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말씀] 예수님의 말씀은 명령이요, 영생입니다

등록날짜 [ 2019-12-09 14:07:17 ]

요한복음 12장 44~50절
예수께서 외쳐 가라사대 나를 믿는 자는 나를 믿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며 나를 보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보는 것이니라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 무릇 나를 믿는 자로 어두움에 거하지 않게 하려 함이로라 사람이 내 말을 듣고 지키지 아니할찌라도 내가 저를 심판하지 아니하노라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라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나의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하리라 내가 내 자의로 말한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나의 말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으니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줄 아노라 그러므로 나의 이르는 것은 내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이르노라 하시니라


“내가 너희에게 준 말씀이 생명이란다. 

밥 먹은 힘으로 살려 하지 말고, 말씀 들어
얻는 힘으로 성령의 인도 따라 미혹하는
마귀·사단·귀신을 이기고 천국까지 가라!”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생명으로 사는 사람
하나님은 생명(生命)의 근원이십니다. 하나님만이 생명의 생산자이시기에 영원히 사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원히 사는 자기 생명을 주려고 인간을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생명으로 살게 하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生靈)이 된지라”(창2:7). 그러므로 누구든지 하나님께서 생명의 공급을 중단하시면 그 시간 그의 생명도 끝이 납니다. 누가복음 12장에 소출이 풍성한 농부가 ‘곡간을 더 크게 짓고 여러 해 쓸 곡식과 물건을 쌓아 두었으니 내 영혼아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할 때 예수께서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눅12:20)라고 물으십니다. 그러니 우리는 절대 하나님 앞에 함부로 살면 안 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려 들지 않습니다. 그러면서도 ‘내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으니 하나님이 내 영혼에 부어 주시는 생기가 중단될까 두렵다’라고 하지 않고, 그저 목숨이 존재하기 때문에 현재 사는 삶이 영원하리라고 오해하며 살아갑니다.


성경에 므두셀라가 969세를 향수했다고 하더니 노아 홍수 이후에는 ‘인간의 연수는 120세라’(창6:3) 하고, 시편에서는 ‘인간의 연수는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시90:10)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인간의 연수는 짧아집니다. 우리 육체는 이 땅에서 아무리 대단한 존재처럼 살아도 인생을 마감할 때는 흙으로 돌아가는 흙덩어리에 불과합니다. 그런 날이 오기 전에 내 영혼이 영원히 사는 영적 존재임을 깊이 인식해야 합니다.


불순종한 죄로 생명의 공급이 중단된 사람
내 영혼은 영원히 사는 영적 존재인데, 그 영원한 생명이 중단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했기에 아담처럼 생명이 끝나 버리는 존재가 되고 맙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 ‘죄의 삯은 사망’(롬6:23)이기에 아담처럼 불순종한 죄로 생명이 끝나 버렸다는 말입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자는 가난한 사람이 아닙니다. 멸시받고 천대받는 사람도 아닙니다. 생명(生命)이 끝나 버린 사람, 곧 하나님과 단절된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바로 ‘불순종의 자식들’입니다.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엡2:2). 세상 풍속은 육신의 희망대로, 육신의 요구대로 사는 것입니다. 불순종의 아들들은 육신의 요구를 통해서 끈질기게 미혹하는 마귀의 궤계를 좇아 육신이 좋아하는 것을 좇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자신이 하나님과 끊어졌는지 아닌지 알지 못한 채 교회에만 왔다 갔다 하면서 “나야 열심히 신앙생활 했으니 천국 가겠지”라고 오해합니다.


영적으로 참혹한 사람이 누구일까요? 세상 사람들은 남의 집에서 빌어먹는 거지를 보고 “참 딱하다”고 할 것입니다. 누가복음 16장에 나오는 거지 나사로도 부잣집 문턱에 앉아 개와 나눠 먹는 불쌍한 처지였습니다. 하지만 거지 나사로는 부자가 부럽지 않았습니다. 나사로의 꿈은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육신이 끝나면 천국에 가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정말 불쌍한 사람은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생명이 중단된 자입니다.


