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말씀] 생명의 성령의 새 법

등록날짜 [ 2016-04-05 11:03:29 ]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을 만나 생명을 얻고
주님 부르시는 날까지 믿음과 성령으로 승리해야

로마서 8장 1~2절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하나님은 영원히 의로우십니다. 하나님은 의로우시기에 영원한 생명이요, 영원히 사십니다. 만약에 하나님도 죄가 있으시다면 반드시 죗값으로 죽으셔야 하나 죄가 없으시기에 영원히 사십니다. 하나님이 영원히 사시는 이유는 의로우시기 때문이요, 거룩하시기 때문이요, 선하시기 때문이요, 신령하시기 때문이요, 원수라도 사랑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의에 도전하여 하나님과 반대되는 이념은 어떠한 것이라도 죄가 되나니, 이런 자는 하나님의 심판을 영원히 피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의는 곧 생명이기에 하나님의 의에 도전하는 자는 하나님의 생명에 도전하는 자입니다.


죄로 멸망하게 된 인류
하나님의 말씀은 “하지 말라” 하는 것과 “하라” 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하지 말라”라는 말씀은 소극적인 명령입니다. 그러나 “하라” 하신 말씀은 적극적인 명령입니다. “하지 말라” 하신 것은 가만히 있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나 “하라” 하신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구약 시대에는 다 “하지 말라”로 되어 있습니다.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우상숭배 하지 말라”…. 그러나 신약 시대에는 “복음을 전파하라” “사랑하라” “기도하라”, 이렇게 “하라”는 말씀으로 되어 있습니다.

예수 복음을 증거하는 일에는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가서라도 예수 증인이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행1:8). 누구든지 하라는 말씀대로 하지 않고, 하지 말라는 말씀을 어긴다면 그 죗값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전혀 피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아담에게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소극적인 명령을 하셨습니다. 안 먹고 가만히 있으면 됩니다. 그런데 마귀가 “선악과를 먹으면 눈이 밝아지고 선악도 알게 되고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고 궤계를 부리고 속이자 아담은 마귀의 말을 믿고 선악과를 먹어 하나님께 죄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 인류는 죗값으로 오는 고통과 저주와 정녕 죽게 되는 비참한 최후를 피할 수 없게 됐습니다. 땀 흘려서 먹고살아야 되고, 자식 낳고 키우느라 죽을 고생을 합니다. 죗값으로 병도 오고 저주도 오고 가난도 오고 수많은 문제가 생겨났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이 선악과를 먹기 전에는 없었던 불행한 사건들이 죄를 지은 후부터 다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이 이 세상에는 전혀 없습니다.

마귀는 에덴동산에서부터 죄를 짓게 한 자요, 인류를 멸망에 이르게 한 악한 자입니다. 인류가 에덴동산에서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여 도입한 죄의 값은 사망이며, 사망은 영원한 지옥 형벌을 피할 수 없는 절망적인 사건입니다. 이 같은 절망은 인간이 맞이할 피치 못할 파멸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예수 그리스도로 우리 가운데 오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나신 것은 의와 생명이 나타나신 것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1:14).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요1:1~5).


사망을 해결한 예수 십자가의 피 공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나타나서 역사하실 때에 도전한 자가 있었으니 곧 사망 권세자 마귀역사였습니다(마4:1~11).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히2:14~15).

예수께서 육신을 입은 까닭은 사망의 원인인 죄를 해결하려는 목적이었습니다. 사망은 영원히 죽어야 하는 것이기에 영원히 살아야 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인간의 영원한 죽음의 문제를 담당하시려고 죄 없으신 분이 인류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피 흘려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아니하고 영생을 얻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6).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가 피 흘려 죽으심으로 우리가 사망에서 생명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또 인류의 죄를 짊어지고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죽으셨는데, 예수께서는 죄 없으신 증거로 부활하셨습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확인하는 것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인류의 죄가 죽어 사라진 것을 말합니다. 그렇기에 그가 죽으심으로 인류가 생명에 이르게 되었고, 그가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인류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의에 이르게 됩니다.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롬4:25).

인류가 영원히 살고 싶어서 갖은 노력을 다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흘린 피의 공로 없이는 무용지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를 해결하신 피의 공로가 없는 어떠한 종교도, 어떠한 지식도 인간의 영원한 사망을 막을 수 없습니다. 오직 육신의 생각으로 하나님의 원수가 될 뿐, 인류를 구원할 어떤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롬8:6~8).

누구든지 죄로 말미암은 사망을 해결할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망의 방법을 해결하시려고 십자가에 흘리신 피의 사건을 만나지 아니하고는 천지간에 살길은 전혀 없습니다.


예수의 부활은 최고의 생명과 승리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생명이요 의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의가 없다면 속죄받을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없이는 구원이 없고 부활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선덕을 행한 착한 사람들이 가는 곳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피에 젖은 자만 가는 곳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죄를 완전히 해결했으니 그의 피만이 저주받은 지옥 문을 확실하게 막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영원한 천국 문을 제한 없이 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은 연속한 하나의 사건이며 인류에게 주시려는 지상 최대의 은혜의 사건입니다. 이 죽으심과 부활의 사건은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유일무이한 최고의 사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를 입고 죽으신 일은 기독교 믿음의 영원한 반석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기독교 최고의 생명과 승리의 건축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셔서 인류의 죄를 완전히 해결하셨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셔서 인류를 죽이는 사망 권세자를 영원히 파괴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 없이 십자가에서 살 찢고 피 흘려 죽으신 일에 무관심하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도 무관심한 자요,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에 무관심하다면 자기 영혼이 불행한 자입니다. 우리는 눈물로, 감사로,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에 자기의 죄를 씻고 최대의 기쁨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예하여 죄와 사망에서 영원히 자유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신 것은 우리에게 죄 사함과 부활의 영원한 기업을 주시려는 것입니다. 이 같은 위대한 축복이 죄와 사망에서 영육 간에 고통과 멸망의 지옥에서 자유케 하신 하나님의 사랑이요, 생명의 성령의 법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실패자는 죽어서 지옥 가는 사람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성공자는 눈감을 때 천국 가는 사람입니다. 주님이 죽음에서 부활로 성공했듯이 우리도 모두 부활의 믿음을 소유하여 마지막 주님 만날 그 때에 부활의 성공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474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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