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말씀]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등록날짜 [ 2015-11-03 20:52:03 ]

주님이 바로 나를 위해 죽기까지 희생하신 것처럼
나도 그 모습 그대로 이웃에게 그 사랑을 재현해야


요한복음 21장 15~19절
“저희가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또 두 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양을 치라 하시고 세 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가로되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양을 먹이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젊어서는 네가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치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하나님은 영원한 통치자이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통치하되 사랑과 은혜와 공의로 다스리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인간으로부터 영광과 존귀와 높임을 영원히 받을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자기 영광을 위하여 지으셨으며, 온 세계가 하나님을 위하여 존재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땅 어디를 가나 하나님께만 영광이 있을 뿐입니다.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롬11:36).

그런데도 인간이 하나님께 범죄하여 멸망하게 되었고, 하나님을 떠나 영원한 형벌을 피치 못하게 되었을 때는 하나님께서 친히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인간을 죄에서 찾아 구원하셨으니, 우리는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며 살아야 합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10:31).

하나님께서 이 땅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 인간의 구주이십니다.

예수를 주라고 시인하는 자마다 자기를 구원하신 주를 사랑하는 것이 도리요, 주를 위하여 충성하는 것은 당연지사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주께 순종하는 것이 신앙 인격을 가진 자로서 마땅한 일입니다.

예수를 따르던 제자 베드로
주님은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 잡던 어부 베드로를 불러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마4:19)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16:16)라고 고백하여 예수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마16:17)라는 칭찬을 받기도 했습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 심문을 받고 고통 속에 죽었다가 삼 일 만에 살아날 것을 가르치실 때는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마16:22)라고 말했다가 “사단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마16:23)라는 말씀을 듣기도 했습니다.

주님이 죽음을 앞두고 주의 만찬을 마친 다음 “너희들이 다 나를 버릴 것”이라고 말씀하시자 베드로는 절대로 자신은 주를 버리지 않겠노라고 호언장담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닭 울기 전에 네가 나를 세 번 부인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26:34).


일러스트/노혜지

그날 저녁 예수께서 군병들에게 이끌려 가야바의 뜰로 끌려가시자 베드로는 슬그머니 뒤따라가서 선생님이 당하는 고난을 멀찌감치 서서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저러다가 능력을 나타내시겠지. 죽은 자도 살리고, 귀신도 쫓고, 문둥병도 고치고, 앉은뱅이도 일으키고,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도 먹였는데, 전능하신 분이 무엇을 못 하랴’ 생각했을 겁니다.

그때 옆에 있던 사람이 베드로에게 “너도 예수와 한 당이 아니냐”고 묻자 아니라며 자리를 피했습니다. 그렇게 연이어 두 번을 더 예수를 모른다며 부인하자 곧 닭이 울었습니다(마26:74). 주를 부인하지 않겠다고 그렇게도 큰소리치더니 말입니다.

주를 좇는 일에 가정도, 돈도, 바다도 버렸는데 목숨은 선뜻 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닭 우는 소리를 듣자 주님이 하신 말씀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 심히 울며 통곡했습니다. 그래도 가야바의 안뜰로 뛰어 들어가진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신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이신데, 율법에 의해서 신성모독죄라는 죄목으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에 오르셨습니다. 가장 행악자만 처형해서 죽이는 십자가, 그 저주의 나무에 달려서 주님이 죽으셨습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시기 수백 년 전에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하기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53:5~6)라고 했습니다.

그 예언의 말씀을 수백 년 후에 하나님의 아들이 와서 이루셨습니다. 이 사실을 믿기만 하면 질병도 저주도 지옥도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주님 사랑에서 역사되고, 우리의 구원의 생명도 주님 사랑에서 시작되며, 오늘의 예배도 주님 사랑에서 시작됩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율법은 인간을 사랑하시려는 수단과 방법이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복음은 사랑의 실천입니다.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약2:26).

하나님은 이와 같이 인간을 향한 사랑의 방법과 실천을 예수 그리스도로 이루셨으니, 영원히 영광을 받아 마땅하십니다.

이같이 은혜 베푸신 주님을 섬기노라 하면서, 사랑하노라 하면서, 믿노라 하면서 섬기지 아니하고, 사랑하지 아니하고, 믿지 아니하면 그는 하나님을 기만하는 자요, 거짓말하는 자요, 하나님을 속이고 자기 신앙양심을 속이는 죄인일 뿐입니다.

주님의 사랑을 이루는 복음 전도
주님이 부활하신 다음에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조반을 잡수실 때 그토록 주님을 부인했던 제자 베드로에게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고 세 번을 물으셨습니다.

세 번씩이나 물으시니 베드로가 근심했다고 했습니다. 그때 주님을 세 번씩이나 부인한 자기 과거가 떠올랐을 것입니다.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내 어린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젊어서는 네가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치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큰 복은 하나님의 아들이 나 위해 죽으셨듯이 나도 이웃의 영혼이 멸망하지 않도록 전도하다가 죽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 영광 돌릴 가장 큰 일입니다.

주님이 마지막 승천 직전에 하신 말씀도 전도하라는 말씀입니다. 베드로처럼 전도하다가 전도를 가로막는 자들이 죽이려 할지라도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다가 죽는 것이 가장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주님을 믿고, 주님을 섬기고, 주님을 사랑하는 일은 하나입니다. 주님을 믿는 자는 주님의 모든 것을 사랑합니다(요21:15). 그러므로 주님을 사랑하는 자에게 율법의 완성이 이루어졌고, 복음에 순종함으로 그 사랑을 체험하게 됩니다.

주님의 사랑을 받은 자에게는 주님의 사랑이 그 안에 있고, 그 주님의 사랑을 나타내서 주님이 나를 사랑함과 같이 나도 이웃을 사랑하게 됩니다.

주님은 자기를 사랑하는 자에게 사명을 주셨으니 주님의 어린양을 먹이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또 주님을 사랑하는 자에게 주님의 양을 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것은 주님이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는 일이요, 주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를 피 흘려 죽기까지 사랑하신 것과 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이웃을 사랑하지 못하여 그들이 멸망한다면 우리는 그 멸망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주님이 우리를 위하여 책임을 다하여 죽기까지 희생하신 것처럼, 우리도 우리 위해 희생하신 주님의 모습대로 그 사랑을 재현해야 합니다.

이것이 주님의 사랑이요, 주님 명령에 순종하는 길입니다. 주님은 사랑으로 통치하시고 사랑으로 명령하셨습니다. 주님 사랑에 감동된 자만이 주님 사랑의 명령에 순종할 것입니다.

인생을 길게 살아봤자 100년입니다. 그 세월이 끝나고 나면 내가 죄 아래서 태어났으니 죄로 말미암아 심판 받고 영원히 지옥 가야 되는데, 많은 사람이 이 사실을 모릅니다.

그런데 어디서도 죄를 다루지 않습니다. 그저 기독교만 죄를 다룹니다. 인간이 창조한 하나님을 도전하여 죄를 짓고 그 죗값으로 죽게 되었는데, 여기서 살려내는 길은 죗값을 갚는 것입니다.

죗값인 사망을 갚아 줄 자는 죄 없는 하나님의 아들밖에 없으니, 이 사실을 믿고 회개하면 지옥 신세를 면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내 인생이 다하기 전에 예수를 만나 예수 믿고 천국 가게 되었다는 사실이 가장 영광스럽고 행복한 일입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457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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