불순종으로 오는 영육의 처절한 절망
하나님은 하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네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창3:16). 아기 낳는 고통은 죽을 뻔하고 낳으면 그만이지만, 그 자식들이 자라서 큰 자식이 작은 자식을 돌로 쳐 죽였을 때 그 고통은 산고에 비할 수 있겠습니까. 그 끔찍한 고통이 바로 죗값으로 당하는 고통이라는 말입니다. 나아가 그 영혼이 당하는 고통은 또 어떻습니까. 이 세상의 언어를 총동원해도 멸망의 지옥 고통은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우리는 이런 고통을 면하려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처럼 불순종하려고 듣는 것이 아니라 순종해서 살려고 듣는 것입니다.


우리는 불순종의 결과가 얼마나 비참한지를 아담을 통해서, 노아 홍수 사건을 통해서, 소돔과 고모라를 통해서 이미 알고 있습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그와 같은 사실을 알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너만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서 영육 간의 처절한 멸망에 처하지 말라”는 간절한 권고인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불순종할까요? 자신도 모르게 마귀에게 미혹당해서 그렇습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려면 현실에 막대한 손해를 볼 때도 있습니다. 그러니 ‘뭐 까짓것, 이번 한 번쯤이야. 하나님도 내 사정 이해하실 거야’라며 불순종합니다.


예수님은 우리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자기 몸이 찔려야 하는 순종, 상해야 하는 순종, 징계받아야 하는 순종, 저주받아야 하는 순종, 채찍에 맞아야 하는 순종, 결국엔 십자가에 처절하게 못 박혀 죽어야 하는 순종을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구원받아 내 영혼이 살았으니, 우리도 순종하며 살아야 합니다.


마귀에게 미혹받아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한 자들은 다 지옥에 있습니다(계20:10). 우리는 무슨 일이 있어도 마귀에게 미혹당하는 자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현재 신앙생활에 불만을 품거나 나태합니까. 그렇다면 당신은 이미 마귀에게 미혹당한 것입니다. 말씀대로 사는 일에 게으르고 나태했다가, 마귀에게 미혹당한 줄도 모르고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한 죗값으로 목숨이 끝나는 순간 지옥에 간다면 얼마나 비참합니까. 다른 것은 다 뒤로 미루어도 하나님 말씀이 들려올 때 모든 일보다 우선해서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에는 약속이 있고, 축복이 있고, 생명이 있고, 영생이 있고, 천국이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에는 아들 예수가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에는 그 예수가 육신을 입고 오셔서 찔리고 상하고 징계받고 채찍에 맞고 저주받고 십자가에 피 흘려서 나를 구원하신 은혜의 운반이 있습니다. 그 말씀을 받아들이는 자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자요, 하나님의 생명을 받아들이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을 받아들이는 자는 육신은 계속 *후패(朽敗)해 가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후패: 썩어 문드러짐


죄를 생산하지 않는 방법은 하나님 말씀에 순종뿐
이 세상 어떤 고량진미(膏粱珍味)를 먹은들 그것이 영혼에 생명을 공급하겠습니까. 육체는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세월 따라 늙어 갑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세월을 주신 것은 말씀을 따라 살라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준 말씀이 생명이란다. 밥 먹은 힘으로 살려 하지 말고, 말씀을 들어 얻는 힘으로 성령의 인도 따라 미혹하는 마귀·사단·귀신을 이기고 천국까지 가라!”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소리를 들으십시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곧 육신이 하나님 말씀 따라 살아서 자기 영혼을 ‘천국까지 데려다 놓아라’는 뜻입니다.


