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말씀] 예수로 영육의 고난을 해결하라

등록날짜 [ 2017-04-03 21:00:03 ]

죄로 말미암아 영원히 형벌받아야 할 우리 고난을 예수께서 대신 담당해 주셨으니
육신의 때를 절호의 기회로 알고 회개하여 성령 충만받아 철저히 죄에서 벗어나야


마태복음 9장 1~8절 “예수께서 배에 오르사 건너가 본 동네에 이르시니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데리고 오거늘 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소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어떤 서기관들이 속으로 이르되 이 사람이 참람하도다 예수께서 그 생각을 아시고 가라사대 너희가 어찌하여 마음에 악한 생각을 하느냐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 그러나 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그가 일어나 집으로 돌아가거늘 무리가 보고 두려워하며 이런 권세를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

하나님은 영원히 의로운 분이십니다. 하나님과 반대되는 이념은 모두 죄이기에 하나님께서 가장 미워하는 것도 죄입니다. 죄의 결과는 하나님을 영원히 떠나게 됩니다.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원수가 됐기 때문입니다. 죄는 하나님께서 영원히 형벌하시나 의(義)는 영원히 사랑하십니다.

예수를 일하시게 하는 믿음
예수께서 이 땅에 육체로 계실 때 가난한 사람, 병든 사람, 소외된 사람, 감당할 수 없는 불가능을 가진 사람을 찾아다니면서 만나는 즉시 현장에서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예수께서 어느 동네에 이르렀을 때 사람들이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데리고 왔습니다. 중풍은 무척이나 괴롭고 힘든 병입니다. 정신은 말짱한데 수족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고 드러누워만 있으니 얼마나 안타까운지 모릅니다. 중풍병자가 자기 스스로 예수께 올 수 없으니 그를 안타깝게 여긴 사람들이 침상에 들고 데리고 왔습니다.

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무슨 믿음일까요? 데리고 온 사람들은 ‘우리가 이 사람을 데리고 예수에게 가면 이 중풍을 확실하게 고침받을 수 있다’, 중풍병자는 ‘내가 그분을 만나면 일어서서 걸어 올 수 있다. 확실하게 치료받을 수 있다’는 믿음으로 왔습니다. 우리는 ‘차후에 될 것이다’가 아니라 ‘이미 됐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할 때도 믿고 구한 것은 먼저 받은 줄로 믿어야 하고(마11:24), 믿음 안에 능치 못함이 없다고(막9:23) 믿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믿음이 없이는 주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히11:6).

주님은 능히 이 지구상에 누구도 할 수 없는 ‘중풍’이라는 불가능을 당장에 해결해서 고칠 수 있으십니다. 주님은 전지하시고 전능하신 분이요, 우리의 고통을 해결해 주러 세상에 오셨기 때문에 확실하게 그분이 일하시도록 믿어 드려야 합니다.

예수께서 가르치시는 회당에 워낙 사람이 많아서 들어갈 수가 없자 지붕을 뜯어서 중풍병자를 아래로 달아 내렸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렇게 확실한 믿음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이런 확실한 믿음을 소유하시기 바랍니다.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소자야, 안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어서 “죄 사함을 받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병이 치료받았다고 먼저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이 병이 죄에서 왔고, 죄는 곧 마귀에게서 왔으니, 죄 문제를 해결할 분은 지구상에 오직 예수밖에 없으며, 확실한 믿음 위에서 일하신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인간을 대신해 형벌을 받으신 예수 그리스도
태초에 죄를 범하고 하나님과 원수 된 자는 마귀라는 옛 천사입니다. 마귀는 하나님의 일을 끝까지 방해하니 그는 언제나 자기 습성대로 사람을 죄짓는 도구로 사용합니다.

처음 사람 아담이 마귀에게 속아 죄를 지었습니다. 아담은 죄짓기 전에 하나님께 속해 에덴동산에서 행복을 누렸지만, 죄를 짓는 순간 마귀에게 속해 마귀의 행위를 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롬6:13).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요일3:8).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했습니다. 아담이 죄에 결박되자 영육 간에 고통이요, 죽으면 지옥 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마귀와 죄를 하나로 인정해 영원한 형벌로 다스리십니다.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마25:41).

