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말씀] 신령한 복을 가진 사람

등록날짜 [ 2019-08-05 20:43:32 ]

시편1장 1~6절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그러므로 악인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이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하리로다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


신앙생활은 회개로 죄를 이기는 생활이어야
제일 교만한 사람은 은혜 앞에 침묵하는 자
‘조용히 예배만 드리고 은혜만 받자’는 악인
주님 은혜 받았으면 감사생활로 충성해야


하나님은 사람을 선하게 만드셨다

시편 기자 다윗 왕이 말하는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않는’ 사람입니다. 악인(惡人)이 누구입니까? 하나님께서 인류를 창조하실 때 악인을 만드신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흙으로 사람을 만드시고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셔서 이 사람을 생령(生靈), 곧 아담이 되게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왜 악인이 됐을까요?


아담과 하와는 천지 만물을 다 소유한 행복했던 사람이었습니다. 부족한 것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런데 마귀가 뱀을 이용해서 “너는 다 가졌는데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어. 저 동산 중앙에 있는 실과야. 그것을 네가 먹는 날이면 하나님같이 돼”라고 미혹합니다. 마귀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섭리 속에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람을 미혹해서 먹지 말라는 선악과를 먹게 했습니다. ‘죗값은 경중 없이 사망’이기에 사람은 이때부터 하나님과 멀어져 고생하게 됩니다.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후 농사를 지으면 가시덤불이 돋고 잡초가 나서 곡식이 자라지 못해 땀 흘려야 겨우 먹고살게 됩니다. 인생이 불쌍한 것은 그저 애쓰고 일해서 먹고살다 죽으면 그 영혼은 죗값으로 지옥 형벌을 당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이렇게 마귀는 사람을 영육 간에 이 지경으로 고통받게 만든 악한 자이니, 그 악한 자에게 당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악한 자는 사람을 도구로 쓴다

그런데 악인은 우리 눈으로 볼 때 분명 ‘사람’입니다. 살인(殺人)했다고 하면 사람들은 “그 사람 참 악하다, 어쩌다 그런 일을 벌였나?”라고 욕하며 비난하지만, 사실 살인하게 한 악한 존재는 따로 있습니다. 바로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마귀 역사입니다. 우리는 그 악한 자 마귀가 접근해서 악한 일을 하는 도구로 나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악인의 꾀를 좇지 않기 위해서 하나님 말씀 안에, 성령 안에, 예수 피 공로 안에 있어야 한다는 신앙의 원칙이 서 있어야 합니다.


에덴동산에서 그만큼 사람을 망치고 악한 짓을 했으면 조금이라도 미안해해야 할 텐데, 마귀는 악한 짓을 하면 할수록 더 악랄해집니다.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아담과 하와가 동침하매 득남하여 가인과 아벨을 낳았는데, 하나는 농사꾼이 되고, 하나는 양치기가 됐습니다. 어느 날 형제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제사를 지내자”라고 의기투합합니다. 형은 농사지은 최고의 수확물을 가지고, 아우는 양을 치는 자답게 자기 양의 첫 새끼를 하나님 앞에 제단을 쌓아 바쳤습니다. “하나님이여, 우리를 만나 주시옵소서!” 하고 제사할 때, 하나님께서는 양을 잡아 피 흘려 바친 아벨의 제사는 열납하셨으나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죗값은 사망’이니 죄 앞에는 반드시 사망을 표현해야 합니다. 그 표현이 바로 양을 잡아 피 흘리는 것이니, 이는 “나는 이 양처럼 죽어 마땅한 죄인입니다. 그러나 이 피를 보시고 내 죄를 사하소서”라고 하는 것입니다.


아우가 하나님을 만났다면 기뻐해야 할 텐데, 아우의 제사만 상달된 것에 가인은 속에서 분(忿)이 납니다. 이것이 악한 놈이 하는 짓이니, 그런 분낼 생각이 들어올 때 이기라는 겁니다. 가인은 결국 아우를 돌로 쳐서 죽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악한 행동을 다 보시고 “가인아, 네 아우가 어디 있느냐?”라고 물으십니다. 우리는 잘못이 드러날 때 핑계 대지 말고 “주여, 잘못했습니다. 당신이 흘린 피로 속죄하옵소서”라고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가인은 이런 못된 짓을 했기 때문에 땅에서 저주를 받았습니다(창4:10~11).