마귀는 항상 거짓말하는 자입니다. ‘네가 이 과실을 먹으면 하나님처럼 된다’(창3:5)라고 속삭이는 마귀의 유혹대로 선악과를 먹었을 때, 아담과 하와가 어떻게 됐나요? 정녕 죽음이 오고야 말았습니다. 마귀·사단·귀신은 하나님의 원수요, 인간의 원수입니다. 원수 마귀가 내게서 죄를 생산하지 않게 하는 최상의 방법은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는 길뿐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생명을 주시려 인간에게 말씀하실 때, ‘명령’으로 하셨습니다. 천지만물도 하나님 명령대로 만들어졌고, 그 명령에 순종해서 지금까지 존재합니다. 그 말씀대로 지음받은 우리도 그 명령에 따라 영원히 사는 ‘영생(永生)의 사람’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말씀인 성경은 “하라”와 “하지 말라”는 두 가지 명령으로 돼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 믿는다면서 “하라”는 것을 안 하고, “하지 말라”는 것은 하려고 듭니다. 마귀역사는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 하신 일을 억세게 하게 만듭니다. 영혼의 유익이 아닌, 육신의 유익을 위해서 말입니다. 마귀는 육신에게 유익한 것을 만들어 놓고 우리를 유혹합니다.


영적인 부자는 하나님 나라를 소유하는 것
하나님 말씀의 명령대로 살려면 육신에게는 손해인 것 같아 보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시험에 드는 사람도 있습니다. 제가 집사 시절, 교회에서 심방을 담당했을 때 일입니다. 어느 집사가 단단히 시험에 들었다고 해서 심방했습니다. 그 집사는 시험 든 이유를 말합니다.


“성경에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면 창고가 넘치도록 복을 주신다’고 했는데 저는 11년째 빠짐없이 십일조를 정확하게 하나님께 드렸는데 왜 집 한 채 없어 전세살이를 면치 못합니까?”


저는 간절히 기도한 다음,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사실 때, 부자로 사셨다는 말씀을 들어 보신 적 있나요? 예수님은 병 고치고, 귀신 쫓아내고, 죽은 자 살리는 등 이적을 나타내셨고, 인간을 향해 수없이 행복한 일을 해 주셨는데, 왜 그렇게 찔리고 상하고 징계받고 채찍에 맞고 잔인하게 피 흘려 죽으셨을까요?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가 하신 약속을 이루기 위해서 그 말씀대로 죽으시고, 말씀대로 부활하셨는데, 그것이 우리의 육신이 잘되라고 그런 것인가요, 우리 영혼이 구원받으라고 그런 것인가요?”