지옥 형벌은 한 시도 쉴 틈 없는 영원한 고통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 형벌이라는 가장 잔인한 고난으로 인간을 대신해 형벌을 받으셨습니다. 예수의 십자가 고통은 죄지은 인간이 받아야 할 벌이 얼마나 중한지 말해 주기 위해 하나님 아들 예수께서 대신 당한 고난입니다.

하나님께서 죄는 영원히 형벌하시되 죄를 고백하는 사람에게는 마귀에게 속아서 죄지은 사실을 알고, 깨닫고, 그 멸망의 원천인 죄에서 돌이킬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 기회는 오직 육신의 때뿐입니다. 인간에게 주신 육신의 때는 죄에서 돌이킬 기회를 허락하신 은혜의 시간입니다.

누구든지 죄에서 돌이키는 자는 예수께서 대신 죄를 갚으신 은혜로 속죄 은총을 받고, 돌이키지 못한 자는 마귀와 함께 영원히 멸망할 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돌이켜 회개하는 자에게는 용서와 더불어 큰 선물이 있습니다. 사람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데 절대 필요한 건강과 지혜와 화평과 부유가 그분이 주실 선물이요, 이 세상을 떠나 영원한 나라에 가서는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행복하게 사는 영생이 있습니다.


일러스트 / 박철호
 

죄에서 벗어나는 길은 예수께서 베푸신 속죄 은총뿐
죄는 병보다 영원히 크고 무섭습니다. 질병은 육체로 있는 동안 고통당할 뿐이나 죄는 영혼의 때에 영원히 형벌을 받습니다.

많은 사람이 질병과 저주에 시달려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며 웁니다. 그러나 우리는 죄에 시달려서 당하는 고난에 울고 몸부림쳐야 합니다. 사람들이 죄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제일 큰 무지(無知)입니다. 무지는 영육 간에 파산을 스스로 불러오고, 자기를 영원히 구원할 수 없고, 멸망하게 될 형벌을 피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육신의 때라고 하는 한 생애만 있는 줄 압니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영원히 사는 영혼의 때가 분명히 있습니다. 사람의 지혜로는 육신의 때만 삶의 전부인 줄 오해하기에 자기 육신의 만족을 채워 보려고 정욕에 빠진 날들을 쉼 없이 보냅니다. 이것이 죄요, 하나님께서 미워하는 원수입니다.

자연히 하나님의 형벌을 피할 수 없는 영혼의 날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때는 몸부림치면서 후회해도 소용없습니다. 자기에게 준 회개할 기회를 완전히 잃었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사람이 죗값으로 형벌받는다는 사실을 안다면 그 지식이 자기를 구원할 것입니다.

죄는 ‘속았다’는 뜻입니다. 자기 삶이 하나님 말씀에서 빗나갔다는 것입니다. 올바른 삶의 과녁 없이 산 자가 받을 당연한 결과입니다. 인간의 속사람은 의롭게 살고 싶어 하지만 육신은 끝까지 죄짓고 살기를 원합니다(롬7:14~25).

죄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우리의 행위로 찾을 수 없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 은총으로 거저 얻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에서 벗어나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해야 합니다.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흘리기까지는 대항치 아니하고”(히12:4).

자기 육신이 정욕 덩어리, 죄 덩어리인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갈5:19~21).

성령으로만 육신에서 나오는 죄의 소욕을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는 무슨 일이 있어도 병들지 맙시다. 고통당하지 맙시다. 지옥 가지 맙시다. 즉, 죄에 매여 있지 말자는 것입니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리라”(갈5:16~18).

성령의 역사로 사는 행위는 모두 하나님이 원하는 바입니다. 오직 성령으로 사는 길만이 속지 않는 비결입니다(갈:22~23). 성령의 감동을 소멸치 말아야 합니다. 성령의 역사는 육신의 정욕을 이기는 능력입니다.

죄를 이기고 형벌을 면하기 원하는 자여, 예수 그리스도가 베풀어 주신 속죄 은총을 바라보십시오. 성령을 좇아 행하십시오. 그것만이 예수 그리스도가 주신 가장 값진 삶의 열쇠입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522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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