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말씀] 최후에 심판하시는 주님의 목소리

등록날짜 [ 2019-08-27 15:35:34 ]

하나님 명령대로 살았느냐 안 살았느냐
검토조차 않는 것이 제일 심각한 문제
예수님 말씀 놓고 심판 받아 지옥 가지 말고
순종해서 은혜받아 영생과 축복 누리기를


도적같이 임할 주님 재림의 날
지금은 언제 어느 때에 주님이 오실지라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성경에서 주님이 하신 약속의 말씀이 다 이루어졌습니다.


온 세상을 꾀는 마귀 역사가 가득하고, 세상 풍속으로 우리의 믿음을 타락시키고 외식하게 하고 미혹하게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의 역사가 산재해 있습니다. 주님께서 경고하신 대로, 세상 풍속에 매여 세상과 더불어 짝지으면서 마귀·사단·귀신 역사와 더불어 행동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향하여 성경에서는 주님이 도적같이 오신다고 했습니다. ‘지금은 주님이 오시지 않아, 안전하고 평안해’ 하며 어두움의 주관자에 결박당해서 세속에 물들어 세상 재미에 빠진 사람들에게는 주님이 도적같이 오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을 사모하며 기다리는 사람에게, 즉 빛의 아들들에게는 도적같이 임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주님이 우리에게 하신 재림의 약속을 절대로 잊지 말고 항상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 재림의 기약을 다 잊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또 주님의 재림을 두려워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지금 오시면 안 되는데…’ 하면서 말입니다. 신앙생활을 오죽 잘못 했으면 주님이 재림하실까 봐 두려울까요? 그런데 ‘어제도, 오늘도 주님이 안 오셨는데 내일도 안 오시겠지 뭐!’라며 심각하게 생각지 않습니다. 그러면 당신이 생애를 마감하는 날은 어떻게 될까요? 죽음은 연령·성별·빈부 차이 없이 어느 날 어떻게 내게 닥칠지 모르니,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듯 항상 천국 갈 준비를 분명하게 해 놓아야 합니다.


‘신앙생활’은 천국 가기 위해 간절하고 진실하게 주님 오실 날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만약 그렇게 살지 않는다면, 신앙생활의 목적도, 애절함도, 진실함도 없는 사람입니다. 그럴 거면 은혜는 도대체 왜 받는 것입니까. 주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구세주라는 사실을 확실히 믿는다면서, 예수의 목소리를 듣고도 안 믿고 지옥 갈 때 얼마나 억울하고 분하겠습니까? 우리는 신앙생활을 잘못할 때마다 ‘그럴 수도 있지 뭐’라고 위로받으려 하지 말고, 억울하고 분하게 여겨서 회개하고 돌아서야 합니다.


빛으로 오신 예수
하나님 말씀은 공의(公義)의 법이기에 순종하면 은혜의 법이지만, 불순종하면 심판의 법입니다. 그런데 어찌해서 하나님 말씀대로 살고 있는지, 진짜 예수를 믿고 있는지 자기 검토를 하지 않습니까? 내 영혼이 천국 가느냐, 지옥 가느냐가 달린 이 엄청난 하나님 말씀을 어찌해서 간과하느냐는 말입니다. 이것은 악한 영, 어두움의 주관자가 그렇게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설교 들을 때는 필요성이 있다고 여기는데, 예배당 문을 나서면 필요성을 잊습니다. 이것이 자갈밭에 떨어진 씨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하신 말씀, 그의 생애 전부를 믿어야 합니다.


