이 됩니다. 그러나 인간에게 육체를 위한 소유가 아무리 넉넉해도 육체를 위한 재물 자체는 결코 육체의 생명도 될 수 없고 영혼의 생명도 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수많은 부귀와 영광과 재물을 가지고 이 땅에서 산다 할지라도 자신에게 주어진 연수가 되었을 때 죽음을 거부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육체의 세월이라는 권세 앞에는 어떤 지식도 재물도 미모도 건강도 과학도 힘을 쓸 수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우리 인간에게 이 땅에서 잘 사는 양식을 주러 오신 것이 아닙니다. 죄 아래서 죗값으로 사망을 선고받은, 이미 영원히 죽은 자들에게 영원히 사는 생명을 주러 오신 것입니다. 이 땅에서 70~80년 잘 사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영혼의 때에 도움이 되는 영원한 축복입니다. 그래서 “내 살을 받아먹어라 참된 양식이요, 내 피를 받아 마셔라 참된 음료니라”고 말씀하시면서(요6:53~57) 이것은 곧 생명을 언약하는 영원한 양식이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이 아침을 먹고 점심을 먹고 저녁을 먹지만 자고 나면 또 배가 고픕니다. 식사 때마다 육체는 또 먹으라고 자꾸 요구합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주시는 신령한 양식은 영원한 배부름을 주는 생명의 양식인 것입니다.

또한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아야 한다고 가르치셨습니다(마4:4).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는 형과 유업을 나누고자 한 그 사람과 예수님과 함께 있던 무리에게 무엇이 우선인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본문의 말씀과 같이 만약에 오늘 밤에 하나님이 영혼을 불러갈 자가 있다면 오늘 그가 입고 있는 옷부터 그가 가진 모든 것들이 전부 그의 소유가 될 수 있겠습니까? 목숨이 있을 때에는 세상 것들이 소유 같지만 목숨이 끝나는 순간에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오직 우리가 가져야 하는 소유는 하나님이 주신 생명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소유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육체는 언제 사라질지 아무도 모릅니다. 인간의 삶은 자신의 권리로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눅12:16~21). 그러므로 인간은 이 땅에서 자기 소유로 살아갈 권리가 전혀 없습니다. 그래서 오래 살고 싶어도 일찍 죽기도 하고, 일찍 죽고 싶어도 오래오래 살기도 합니다.

하나님만이 인간의 생사화복에 절대 주관자이십니다. 인간이 이 땅에서 아무리 발버둥쳐 봐도 생사 주관자의 처분에 달렸습니다. 우리는 언제 어느 때에 어디서 무엇을 하다 떠날지 아무도 모릅니다. 오직 절대 주관자이신 하나님만이 아실 뿐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자기 자신이 영적 존재로서 영적인 생명을 예수로부터 얻어야 한다는 사실을 분명하고 확실하게 알고 소유하여 천국에서 영원히 살 기업을 확보해야 합니다.


                                                                                            일러스트/박철호

자기 영혼의 때를 위해 살라
누가복음 16장에는 예수께서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육신의 때와 영혼의 때에 대해 말씀한 것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부자는 음부에서 불꽃 가운데서 고통스럽게 몸부림쳤습니다. 그러나 거지 나사로는 낙원에서 행복했습니다. 이 땅에서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영원히 천국에서 살 생명을 확보했느냐, 못했느냐가 영혼의 때의 행복을 결정하는 중요한 문제, 아니 절대적인 영원한 문제임을 인식시켜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영혼이 세상에서 육체와 함께 있을 때만이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확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내 영혼이 내 육체에 함께 있는 동안만 마귀와 죄와 저주와 사망과 지긋지긋한 지옥을 해결할 수 있는 시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과 그의 부활은 우리의 생명을 파괴한 마귀와 죄와 사망을 단번에 종결시킨 유일무이한 절대적인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육신이 있는 동안만 예수 그리스도로 죄 사함 받고 마귀와 죄와 사망과 지옥에서 나와서 생명과 천국을 소유할 시간입니다.

그러므로 육신을 위하여 육신이 존재하다 그 육신이 끝나면 그 영혼이 그 절망적인 지옥을 어떻게 피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육신이 이 땅에 있을 때에 육신의 때를 아낌없이 자기 영혼의 때를 위해 살아야 합니다. 아무든지 자기 영혼을 위하여 자기 육신의 때를 살지 않는 자는 지옥의 절망적인 고통을 피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주시고 육신의 때를 주신 것은 자기 영혼을 죄에서 지옥에서 구원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과 여유를 주신 것입니다.

누구든지 소출이 풍성한 농부와 같이 오늘 밤 자기 영혼이 육신을 떠나야 할 상황을 전혀 모른 채 재물을 위하여 육신의 때라는 세월을 다 써 버리면 자기 영혼을 위하여 살 시간을 영영 잃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 여러분은 육신을 위한 물질을 우선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자기 영혼을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우선하고 있습니까? ‘자기 영혼의 때를 위하여’가 우선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주님의 명령이요, 자기 영혼을 사랑하는 사람의 의식인 것입니다.

당신은 육신의 불황 해결이 우선입니까? 아니면 영적 불황 해결이 우선입니까? 영혼의 때의 영원한 생명을 위하여 선택하십시오. 제한된 재물과 육신보다, 제한 없는 생명을 우선하시기 바랍니다. 

■ 기도합시다
"주여, 내가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내 영혼의 때를 위하여 육체의 때를 값지게 살게 도와주시옵소서."


위 글은 교회신문 <206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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