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말씀] 십자가의 길

등록날짜 [ 2019-08-19 10:38:26 ]

고린도전서 1장 18~25절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기록된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뇨 선비가 어디 있느뇨 이 세대에 변사가 어디 있느뇨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케 하신 것이 아니뇨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를 기뻐하셨도다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고전 1:18~25)


신앙생활은 아버지 원대로 되려고 하는 것
그런데 자기 원대로 되려고 하는 사람 많아
예수 믿는 일은 육신 아닌 영혼의 때의 영광
마귀 역사 이겨내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야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기 위해 기쁘신 뜻대로 인격을 가진 인간을 에덴동산에 지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미리 인간에게 “선악과를 먹으면 정녕 죽는다”라고 일러 주셨습니다. 이는 누군가 먹게 하는 자가 있을 것인데, 그때 이 말을 기억하고 절대 먹어서는 안 된다는 하나님의 당부였습니다. 그런데 마귀는 뱀을 통해서 “선악과를 먹으면 눈이 밝아져 하나님처럼 될 수 있어”라고 미혹합니다. 이처럼 마귀는 인간을 위하는 척 미혹합니다. 하지만 마귀의 목적은 죄짓게 해서 인간의 영혼을 지옥 보내는 것입니다.


세상 지혜로 미혹하는 마귀
우리 인간은 아무리 지혜로워도 마귀에게 속게 되어 있습니다. 성경을 읽어 보면, 세상 지식으로 지혜롭고 똑똑한 사람들은 거의 다 마귀에게 속았습니다. 우리는 지금의 상황이 현실과 맞든 안 맞든, 손해가 오든 안 오든 상관없이 하나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든 ‘네’ 하고 순종할 정도로 미련해야 합니다. 그런데 똑똑한 사람은 “지금 시대가 어느 땐데?” 하며 거부합니다. 어느 시대든지 마귀 역사가 우리를 미혹하려고 존재하기에 그 정체를 알고 이겨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 한 선악과를 마귀 역사에 속은 인간이 먹으니 ‘정녕 죽음이 온 것’입니다. 선악과를 먹은 아담의 육체는 살았으나 영혼은 이미 죽었으니, 죄는 이처럼 무서운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사람이 “하나님은 사랑이신데 죄를 좀 지었다고 지옥 보내시겠느냐?”고 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에 ‘회개’라고 하는 분명한 관계를 허락해 주셔서 하나님의 아들을 피 흘리게 해서 그 피의 공로가 내 죄를 해결했다는 사실을 믿고 회개하라는 이 어마어마한 길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이 단 하나의 길에서만 죄를 해결하고 하나님께 돌아올 수 있으니, 그 길을 확실하게 제시받았다면 이 지구를 다 줘도 해결할 수 없는 복을 받은 것입니다.


예수를 열망하는 것이 진정한 복
사람들은 죽음을 제일 두려워합니다. 인간의 육체가 죽는 것도 두려운데, 만약 오늘 죽으면 영혼은 지옥에 빠져 불구덩이에서 영원히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견뎌야 한다고 하니 얼마나 고통스러울까요? 누가복음 16장의 부자는 타고 또 타도 죽지 않는 영원한 고통에 견딜 수 없어 “나사로의 손끝에 물 한 방울 찍어서 혀를 서늘케 해 주세요”라고 그토록 애절히 요청합니다. 그런데 그 부자는 이 땅에서 살 때 호의호식하고 호화로이 연락(宴樂)하며 살았다고 했습니다. 세상은 그런 것을 복(福)이라고 합니다. 이 세상에서는 육신이 평안하고 행복하고, 육신의 일이 요구대로 다 이루어지면 “그 사람 예수 믿고 복 받았어”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이나 사도 베드로 같은 사람은 예수 믿고 쫄딱 망한 사람입니다. 사도행전에는 자기 전 재산을 복음 전도를 위해 내어놓으면서 주의 일에 감사하며 동참하는 것이 복이라고 했지, 돈 벌어서 쌓아 놓는 것을 복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복음서나 서신서에 그런 것을 복이라고 쓴 곳은 단 한 군데도 없습니다. 성경에는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했지만, 여러분은 돈이 있어야 복인 줄로 알지 않습니까. 예수께서 산상수훈에 말씀하신 복은 예수 자신을 열망하라는 것입니다. 가난한 자의 본능이 부자 되는 것이듯이, 심령이 가난한 자의 본능은 천국을 갖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당신은 정말 천국을 갖고 싶어 합니까?