예수께서 외치시기를 “나를 본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본 것이니라” 하셨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그 말씀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단 적그리스도들이 주로 유혹하는 사람이 누구일까요. 신비주의, 즉 하나님 말씀을 듣고도 뭔가 만족하지 못하고, 뭔가 눈으로 봐야 하고, 귀로 들어야 하고, 꿈에라도 봤으면 좋겠다고 하는 사람들은 이단에 잘 빠집니다. 그런 사람들이 절대 시험에 들지 않도록 “보고 믿는 자보다 안 보고 말씀을 듣고 믿는 자가 복”이라고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왜 우리가 샤머니즘에 넘어갈까요? 예수님은 “내 말을 잘 들으라” “내 말을 잘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예수의 말씀을 안 듣고 안 지키니까 엉뚱한 영이 엉뚱한 영적 논리를 들고 들어와서 내 이성이나 감성에 호소할 때 자기도 모르게 미혹받아 넘어간다는 말입니다. 하나님 말씀에는 반드시 창조적 능력이 있고 예수라는 이름으로 나타나는 이적이 있습니다. 어떤 이적도 예수 이름으로 하지 않은 이적은 가짜입니다. 말세에는 가짜 이적을 보고 많은 수가 미혹돼서 따라간다고 마태복음 24장에 말했잖습니까.


그런데 왜 예수께서 “나를 믿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고 나를 본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보는 것이다”라고 외쳐도 유대인들이 믿지 않았을까요?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요1:5)고 했습니다. 어두움에 거하니까 모르는 것입니다. 본문 46절에서 주님께서는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 무릇 나를 믿는 자로 어두움에 거하지 않게 하려 함이로라”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어두움에서 거하지 말고 빛으로 오신 예수를 보고 알아야 합니다.


저도 목회하면서 유혹을 받았습니다. 누가 어떤 유혹을 할지라도 주님과 나의 관계는 깨뜨릴 수 없습니다. 빛이 있으면 압니다. 아브라함에게 하나님 말씀이 얼마나 강하게 들렸기에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하나님이 지시하신 땅으로 말씀을 좇아갔을까요. 거기 도착해서 보니 물 한 방울 안 나오는 척박한 땅인데도 한마디 원망이 없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하나님 말씀 자체가 아브라함에게는 ‘부유’였던 것입니다. 어두운 사람들은 이런 것을 전혀 모릅니다.


말씀은 지키는 데 목적이 있다

하나님 말씀의 목적은 말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지키는 데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지킵니까? 47절에 “사람이 내 말을 듣고 지키지 아니할찌라도 내가 저를 심판하지 아니하노라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라”라고 했습니다. 네가 내 말을 안 들어도 심판하지 않지만, 너를 구원하러 왔다는 말은 안 들은 것을 기억하고 회개하고 앞으로 지켜 구원받으라는 말씀입니다. 48절에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나의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하리라.” 이 말씀이 하나님이요, 예수님 자신이요, 성령님 자신이라는 말입니다. 삼위(三位) 하나님이 분명히 심판하실 테니, 그때가 오기 전에 빨리 회개하고, 빨리 순종하라고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목숨이 끝날 때까지 기회를 주는데 놓치면 안타깝잖습니까.


우리 인생의 봄은 어느 때일까요? 바로 내가 알고, 보고, 내 인생의 작품을 내려고 주님 앞에 신령한 씨를 뿌릴 수 있는, 하나님 말씀을 알고 순종하고 은혜를 알고 충성하는 때입니다. 영혼의 때 거둘 것이 많은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하나님은 사랑이시니 하늘나라에 가면 다 상(賞)이 있지!”라고 합니다. 심은 대로 거두고, 행한 대로 갚는데 어찌 순종하지 않고 충성하지 않는데도 무조건 구원받고 무조건 상이 있다고 말합니까. 이런 말을 듣고 신앙생활 한다면 그 성도는 희망이 없습니다. 안 지켜도 일하지 않아도 하나님이 다 주신다는데, 그 사람에게는 하나님 말씀을 지킬 기회도 없고 일할 기회도 없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성경에 있는 그대로를 믿는 것이지, 사람의 말을 믿는 게 아닙니다. 오직 주님 목소리만 나의 믿음이 되어야 하는데 그 목소리가 나의 믿음이 안 될 때, 최후 내 영혼의 때의 결과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내가 한 그 말이 너를 심판하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내용은 성경에 다 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아버지도 나를 증거하시고 성경도 나를 증거하고 나도 나를 증거하고 성령도 나를 증거한다”(요8:18)고 했습니다. 우리는 성경 전체가 다 하나님의 목소리인데 그 목소리대로 안 살면 예수를 증거하는 하나님을 저버렸기에 ‘나를 저버린 자는 심판해서 나도 저버리겠다’는 참 두려운 이야기입니다.