그 집사는 잠시 후 “영혼이 구원받으라고 그렇게 말씀대로 다 이루셨습니다”라고 답합니다.
“그러면 내가 죄와 사망과 지옥에서 예수로 구원받았다면 이보다 더 큰 복이 어디 있습니까? 우리가 죗값으로 지옥에서 당할 고통을 예수님이 십자가로 대신 담당해 갚아 주셔서 이를 믿고 구원을 받으면 충분하지 않은가요?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복은 출세하고 돈이 많은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복은 세상이 말하는 복과 다릅니다. 만약 당신이 십일조를 내서 창고가 넘칠 만큼 복 받은 부자가 됐다고 합시다. 성경은 부자가 천국 가기는 약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기보다 어렵다고 했습니다(마19:23~24). 부자는 예수보다 돈을 더 사랑하고, 영혼보다 육신을 더 챙깁니다. 그렇지 않고는 부자가 될 수 없어요. 예수님은 우리에게 돈 주려고 오신 것이 아니라 영생하는 생명의 말씀을 주러 오셨습니다.”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아노라’(요12:50)고 했습니다. 지구를 다 가져도 천국에 갈 수 없습니다. ‘영적 부자’는 ‘하나님의 나라 천국을 소유한 자’입니다. 하나님께 십일조 드린 것이 없어진 줄 아십니까? 당신이 십일조 드려서 교회가 잘 운영되면, 당신이 하나님 말씀을 듣고 순종해 생명을 유지하고 그 말씀 안에 있는 약속의 복을 계속 받을 것입니다. 또 당신이 온전한 십일조를 드렸다면 그것으로 세계만방에 복음을 증거해 수많은 영혼이 구원받는, 예수님의 십자가 피의 공로를 운반하는 수레로 사용됐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드린 십일조가 하늘나라에서 없어질까요. 이 세상에서는 아무리 큰 창고에 쌓아 둬도 목숨 끝나면 그만이지만, 하나님께 드린 것은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 영원히 내 영혼의 몫입니다. 이만큼 넘치는 복을 받았으면 됐지 왜 신령한 것을 드리고 언젠가는 썩어질 것을 요구합니까.” 우리 성도들은 이처럼 속지 말고 신령한 영적인 부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말씀이 영생이요, 명령
‘거듭났다’는 말은 ‘과거에 육신으로 살고 이 세상 물리적 조건으로 살던 내가 이제는 영적 조건으로, 영원한 말씀으로, 예수의 피와 살로, 그의 생명으로 영원히 산다’라고 삶의 지식을 바꾼 것입니다. 이런 변화가 없다면 당신은 거듭난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 말씀을 듣기만 하는 데 그치지 말고, 들었으면 확실하게 자기 자신을 바꾸고 고쳐서 주님이 하라는 것은 하고, 하지 말라는 것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목사의 설교를 통해 하나님께서 아무리 말씀하셔도 듣지 않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마귀는, 말씀을 듣게는 하지만 예배당 문을 나가면서부터 ‘그렇게 살아야겠다’라는 신앙의 본질을 잊게 하고, 하나님 말씀을 기억에서 사라지게 합니다.
베드로가 주님 앞에서 “내가 죽을지라도 주님을 절대 부인하지 않겠습니다”라고 장담했으나 대제사장 가야바 집 뜰에서 예수께서 고난당하시자 자기도 해를 당할까 봐 두려워 주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합니다. 그런데 닭이 우는 순간, “네가 닭 울기 전에 나를 세 번 부인하리라” 하신 주님 말씀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 통곡합니다. 내가 어디 가든지 주님의 신령한 목소리가 베드로의 배신을 일깨우는 닭 울음소리처럼 들려와야 합니다. 말씀이 안 들리면 대책이 없습니다. 교회에 영생하려고 옵니다. 바로 이 말씀이 영생이요, 명령입니다. 그냥 말씀해서는 듣지 않으니까 ‘명령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영생을 주러 오신 분인 줄도 모르고, 그의 말씀이 하나님 말씀인 줄도 모르니까 답답하고 애가 터집니다.


어떤 직분을 주시든 사용당하며 순종할 뿐
2020회계연도 직분자를 임명할 때, 저는 남·여전도회장에게 말했습니다. “2020년에 비록 연약한 육신이라도 하나님 앞에 가장 좋은 작품을 내드리고 싶으니 나와 함께 갑시다.” 그들이 “아멘” 하고 눈물로 받아들입니다. 신앙생활 잘해서 남 줍니까?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서 남 줍니까? 오늘 당장 목숨이 끝나 하늘나라 가면 주님 일을 한 것은 내게 보상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 은혜에 감사해서 마음 다해 일할 뿐입니다. 주님의 일꾼으로서 일하고 주님 나라 가서 아버지 영광을 함께 보기를 기대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순종이고, 사심이 없는 것입니다. 육신은 하나님이 어떤 직분을 주시든지 사용당하고 순종하는 지체일 뿐입니다.


‘내 말을 지키지 않아도 나는 너를 심판하지 않는다. 그런데 마지막 날 심판할 이가 있다. 그가 누구냐? 내가 한 그 말이 너를 심판할 거야’(요12:47~48)라는 말씀은 마지막 최후의 심판을 받을 때 성경책을 펼쳐 놓고 ‘이대로 살았느냐 못 살았느냐, 그 말씀대로 행했느냐 안 행했느냐’ 하고 심판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하셨듯 우리는 말씀 따라 천국까지 가야 합니다.