악인의 꾀를 좇지 말라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요일3:8).
여러분이 범죄하고 “내가 죄짓고 싶어서 지었나? 상황이 그렇고, 현실이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그런 것이지”라고 핑계 댄다면 그렇게 상황을 만들어 놓고 죄를 짓게 하는 자가 마귀니, 우리 신앙생활은 죄를 이기는 생활이어야 합니다.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를 이기는 생활이라는 말입니다. 왜 이겨야 합니까? 내게 죄가 머물러 있으면 병들게 하고, 저주하고, 이 죄로 인해 마귀에게 속하여 악하게 살다가 결국은 지옥으로 끌려갑니다. 죄와 악한 마귀를 빨리 내쫓는 비결은 회개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함이다”라고 했습니다. 마귀가 하는 일은 우리를 죄짓게 해서 죽여 지옥 보내는 것입니다. 이 일을 말리러 오신 분이 예수입니다. 사람들은 기독교를 일반 종교로 알지만, 우리는 살려고 예수 믿습니다. 지옥 갈 수밖에 없는 나를 예수로 건져 내려고 믿는다는 것입니다. 마귀의 일은 인간을 죄짓게 하고 병들게 하고 저주해서 지옥 보내는 것인데, 이 일을 못하게 한다는 말입니다. 주여, 내게 마귀의 일이 도달하지 않도록 내가 항상 예수 안에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할렐루야.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 속에 거함이요”(요일3:9).


살구씨나 포도씨를 심어 놓고 기다리면 싹이 나오고, 몇 년 지나면 꽃을 예쁘게 피우고 열매가 탐스럽게 열립니다. 이처럼 씨는 또 하나의 씨를 만드니 하나님의 자녀는 계속 하나님의 자녀를 만드는 고로 그 속에 죄가 없습니다. 그 씨는 거룩하기에 죄를 지을 수 없습니다. 악인의 꾀를 좇지 말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나타나나니 무릇 의를 행치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요일3:9~10).


죄(罪)를 짓는 것은 마귀 종자의 씨가 있고, 의(義)를 행하는 것은 하나님 종자의 씨가 있다는 겁니다. 우리가 예수 믿는 목적이 그저 듣기 좋은 말을 들으러 온 것이 아니요, 우리는 생명의 소리, 생명을 살리는 천국 소리, 천국을 주려고 피 흘리신 주님의 목소리를 들으러 왔습니다. 그러니 예배 시간에 말씀에 집중하지 못하게 스마트폰 보거나 산만하게 만드는 악한 자에게 조금도 당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할찌니 이는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소식이라”(요일3:11).


서로 사랑하라 했는데, 가인은 아우를 사랑하지 않고 돌로 쳐 죽였습니다. 가인이 자신이 저지른 끔찍한 죄를 깨달았을 때 얼마나 고통스러웠겠으며, 형이 아우를 돌로 쳐 죽인 사실을 안 부모의 가슴엔 얼마나 한이 맺혔겠습니까. 악한 마귀가 들어오려고 노크할 때 안 열어 주는 방법이 뭡니까. 그놈의 생각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입니다. “가인같이 하지 말라”(요일3:12)는 말은 가인은 악한 자에 속해서 자신을 아우를 죽이는 데 썼다는 말입니다. 로마서 6장 13절에도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라고 했으니 복 있는 사람은 언어도 행동도 절대 악한 자가 나를 쓰지 못하게 해야 됩니다. 악한 자가 나를 이용하지 못하게, 내 근처에 오지도 못하도록 악한 자를 몰아내야 합니다. 그런데 그놈은 밤낮 쉬지 않고 꿈에라도 나타나서 우리를 죄짓게 하려고 별 수작을 다 부립니다. 마귀에게 당하면 짜증 나고, 불평하고, 무엇인가 싫어서 큰소리를 냅니다. 조심해도 어딘가 모르게 악한 자의 언어나 행동이 드러납니다. 그래서 악인의 꾀를 좇지 말라는 말은 마귀 궤계에 당하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성질 낸 것이 잘못이 아니라 그놈에게 당한 것이 잘못입니다. 반드시 예수의 피의 공로 붙잡고 회개할 일입니다.


유다와 사울의 배후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 가룟 유다는 돈을 맡은 자였습니다. 예수님이 공생애를 사시는 동안 사람들이 바친 돈을 필요한 대로 써 가며 전도하러 이곳저곳을 다니셨습니다. 그런데 유다는 도둑이었습니다(요12:4~6). 요한복음 10장 10절에 ‘마귀는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놈이다’라고 했습니다. 유다가 도둑인 줄 알고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6장 70절에 ‘너희 중에 한 사람은 마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을 마귀라고 하셨겠어요? 100% 마귀에게 장악당하고 마귀에게 사주를 받고 마귀 일을 하는 자라는 말씀이니 우리는 절대 가룟 유다처럼 마귀 일을 하는 자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이 다 죄인의 길에서, 악인의 꾀로, 오만한 자리에 앉아서 이런 짓을 함부로 하고 있습니다. 유다는 그때 당시 노예 한 명 값인 은 30을 받고 예수를 팔았습니다. 자기가 예수의 주인이 아니니 도무지 팔아먹을 수 없는데도 돈 준다니까 덥석 받고 팔았습니다.