목숨보다 큰 것
요한계시록 12장에 마귀는 자기 때가 얼마 남지 않아서 분(忿)내어 내려가서 예수 복음 증거하는 자들과 하나님 말씀을 지키는 자들과 더불어 싸우려고 바닷가 모래 위에 섰다고 했습니다. 그러더니 결국 요한계시록 20장에 복음증거하는 자들, 하나님 말씀 지키는 자들의 목을 쳐서 죽였습니다. 그래서 목숨보다 큰 것이 하나님 말씀을 지키는 것이요, 목숨보다 큰 것이 예수님 복음 증거인데, 우리는 죽이는 자도 없는데 복음을 전하지 않고 말씀을 안 지킵니다. 그러면 죽이는 자가 있다고 할 때, 그 말씀을 지키는 자와 안 지키는 자의 차이를 얼마나 클 것입니까. 안 지키는 자는 예수를 부인하고 떠나갈 것이고, 지키는 자는 그대로 깔끔하게 말씀을 지키다 순교할 것입니다. 우리의 선택은 어떤 것이 돼야 할까요? 그래서 하나님 말씀을 지키는 것과 복음 증거는 내 목숨보다 크다는 것입니다. 우상숭배를 하지 않는 것과 이단 짐승에게 빠지지 않는 것은 내 목숨보다 크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영적인 영원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구분하지 못하면 신앙생활을 못 하는 겁니다.


명령이 영생
주님이 ‘그대로 살았느냐, 안 살았느냐’고 심판할 때 여기 안 걸리는 사람 누가 있겠습니까. 49절에 “내 자의로 말하는 것이 아니요”라고 했습니다.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해 주셨으니 내 말을 명령으로 들어야 하는데 이 명령이 영생이라는 것입니다. 이 명령에 불복종하면 영생에서 이탈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이름으로 기도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믿음으로 기도하라”는 말씀은 명령입니다. 지금 우리 교회에는 기도해야 할 절체절명의 사건이 앞에 놓여 있습니다. 이번 목회자영적세미나에 세계 105국가에서 오고, 우리나라 전역에서 오는데, 이 목사가 어떻게 하면 지치지 않고 하나님이 주신 영감을 받아서 예수 피의 정신으로 그 목회자들에게 말씀을 전하느냐, 이것은 내 사정이 아니라 주님 사정입니다. 이 사정을 놓고 기도하는 것은 우리 교인 전체의 사명입니다.


아담이 에덴 동산에서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했기에 ‘죄의 삯은 사망이요(롬6:24)’라는 말씀에 따라 우리는 이미 지옥 갈 신세가 됐습니다. 우리가 지옥 가서 당할 고통을 어떻게 견디겠습니까. 그래서 살려 주려고 예수님께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셨고, 예수께서 하나님의 명령대로 찔리고, 상하고, 징계받고, 채찍에 맞고, 십자가에 피 흘려 죽어서 나의 허물과 하나님과 원수 된 죄를 해결해 하나님과 나 사이에 평화를 이루어 주셨다면, 우리는 이제 다시 과거로 돌아가지 말아야 합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주님 말씀이, 명령이 영생인 줄 알고 목숨은 내놓아도 하나님 말씀을 지켜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공의로운 말씀을, 은혜의 말씀을 두고 “하나님 말씀은 사랑이신데 하나님 말씀을 좀 안 지켰다고 우리를 지옥 보내겠는가? 한번 믿으면 천국 가는데?”라며 성경에 없는 소리를 합니까?