예수께서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요6:63) 하셨는데 여러분은 하나님 말씀을 영으로, 생명으로 듣습니까?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축복하십니다. 예수 잘 믿으면 부자 됩니다. 예수 믿으면 세상에서 형통합니다”라고 말하기를 좋아합니다. 하지만 성도들의 영혼은 세상에서 복 받는다는 말보다 자기의 영적 문제를 다룰 때 더욱더 관심을 갖습니다. 영적 문제에서 우리를 살려 주시려 하나님은 아들을 보내 주셨고, 성령을 보내 주셨고, 지금도 내 영혼이 먹고 마시고 살도록 하나님 말씀을 주셨으니 교회는 영적 문제를 다루는 곳입니다. 육신이 듣고 싶은 말은 한계가 있으나 성경은 다 영적으로 듣고 싶은 말입니다.


영생의 말씀을 환영하여 순종하는 자 되라
어떤 분이 제게 묻습니다. “목회하시는 동안 아무것도 모은 것이 없어서 나중에 목회 그만두면 뭣 먹고 살려고 그럽니까?” 그분은 저를 아무것도 없는 자로 보지만, 제가 진짜 가지고 있는 것을 모르십니다. 제가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신앙생활 한 것, 주를 위해 산 것이 다 하나님 나라에 부유로 가득합니다. 세상은 육신이 가진 물리적인 것들을 소유해야 무엇을 가진 줄로 오해하는데, 저는 그와 비교할 수 없이 좋은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상 것은 아무리 가져도 더 갖고 싶지만, 하나님의 것은 조금만 가져도 만족합니다. 말씀을 가진 자는 하나님 자신을 가진 자요,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를 모신 자요, 진리의 성령을 모신 자니 삼위 하나님이 내 안에 계시니 하나님의 나라도 내 안에 있습니다. 오늘도 말씀이신 하나님이 제 안에 계셔서 영생의 말씀을 공급하고 이 많은 사람에게 다 줄 수 있으니 제가 얼마나 부자입니까. 영생의 말씀을 가지고 있으니 부자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생명을 줄 수 있는 부자, 영원한 양식인 그의 살과 피를 나눌 수 있는 부자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흥이 많아서 겉으로는 마냥 행복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찢어지게 가난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하나님 말씀을 듣고 영적 생명을 얻어 성령 충만해지고 하나님의 나라가 그 안에 거하니 천지간에 그렇게 행복해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자로, 하나님 안에서 영적인 신령한 부자로 만들려고 아프리카에 가서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것입니다. 세상 부유와 물질은 주면 줄수록 내 속에서는 소모되나 하나님 것은 주면 줄수록 그것보다 더 큰 것으로 내게서 재생산되고 있으니 영적으로 부유하기 원하면 남에게 주라는 말입니다.


우리에게 이런 영적 부유를 누리게 하시려는 주님의 뜨거운 사랑의 절규, 피를 쏟듯 외치는 그분의 말씀을 듣지 않는다면, 당신은 구제불능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그렇게 말씀을 통해서 자기 생명을 애타게 주시려고 인간을 사랑하고, 영원한 지옥 고통에서 벗어나 천국에서 살게 하시려는지 안다면, 그것도 모자라 독생자를 보내서 십자가에 피 흘려 죽여서 ‘내 살 받아 먹어. 내 피 받아 마셔’(마26:26~28) 하신 은혜를 받은 자라면,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습니까. 내가 하나님을 향해 감사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고, 찬양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고, 가진 것 드리지 않고는 견딜 수 없고, 죽도록 충성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습니다.


예수께서 세상에 빛으로 오셔서 자기를 보고 알게 하시고, 진리로 오셔서 듣고 깨닫게 하시고, 영원한 생명으로 오셔서 주님과 함께 살게 하셨으니, 그분의 말씀을 환영합시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환영합시다. 성령의 역사를 환영합시다. 이 말씀이 성령이요, 진리입니다. 이 말씀이 나를 죄와 사망과 지옥에서 구원하셨고, 영생과 천국을 주셨으니 이 말씀을 환영하여 순종하는 자 되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653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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