이런 짓은 마귀 역사 아니면 못합니다. 마귀가 들어가서 그 사람을 사용하면 악인이 된다는 말입니다. 결국 유다는 비참하게 목매달아 떨어져서 창자가 터져 죽었습니다.


악한 자가 들어가면 악한 짓을 합니다. 사울도 처음에는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서 하나님의 사랑을 얼마나 많이 받았고, 왕으로 세울 때 이스라엘 백성이 얼마나 기대했습니까. 그런데 세월이 흐르자 교만해져서 하나님이 선지자 사무엘을 통해서 왕을 권면하는데도 사울이 말을 잘 안 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사무엘이 하나님의 명령을 전합니다. “이번 아말렉과 벌인 전쟁에 나가면 반드시 이길 텐데, 거기 있는 모든 짐승이며, 노예며, 왕까지 싹 다 죽이세요.” 그런데 전쟁에 이기고 보니 탐스러운 양 떼 소 떼를 다 죽이려니 아까우니까 자기 진영으로 몰고 옵니다. 아말렉 왕 아각도 죽이지 않고 끌고 옵니다. 그러자 사무엘이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삼상15:23)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다윗으로 왕위를 이어가 버리잖습니까. 하나님이 손을 뗀 사울에게는 악신(惡神)이 들어가서 해서는 안 될 못된 짓을 얼마나 많이 했습니까. 다윗이 수금을 타서 악신을 몰아내 줬는데도 그런 다윗을 죽이려고 얼마나 쫓아다녔습니까? 사울 속에는 그런 악이 없는데, 악한 마귀가 그렇게 악하게 썼다는 말입니다.


사람은 인격을 가졌기 때문에 인격을 가진 악한 놈이 들어와서 악한 짓을 하면 인격적으로 악한 짓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자기가 하는 줄 알고 , 당연히 자기가 할 일인 줄 알고 악을 행합니다. 그런데 “회개하라”는 말씀 듣고 ‘내가 당연히 할 일로 여겼는데, 이것이 죄였네!’ 깨닫고 부당한 짓인 줄 알고 돌이켰다면, 그것이 복이라는 것입니다. 마귀의 정체가 드러났다는 겁니다. 그놈이 나를 악인으로 쓰는 것이 끝났다는 말입니다. 평생 성령으로, 말씀으로, 예수 피의 공로로, 복음으로, 전도자로 사용되기를 작정하기 바랍니다. 우리는 악인에게 사용되면 안 됩니다.


교회 와서 아무 일 안 하는 왼편 사람들
마태복음 25장에 예수께서 마지막 심판의 모습을 비유로 말씀하시면서, 왼편에 선 자는 염소로, 오른편에 선 자는 양으로 비유하셨습니다. 왼편에 있는 자들을 향해 말합니다.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아보지 아니하였느니라”(마25:42~43).


왼편에 있는 자들은 예수와 아무 상관 없이 살아왔다는 말입니다. 교회 다니면서도 교회와 아무 상관 없는 사람은 왼편에 있습니다. 교회는 ‘주님의 몸’인데, 주님의 일은 다 피 흘려 구원하신 내 일, 남편의 일이니 언제나 내 일을 할 뿐입니다. 그런데 악한 놈은 속삭입니다. “너는 예배나 드리고 가면 되니 교회 일에 상관하지 마. 뭐 하러 나서?”


그런 자를 향해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마25:41). 왜 마귀와 더불어 그 사자들이 들어가야 하는 지옥에 사람이 들어가느냐는 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일하고 예수님과 뜻을 같이하고 성령의 인도 따라 내 영혼의 때에 내 일 하다가 선한 일에 승리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예수의 십자가 피 공로로 구원받은 자가 교회에 와서 아무 일도 안 하면 악인이라는 것입니다.


