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말씀] 사랑의 질서

등록날짜 [ 2019-06-27 13:04:49 ]

고린도전서 13장 1~3절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하나님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이웃 영혼 구원 위해 전도하지 않는다면 ‘사랑한다’는 말은 거짓 불신자 만났을 때 자신도 모르게 ‘예수 믿으세요’ 하며 사랑드러내야 진정한 사랑을 가진 자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은 원수도 하나가 되게 할 만큼 영원히 가로막을 자가 없는 최고의 힘입니다. 하나님께서 피조물인 우리 인간을 사랑하시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피 흘려 죽이기까지 사랑하심은, 하나님과 원수 된 죄를 해결하여 멸망을 피치 못할 인류의 죄를 대속하심으로 인간과 영원한 질서와 조화를 이루려 하심입니다.


누구든지 원수와는 조화를 이룰 수 없으니, 죄와 무질서 자체가 부조화이며, 죄와 무질서는 언제나 방탕과 파탄을 수반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들을 이 땅에 보내어 부조화의 원인인 죄를 완전히 해결하시고 인간과 질서·조화를 이루셨다는 증거로 성령을 우리 안에 보내 주셨습니다.


사랑은 최고의 명령
하나님께서는 인간과 이루신 질서와 조화를 영원히 유지하기 위하여 위로 하나님을 사랑하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마22:37) 하시고, 아래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마22:39)고 하셨습니다.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이며, 우리에게 주신 새 계명입니다.


예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그가 매 맞으심으로 우리 육체의 질병을 치료해 주셨고, 그가 저주를 받으심으로 우리의 저주를 복으로 바꿔 주셨고, 그가 피 흘려 죽으심으로 영원히 멸망할 인류를 그의 생명으로 영원히 살게 하심으로 우리를 향한 사랑을 실천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성품 속에는 매를 맞아도, 저주를 받아도, 피 흘리고 죽어도 오직 인류를 향한 사랑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13:34)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이웃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하여 매 맞을지라도, 저주받을지라도, 고난당하다가 죽을지라도 목숨을 아끼지 아니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15:12).


이것은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명령이기에 반드시 이행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사랑을 명령하셨다고 해서 우리가 스스로 사랑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목숨을 다해 위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아래로 이웃을 사랑하고 싶어도 우리에게는 사랑할 수 있는 힘이 없습니다. 우리가 최고의 강령인 사랑의 계명을 지킬 수 있는 것은 사랑의 실천자이신 주님께서 우리 안에 와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가 주시는 사랑의 성품과 사랑의 힘으로 위로는 하나님을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해 사랑할 수 있고, 아래로는 이웃을 자신의 몸과 같이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웃을 위해 목숨도 버리는 사랑
예수께서는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요15:13). 주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사랑은 세상에서 70년, 80년 동안 잠시 살다가 마감하는 육신의 정욕적인 사랑이 아니라 영혼을 살리는, 영원히 제한 없는 사랑입니다. 곧 하늘나라에 가서 영원히 살아야 할 영혼 구원의 열정에 대한 사랑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사랑이 없으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아무 유익이 없다고 했습니다(고전13:3).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한 것이며 영원한 사랑은 곧 영적인 사랑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피 흘리신 사랑만이 영원한 사랑입니다. 이 위대한 사랑을 나타내기 위하여 이웃을 위해 목숨을 버린다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과 질서·조화를 이루실 때에는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는 실로 엄청난 출혈의 사건을 시행하셔야 했습니다. 인간을 살리는 일을 선택하기 위해서 아들이 이마에서 떨어지는 땀방울이 핏방울같이 되기까지 몸부림치며 통곡으로 아뢰는 절규의 기도를 세 번씩이나 뿌리쳐야만 했던 것입니다.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26:39).


하나님께서는 인간으로서는 도무지 상상할 수 없는, 아들을 죽게 하는 사건을 통해 무질서의 원인인 죄를 파괴하시고 인간과 조화를 이루셨습니다. 하나님의 이 뜨거운 사랑의 결과로 피조물인 우리 인간이 죄에서 구원받고 성령으로 거듭나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고, 예수 이름으로 기도할 때 응답받을 수 있고, 예수 이름으로 악한 영을 몰아낼 능력이 있고, 그의 말씀으로 살 수 있고, 성령의 감화와 감동으로 거룩하게 살 수 있는 위대한 기업을 얻었습니다. 예수 이름을 믿는 믿음 안에서 역사하는 사랑의 최대의 질서, 최대의 조화를 하나님과 이루게 된 것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1:12).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영원히 끊어질 수 없는 질서가 이루어진 자요, 조화가 이루어진 자요, 영원한 행복이 이루어진 자입니다. 우리가 참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자라면, 하나님이 아들의 생애를 다하여 우리를 사랑하심과 같이 우리도 제자들과 같이 목숨을 다해서 이웃을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같이 너희를 사모하여 하나님의 복음으로만 아니라 우리 목숨까지 너희에게 주기를 즐겨함은 너희가 우리의 사랑하는 자 됨이니라”(살전2:8).


사도 바울은 복음만 전하는 것이 아니라 목숨까지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고 주기를 즐겨 한다고 고백했습니다. 사도 요한은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요일3:16)고 했습니다. 나를 위해 목숨을 포기한 사람, 이보다 더 큰 사랑은 없을 것입니다. ‘내게는 아무것도 없으나 내 목숨이라도 바쳐 너에게 주님의 사랑을 전하리라’ 하는 사람과 누가 원수가 되겠습니까? 그러므로 목숨을 포기한 사랑은 이웃과 최고의 질서와 조화를 이루는 사랑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모든 삶은 파탄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이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명령하셨으니, 사랑은 곧 하나님의 본질적인 성품입니다.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일4:8).