사람 지혜의 실상은 허상
세상으로는 무식해야 예수를 수용할 수 있습니다. 왜 그런가요? 예수께서 하신 말씀이 시대와 상황과 현실과 안 맞고, 내가 손해 보는 일이 많은 것같이 느껴져 마음을 쏟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육신은 자기 몫이 적어지니까 영적인 일에 마음을 쏟지 않는 것입니다. 육신의 몫은 아무리 가져도 육신을 마감하면 끝이니 가졌다 하나 허상일 뿐입니다. 영적인 것은 소자에게 냉수 한 그릇을 제자 이름으로 떠 줘도 절대로 상을 잃지 않으니 그것이 실상임을 알아야 합니다. 허상을 붙잡고 실상인 줄로 착각하면 큰일 납니다.


성경에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뇨 이 세대에 변사가 어디 있느뇨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케 하신 것이 아니뇨(고전1:19~20)”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이적을 나타내니까 사람들이 구름 떼같이 따라다닙니다. 로마라는 초강대국을 전복하고 이스라엘의 국권을 회복해서 세계를 지배하는 시오니즘의 영광을 나타낼 때 한자리 해 먹으려는 의도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십자가 고난에 돌입하니 ‘아니구나’ 하고 다 떠나가잖습니까. 이것이 바로 사람의 지혜입니다. 사람은 육체적 실리를 얻으려고 그렇게 열심히 예수를 따라다닙니다. 제자들까지 그랬습니다.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애절하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떨어지는 땀이 핏방울이 될 때까지 전혀 기도에 힘쓸 때, 십자가라는 중대사의 고통을 놓고 얼마나 힘드셨을까요. 그분은 전지하신 하나님이시기에 자기가 어떤 고통을 겪다 죽고 부활하고 승천하실지 다 알고 계셨으니까요. 아들이 그 애절한 절규와 심한 통곡의 기도를 세 번이나 할 때, 하나님 아버지는 아무런 말씀이 없으셨습니다. 오히려 기도하시는 주님이 스스로 기도를 돌이킵니다. “그러나 아버지여,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원대로 되기를 원합니다.” 신앙생활은 내 소원을 풀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 원대로 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 원대로 되려고 신앙생활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내가 예수 믿고 천국 가는 것도 피 흘려 죽기까지 원하신 주님의 소원입니다. 우리가 질병에서 치료받는 것도 채찍에 맞기까지 고통당하신 주님의 소원입니다. 우리가 기도해서 응답받는 것도 자기 명예를 걸고 “내 이름으로 구하라 내가 시행하리니” 하며 주고 싶은 주님의 소원입니다. 우리는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원대로 되기를 원해야 합니다. 그런데 거의 다 내 원대로 안 되면 기분 나빠하지 않습니까.


십자가는 인류 살리시려는 하나님의 지혜
그러니까 우리 주님이 아버지가 한번 정하신 뜻 “아담아, 네가 먹으면 정녕 죽어”라고 경고하셨는데도, 아담은 정녕 먹고 죽었습니다. 인간을 살려 내는 방법은 ‘정녕 죽는다’라는 말씀이 이루어져야 하기에, 죄 없으신 예수께서 처녀의 몸을 빌려 태어나서 인류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죽은 것입니다. 남자의 씨로 태어났으면 다 똑같은 죄인의 종자입니다. 우리는 죄 아래서 이미 죽은 것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아무 죄가 없으신 주님이 이 땅에 오셔서 ‘정녕 죽으리라’고 하신 말씀을 이루시려 아담부터 우리가 범죄한 모든 원죄, 자범죄, 본죄를 다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아담 시대에 ‘정녕 죽으리라’고 할 때 그 죽음이 누구를 향해 말하고 있습니까? 율법을 만들고 양을 잡아 피 흘리고 짐승을 잡아 피 흘리면서 바로 이렇게 대신 죽을 구세주가 온다고 예언하다가 예수가 피 흘려 우리의 제물로서 하나님과 나와 죄의 문제를 해결하는 순간, 양을 잡아 피 흘려 지내는 제사는 끝나 버렸습니다. 주님의 피로 단번에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가서 나와 하나님의 문제, 닫힌 죄를 해결했습니다. 지금 우리는 예수 피의 공로 때문에 나와서 예배하는 것입니다. 나는 예수의 피 공로에 힘입은 ‘피의 사람’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바라보실 때 아들의 피를 가진 자는 아들처럼 소중하지 않겠습니까.


죄가 없으시기에 삼일 만에 부활하신 예수
서기관, 장로, 제사장, 율법사 등 많은 유대인이 “예수는 신성을 모독한 참람한 죄를 졌다”고 합니다. 호적에도 요셉과 마리아의 아들로 되어 있는데 하나님의 아들이라니, 당장 신성모독죄로 죽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죄목으로 죽습니다. 불법이지만, 그 사람들이 율법으로 볼 때는 신성을 모독한 참람한 죄를 지었기 때문에 마땅히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야 합니다. 죄인 중에 죄인 괴수들만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데, 길바닥에 세워 놓고 발가벗겨 십자가에 못 박아 수많은 사람이 조롱하는 죄인 취급을 예수님이 당한 것입니다. 바로 나 때문입니다.