포기·좌절·망각의 그물
성령 충만이 사라지고 정욕적인 사람이 되면, 기도하기가 싫증납니다. 남·여전도회에서 회비 내라고 해도 “왜 이렇게 회비만 내라고 하는지 모르겠네” 하고 아까워하고 못 내면서 스마트폰은 잘 삽니다. 그 전에는 매사 기도하고 싶고, 예물 드리고 싶고, 충성하고 싶고, 전도하고 싶더니, 어느 순간 기도 못 하고 금방 싫증 내며 ‘아, 이제 기도 못 하겠네. 그런데 과거에는 어떻게 했나 모르겠네’라고 합니다. 내가 한 것이 아니라 성령이 하게 하신 것입니다.


싫증 나니 주의 일이 매사에 피곤합니다. 그런데 텔레비전, 유튜브는 아무리 봐도 피곤하지 않고, 쓸데없는 잡담은 아무리 해도 피곤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다 마귀가 만든 일입니다. 피곤하고 싫증 나면 결국 게으르고 “어차피 못 하는 것 포기하자”며 좌절하고 맙니다. 다음에는 망각합니다. 자기 일이 아니라 다 남의 일이 되고, 구경꾼이 되고 맙니다. 이렇게 차례차례 망치는 것인데 이 그물에 한번 걸리면 거의 빠져 나오지 못합니다. 이러다가 양심에 화인(火印) 맞는 것입니다. 여기 걸려들면 안 되니까 우리 교회가 부흥성회를 그렇게 자주 여는 것입니다. 걸려들어서 망하기 전에 살려 내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귀 사단 귀신이 그렇게 쉽게 말 몇 마디 한다고 듣게 만들겠습니까? 직장에서 상사 말 한마디는 그렇게 잘 들으면서, 교회에서는 백 마디 해도 안 듣게 합니다. 이게 다 불순종하게 하는 악한 귀신 역사니, 여기서 벗어나야 한마디가 명령으로 들립니다. 오히려 명령으로 듣고 행하는 사람을 바라볼 때, ‘뭐 저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하며 망각 상태에 빠지니 그때는 정말 일어나기 힘들어집니다. 설교를 들어도 밤낮 한 소리 같고, 부흥회라도 와서 소생하고 싶은데 기도도 안 나오고, 집회 끝나는 순간 과거와 똑같아집니다. 이런 사람은 이미 불순종으로 도배해서 불순종의 올무라는 죄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인데, 십자가 피의 공로를 바라보면서 며칠이고 몇 달이고 통곡하며 회개할 기회가 와야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 명령대로 살고 있는지 확실히 검토하라
제일 심각한 문제는 내가 하나님 명령대로 살았느냐, 안 살았느냐를 검토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많이 듣는 사람은 말씀에 젖어 있어서 내 안에서 그 말씀이 소리치고 움직여 갑니다. 성경에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정신을 바짝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했습니다. 이 말씀을 듣고도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주님과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기도를 안 하니 회개할 기회가 없습니다. 죄는 항상 짓는데 어떻게 천국 가겠습니까? 기도 안 하는 것은 일상이고 텔레비전 보고 유튜브 보는 것, 삼일예배 안 드리는 것도 아무 죄로 여기지 않습니다. 이쯤 되면 이 사람에게는 피 흘리신 주님의 십자가 피의 공로가 얼마나 가치가 없느냐는 말입니다. 구원받은 자의 태도는 주를 위해 죽고 주를 위해 살아 마땅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놓고 심판받아 지옥 가지 말고, 순종해서 은혜받아 영생과 축복이 내 몫이 되기를 바랍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639호> 기사입니다.


    아이디 로그인

    아이디 회원가입을 하시겠습니까?
    회원가입 바로가기

    아이디/비번 찾기

    소셜 로그인

    연세광장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