악하면 터럭만큼도 동정심 없어
주린 자에게 안 먹인 것은 악해서 내 것만 찾으니까 그렇다는 거예요. 어릴 적 우리 동네에 나병환자가 있었어요. 약이 귀한 때여서 항상 피고름이 질질 흐르고 보기에 참 불쌍했어요. 한겨울에 덜덜덜 떨면서 “밥 한 그릇 주세요” 하고 찾아오면 감사하게도 우리 어머니는 양지로 데려가 밥상을 챙겨서 대접합니다. 다 먹으면 나중에 또 오라고 하니, 무척 미안해합니다. 우리 집이 가난해서 밥 못 하는 날이 많은 줄 알기 때문입니다. 나병환자가 찾아올 때마다 어머니가 항상 정성껏 대접해서 보내신 걸 보면 지금 생각해 봐도 참 감사합니다. 선한 일은 어머니가 하고 복은 제가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악한 사람은 “야, 저 병든 사람 문 앞에 들이지도 마라. 병 옮으면 어떻게 해!” 합니다. 얼마나 악합니까? 악한 사람은 터럭만큼도 동정심이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은 사랑하라고 합니다. 이 말은 “네 속에 악의 종자가 없어져야, 사랑의 주님이 오셔야, 옆 사람이 필요하면 내가 살을 찢어 주듯 너도 찢어 줄 거야. 내가 피를 짜 먹이듯 너도 그런 사랑이 있을 거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주님께 사랑을 구하라는 말입니다.


침묵하는 교회
한 달란트 받은 자에게 “이 악하고 게으른 종아, 저놈을 당장에 바깥 어두운 곳에 내어 쫓아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게 하라” 하셨습니다. 그 사람이 무슨 악한 짓을 했나요, 주인 것을 떼어먹지도, 남에게 해코지한 것도 아니고 잘 묻어 뒀다 그대로 가지고 왔는데도 장사해서 유익을 남기지 못했다며 “악하다”고 했습니다. 신앙생활은 주님의 은혜 입고 감사생활로 충성해야 악하지 않습니다.


피 흘려서 나를 구원하신 주님 은혜 앞에 우리는 침묵할 수 없습니다. 감사하니 무엇이라도 해야 합니다. 성경 전체는 지금 하나님이 내게 침묵하지 않고 계십니다. 나를 사랑했다는 말입니다. 예루살렘과 전 세계가 들썩이도록 자기 아들을 우리 죄를 해결하기 위해 내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아들은 ‘먹어, 받아 마셔, 영원한 양식이야, 영원한 생명이야, 그리고 죄와 사망과 지옥은 안 돼’ 하시며 우리 멸망을 보고 침묵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이 마귀 역사는 은혜받았거나 말았거나 혼자 조용히 교회만 왔다 갔다 하라는 것입니다. 한 달란트 받은 자, 왼편에 있는 자, 미련한 다섯 처녀를 그렇게 주님이 강력하게 내쫓으신 이유가 침묵했기 때문입니다. 내가 죽을 일을 주님이 대신 죽었으니, 내가 지옥 갈 일을 주님이 대신 지고 가셨으니, 나도 주님이 하실 일 있으면 하고, 매를 맞을 일 있으면 맞고, 돈 쓸 일이 있으면 쓰는 것입니다.


“오만한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제일 교만한 자가 주님 은혜 앞에 침묵하는 사람들입니다. 내가 은혜받았다는 표를 내고 싶은 것이 성령받은 사람들입니다. 그것이 은헤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전해 주는 복음 전도요, 교회 안에서 필요한 대로 열심을 내서 충성하는 자기 행위입니다. 예수 믿고 나서 “나는 이 교회 온 지 얼마 안 되니 조용히 예배만 드리고 은혜만 받자” 한다면 겸손한 생각 같지만 악한 영이 충성하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고립시키는 악한 자에게 당하지 마라
침묵하는 교회는 교제도 없고, 사랑도 없고, 발전도 없고, 전도도 없고, 충성도 없고, 아무것도 없습니다. 예수의 피 소리가 없는 교회, 피의 공로가 없는 교회는 침묵한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교회에 침묵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 무언가 할 말이 있어서, 형제들에게 할 말이 있어서, 주님께 감사해서 충성할 일이 있어서 온 것이고 그것이 교회생활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냥 교회 가서 혹시 나 때문에 누가 될까 무서우니 조심스럽게 있다 오자. 그게 신앙생활이지’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당신 고립시키는 마귀 역사니, 절대 악한 영에게 고립당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 피의 공로로 구원받고 죄인에게서 악인에게서 오만한 자의 자리에서 저주와 사망에서 구원받은 사람의 자세는 항상 주님 앞에 시끄러운 것입니다. 이렇게 은혜받았다고 간증하고, 주셨으면 감사하고, 고백하는 ‘거룩한 수다’가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 앞에서 말입니다. 저 사람 지옥 가면 안 된다, 악인의 꾀에 빠지면 안 된다,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으면 안 된다고 말해야 합니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음같이 영혼의 때가 그렇게 돼야 한다는 말입니다.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시1:6) 했으니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의인의 길에 선 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636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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