죄인에게 명예가 있습니까? 예수님을 쫓아다니던 수많은 사람이 다 그 명예를 짓밟고, 제자까지도 ‘내가 저주하고 맹세하노니 그를 도무지 모른다’고 할 정도로 버림받고 저주받고, 죄인 취급당하는데, 예수에게 무슨 명예가 있습니까.


오늘날 우리가 예수 믿는 것이 영광스러운 것은 지금은 그 명예를 회복했기 때문입니다. 예수가 죽은 것은 자기 죄로 죽은 것이 아니요, 신성모독죄로 죽은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가 내 죄를 짊어지고 죽으셔서 내 죄를 해결해 주시고 나는 회개하고 죄 사함받았기 때문에 그는 나의 구세주이십니다’라고 그 명예를 회복시켜 주는 것이 전도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예수를 사대 성인 중 한 명으로만 압니다. 예수 외에 그들 중 누가 당신을 위해 죽었나요? 다 자기 죄로 죽어 사라졌는데 그들이 무슨 성인입니까. 그러나 예수는 내 죄를 담당하고 죽으셨고, 죄가 없으시기에 삼일 만에 부활하셨고, 내 안에 성령으로, 말씀으로, 예수 이름으로 와 계십니다.


나를 위해 죽으셨듯 죽도록 충성해야
십자가에 달려 죽을 만큼 저주받은 자, 그 저주 아래서 죽임당한 예수를 누가 기억하고 싶겠습니까. 지나가는 사람마다 “야,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라면 한번 십자가에서 내려와 봐. 그러면 우리도 믿을게” 하면서 조롱했습니다.


저는 우리 주님이 나 같은 것 위해서 죽을힘을 가지셨다는 데에 정말 감사해요. 우리 육신은 병들어 죽고, 늙어 죽어도 주를 위해 죽을힘이 없잖아요. 주여, 나도 십자가의 도를 기억하면서 주를 위해 죽을힘을 주소서. 주님이 나를 위해 죽으셨듯 나도 주를 위해 죽게 하소서.


그래서 죽도록 충성하라는 것입니다. “네가 나를 따르려거든 네 자신을 부인하고 네 몫에 진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아야 될 것이니라.” 그러니까 이 저주 나무에 달려 잔인하게 죄인 중의 죄인, 행악자로 죽으신 예수를 누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기억하며 누가 나의 구세주라고 기억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과거에 십자가의 도를 모르는 사람들은 얼마나 예수 믿기가 부끄러웠을까요?


“아, 저주받은 자, 십자가에 매달려 처형당한 자, 그걸 구세주라고 믿어?”


유대인들이 바라볼 때는 “네가 진짜 예수라면 십자가에서 내려와 봐. 네가 진짜 예수라면 로마를 전복시키고 이스라엘을 한번 세워 봐. 우린 그런 표적을 구해.”


그러나 예수는 이 땅에 정치적인 일, 육체의 일을 하러 오신 분이 아니라 마귀를 멸하고 죄를 멸하고 지옥에서 사망에서 나를 구원하러 오신 분입니다.


“헬라인들은 지혜를 구하나.” 헬라 사람들이 그들의 지혜로 볼 때, 십자가에 달려서 저주받아서 죽은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정신병자로 보이지 않았겠어요.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말로가 아니라 성령으로 경험되어 알게 됩니다. 예수님이 태어날 때도 성령으로 잉태되시고(마1:18), 성령으로 공생애를 사시고, 성령으로 아버지의 뜻대로 죽으시고(요6:38-40), 성령으로 부활하셨습니다(롬8:11). 우리를 결박해서 지옥으로 끌고 가려고 하는 죄는 예수님의 죽음으로 무너졌고, 예수가 부활하심으로 죄 없는 예수를 죽인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마귀의 권세가 무너져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마귀를 없이 하시며(히2:14)”,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 죄를 짓게 해서 지옥 보내는 원수 같은 일을 멸하러 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 예수 안에서 사망의 세력에서 자유하고, 죄에서 자유한 것입니다.