오직 사랑만이 하나님과 인간 사이 믿음의 질서입니다. 그러기에 사랑이 없으면 질서가 깨지고 질서가 깨지면 인간 영육 간의 모든 삶은 파탄에 이르고 말 것입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할찌니 이는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소식이라 가인 같이 하지 말라 저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찐 연고로 죽였느뇨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니라”(요일3:11~12).


아담이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했을 때는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과 최고의 조화를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불순종하여 선악과를 먹는 순간, 하나님과 조화가 깨지고 그의 앞길에는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나고 평생 땀 흘리는 고생만 있었습니다. 하나님과 영적인 질서가 파괴되니 육적인 모든 질서도 파괴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아들 가인도 악한 마귀에 속아서 아우를 죽이고 저주를 피치 못할 절망적인 인간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이와 같이 부모가 하나님과 조화가 깨어지면 형제간 조화도 깨어지고 부모자식 간 조화도 파산되는 절망적인 사건이 일어납니다. 사랑의 조화가 파괴된 곳에는 무질서와 저주와 고통이 반드시 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과 분명한 조화를 이룹니다. 그러므로 이 조화를 이룬 자가 기도할 때 응답이 있고, 어떤 장애물도 하나님과 함께 질서를 이루며 가는 그를 가로막을 수 없습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홍해까지 나올 때 인간의 눈에는 무질서하게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바다 가운데 대로를 준비하셨습니다. 또 여호수아가 언약궤를 멘 제사장을 앞세워 요단강을 건너는 것은 인간의 생각으로는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에 의지하여 요단강을 밟으니 강이 갈라졌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과의 질서와 조화입니다.


인간의 방법으로는 하나님과 질서를 이룰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 말씀을 믿고 순종할 때 하나님과 질서를 이루게 됩니다. 하나님의 질서는 곧 하나님의 절대적인 능력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알 때, 그 사랑의 질서 속에 있는 하나님의 능력도 함께 가지고 누리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 또는 이웃과 영육 간에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질서 있는 삶으로 성장하지 못하여 수많은 문제와 고통의 현장에만 머물러 있다면, 하나님과 이웃과의 관계에서 어떠한 질서가 가로막혀 있는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과 이웃과의 관계를 가로막고 있는 장애물을 제거하는 최고의 능력은 사랑입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고전13:4~6).

하나님의 사랑은 내 가장 귀한 것을 주면서까지 이웃의 가장 절망적인 고통을 담당합니다. 주님은 가장 귀한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주시고 우리의 가장 절망적인 고통을 담당하셨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인간을 향해 큰 사랑을 쏟지 않으셨다면 기독교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며,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들이 이웃을 향한 사랑을 실천하지 않았다면 교회 또한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는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고, 또 교회가 이웃을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들이 위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아래로 이웃을 사랑하려고 모인 곳이 교회입니다. 위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아래로 이웃의 영혼을 살리려고 교회가 존재하듯이, 우리는 위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만큼 아래로 이웃도 사랑해야 합니다.


만약 위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이웃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 전도하지 않는다면 사랑한다는 말은 거짓입니다. 예수 믿지 않고 영원히 지옥 형벌을 피할 수 없는 불신자를 만났을 때에 자신도 모르게 “예수 믿으세요!”라는 말이 나와서 예수를 증거하고 하나님께서 인류 구원의 사랑으로 나타내신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내야 진정한 사랑을 가진 자입니다. 이것이 없다면 그가 사랑한다는 말은 거짓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사랑만이 영원한 행복
모든 것은 오직 사랑을 위해서 존재합니다. 사랑이 없으면 말씀도, 믿음도, 성령의 역사도 성립될 수 없습니다. 사랑은 오직 죽어 가는 영혼을 살려 내기 위해 주님과 같이 제자와 같이 희생하고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스데반과 같이 죽이는 원수 앞에서도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행7:60)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그들의 영혼을 위해 희생하고 책임지려는 사랑의 표현입니다. 주님과 연합한 자들 속에는 오직 주님과 같은 사랑밖에는 드러날 밑천이 없는 것입니다.


한 가정의 부부도 사랑이 있어야 질서가 있고, 질서가 있어야 하나가 되어 진리 안에서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습니다. 형제도 사랑이 있어야 우애가 있고 질서가 이루어집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질서도 사랑에 있고, 한 가정의 질서도 사랑에 있고, 한 교회의 질서도 사랑에 있고, 한 사회의 질서도 사랑에 있고, 한 나라의 질서도 사랑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사랑만이 영원한 질서와 조화이며, 하나님의 사랑만이 영원한 상호 행복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어떤 죄의 벽이라도, 어떤 원수의 벽이라도, 어떤 고통의 불가능 벽이라도, 어떤 질병과 아픔의 벽이라도 파괴하는 절대적인 능력이 있습니다. 인간의 사랑은 육체의 소욕에 제한을 당하나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히 제한당하지 아니합니다. 하나님의 사랑만이 영원한 질서이며, 영원한 조화이며, 영원한 능력으로 나타내신 행복입니다. 그러므로 영원한 하나님의 사랑의 힘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사랑의 힘으로 행복을 누려야 합니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서 제한 없이 역사하게 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그 힘으로 하나님과 질서·조화가 이루어지게 하고, 이웃과 사랑의 질서와 조화가 이루어지게 해야 합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630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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