말로만 거듭난 사람들

그런데 예수 믿기가 부끄러운 사람들이 있잖아요. 직장에서도 예수 믿는다는 소리를 제대로 못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여러분, 예수는 나의 자랑이요 기업이요 영광입니다. 우리가 마땅히 자원해서라도 죽을 수 있는 분이 바로 예수입니다. 우리는 예수 앞에 비겁해서는 안 될 만큼 은혜받은 사람이란 말입니다. 예수 믿는 일은 육신의 영광이 아니라 내 영혼의 때의 영광입니다. 제자들이 육신의 때에 무슨 영광을 가지고 살았나요. 초대교인들이 다 예수 믿는 것 때문에 순교당했잖습니까. 우리 육신은 예수 믿는 데 써야 하고, 예수를 위해 죽으려고 생겨났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영혼이 예수로 산 사람입니다. 복음으로 거듭나, 말씀으로 거듭나, 진리로 거듭나, 성령으로 거듭났습니다. 우리가 거듭났다면 진리 닮고 복음 닮고 성령 닮고 말씀 닮아야 하는데, 왜 안 닮고 세상 닮았습니까? 말로만 거듭났을 뿐, 거듭나지 않아서 그런 것입니다. 예수가 피 흘린 목적은 우리가 거듭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아버지 집에서 영원히 살게 하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들을 죽는 일에 내어 주셨고, 아들은 자기 목숨을 십자가에 달려 주셨고, 성령은 초대교회 마가다락방부터 시작해서 세상 끝날까지 예수 몰라 지옥 가는 사람들에게 “예수는 자기 죄로 죽은 게 아니라, 네 죄 담당하고 죽었어. 회개하고 예수 믿고 천국 가자”라고 복음 전하십니다. 예수를 제일 잘 아시는 분이 성령이십니다. 예수는 성령으로 이끌리시고(마4:1), 성령으로 권능을 행했고(눅4:14), 성령으로 귀신을 쫓아냈고(마12:28), 성령으로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다(행10:38)고 했습니다. 또 성령으로 피 흘려 죽었고(히9:14) 성령으로 부활하셨습니다(롬8:11). 그는 승천하시며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서 자기를 알게 했으니 성령받은 자는 예수를 알고 가졌습니다. 십자가의 사건이 성령의 사건으로 결론지어서 하나님의 모든 뜻을 내가 가져야 될 일입니다.


유대인에게는 예수님의 십자가가 거리낌입니다. 자신들의 제사장, 장로, 서기관, 랍비가 예수를 신성모독죄로 죽였는데, 어떻게 구세주로 믿을 수 있겠습니까.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했는데, 예수님 시대에 전도할 때 십자가에 달려서 처형당한 예수를 믿으니 얼마나 미련하게 봤겠어요? 지금도 예수 믿고 천국 가자고 하면 “여보시오, 천국이 어디 있어? 멍청한 사람 같으니라고” 하며 미련하게 봅니다. 그런데 우리는 성령의 지혜와 지식과 믿음과 분별력으로 알고 믿고 가졌으니 행복한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예수가 부끄러운 사람들
제가 교회 개척해서 지금까지 한 모든 설교의 주제는 예수입니다. 이 세상에는 예수가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기도할 때 그 이름이 필요하고, 죄 사함 받을 때도 그의 피가 필요하고, 악한 영을 몰아낼 때도 그의 이름이 필요하고, 이 땅에 살아갈 때도 그의 말씀이 필요하니 우린 예수 없으면 살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를 말하는 사람을 미련하다 했듯 혹시 여러분도 예수 말하기가 부끄럽습니까. 예수께서도 “네가 사람들 앞에서 나를 향하여 부인하니? 나도 천사들과 아버지 앞에서 너를 부인할 거야. 네가 나를 부끄럽게 생각하냐? 나도 부끄럽게 생각할 거야”(마10:33, 눅9:26). 예수님은 우리에게 부끄러우신 분이 아니라 평생 나팔을 불어도 내가 그를 말할 수 있는 영광이 너무 크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천하만국이 필요하냐,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것이 필요하냐 한다면, 여러분은 천하만국을 원할 겁니다. 마귀는 그렇게 하기를 바랍니다. ‘네가 육신을 가졌기 때문에 원할 것이다. 나중에 예수 잘 믿으면 돼지 뭐.’ 그러면서 예수 십자가 피의 공로를 이용하고, 하나님 앞에서 다시 회개할 수 있다고 하는 회개의 기회를 이용합니다. 예수 피는 여러분이 육신의 정욕을 채우는 데 이용되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어느 시대든지 마귀는 똑같이 역사하니 예수 믿기 힘듭니다. 그러나 우리는 끝까지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일에 이겨야 합니다. 아담은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해서 죽었으나 우리는 순종해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자는 말씀에 따른 약속의 복이 있습니다. 우리 주님이 무엇이 아쉬워서 “내 명예를 네게 주노니 내 이름으로 구하라 내가 시행하리니” 하셨나요. 다만 우리가 죄 아래서 멸망하지 말라고, 악한 마귀 사단 귀신에게 끌려서 지옥에 가지 말라고 십자가 지신 주님의 그 아쉬운 사랑이 여러분에게 이루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637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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