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말씀] 회개하여 죄 사함을 받으라

등록날짜 [ 2020-03-21 12:24:43 ]

사도행전 2장 37~42절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가로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침례를 받으매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하나님은 천지 만물을 지은 창조자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조한 피조물 중 우리 인간에게 특별한 은혜를 베푸셨는데, 인간의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현재와 미래, 그리고 영원에 이르는 은혜입니다. 다른 만물은 한번 살다 죽으면 끝나는 단회적 존재로 지으셨지만, 우리 인간은 영구적이고 항구적인 존재로 지으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창2:7).

하나님은 영원히 살게 하려고 아담을 지었으니, 아담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영적 존재’라는 뜻입니다. 인간의 목숨이 끊어지면 육체는 한줌의 흙으로 돌아가지만(창3:19), 그 영혼은 하나님께로 돌아가 하나님과 더불어 영원히 사는 영적 존재입니다. 이처럼 인간만 영적 존재로 지어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살게 하셨기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책임지고 양육하시는, 사랑받을 권리를 가진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원히 사는 영적 존재인 아담에게 하나님 자신이 창조한 모든 만물을 다 소유하고 정복하고 다스리며 살게 하셨지만, 선악과만은 먹으면 정녕 죽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창2:16~17). 하나님께서 이렇게 일러주신 것은, 선악과를 먹으면 바로 그 영혼이 죽어 불순종한 죗값으로 지옥에 가서 영원히 고통당하기에 절대로 멸망의 고통을 당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허락하신 또 다른 특별한 은혜는 지·정·의라는 ‘인격’을 주신 것입니다. 아담은 지성(知性)에 따라 선악과를 먹으면 안 된다는 지식을 가졌을 때, 자기 의지(意志)에 따라 먹지 않으리라 결심했고 만물을 주신 하나님께 감성(感性) 에 따라 감사하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눈에 보이지 않는 마귀역사가 뱀을 통해서 하와를 꾀어 선악과를 먹게 했습니다. 먹는 순간, 정녕 죽으리라는 하나님 말씀대로 죽음이 왔으니 겉모양은 아담과 하와 그대로지만, 하나님께서 코에 생기를 불어넣은 생령(生靈)인 그 영혼이 죽었습니다. 먹지 말라는 실과를 먹고 영원히 죽게 된 인간을 살려 내기 위해서, 오직 영원하신 분은 하나님밖에 없기에 자기 품속에 있는 독생자를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는 죄 없는 거룩하신 분인데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신 것입니다. 왜 육신을 입고 오셨을까요? 로마서에 말하기를 아담 한 사람이 죄를 범했기에 아담 안에서 태어나는 모든 사람은 다 죄인이 됐고 아담과 똑같은 죽음을 갖게 됐습니다(롬5:12). 첫 사람 아담 안에 인류 전체가 다 들어 있었다는 뜻입니다. 죗값은 사망이기에 모든 사람이 결국 멸망하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생명의 기업으로 주셨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의 아들은 성령으로 처녀에게 잉태돼 태어났습니다(사7:14). 죄인인 사람의 씨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죄의 유전이 없이 처녀에게 말씀이 육신이 되어 태어나신 것입니다(마1:18~25). 그리고 이 땅에 태어나셨기에 성경에 예언하신 대로 다 행하셨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53:5~6).

예수가 우리의 죄악을 담당해 해결해 주지 않으셨다면 인류는 영육 간에 멸망합니다. 그리고 예수는 자기 이름을 주셔서 우리를 보존하기 바라십니다(요17:11~12). 에덴동산의 아담과 하와를 미혹해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게 했듯, 마귀는 지금도 끊임없이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도록 우리에게 역사하고 있습니다. 이를 이기는 유일한 비결은 마귀역사를 알고, 보고, 이기는 예수께 의지하는 것입니다.

또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요14:14) 하셨으니, 예수께서는 자기 이름을 걸고 기도하면 그의 명예를 위해서 응답하십니다. 예수 이름을 믿는 믿음은 영생(永生)하고, 천국 가고, 죄와 사망과 지옥에서 구원받기에 목숨보다 큽니다. 우리는 영원하고 신령한 것을 가졌으니 그 이름으로 주신 예수의 생애를 놓칠 수 없습니다.

말씀대로 사는지 살펴보고 아니면 회개하라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우리에게 주셨고, 예수는 “내 살을 받아 먹어, 내 피를 받아 마셔”(요6:54~55) 하시며 자기 생명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주님의 살과 피가 내 안에 있기에 예수로 살게 됐고, 하나님 아들의 살과 피가 내 안에 있기에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양육하실 책임이 있고, 우리는 자녀로서 양육받을 권리를 가졌으니, 피조물인 우리 신분이 얼마나 격상됐으며,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완전히 보호받고 있습니까.

우리에게 자녀라는 권세만 주신 것이 아닙니다.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롬8:16~18).

일제강점기와 6.25 사변 때 예수 믿는 성도가 얼마나 많이 핍박받고 순교했습니까. 아무리 목숨이 끊어져도 피 흘려 나를 구원하신 예수를 배신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예수가 있는 곳에는 반드시 핍박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영혼은 육체가 끝남과 동시에 하나님 아버지의 집에 가서 영원히 행복하게 살게 하셨습니다(요14:1~3).

사랑하는 성도여, 우리에게 세상 핍박과 환난과 고통과 수많은 어려움이 와도 그때를 지나면 영원한 아버지 집에 갈 수 있으니, 우리 주님이 핍박을 받듯 주님의 몸 된 교회가 핍박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시기 바랍니다.

성경에는 하나님 말씀을 듣지 않고,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을 마지막 심판 때 타는 불못에 던진다고 했습니다. 육신은 불구덩이에 빠지면 타고 죽지만, 영혼은 비물질이요 무형상이요 존재요 인격이기에 타지 않고 죽지도 않고 영원히 고통만 당합니다. 여기 죄 없다는 사람이 있습니까? 하나님을 알지 못한 것이 죄입니다. 하나님이 만든 공기를 마시고, 하나님이 만든 물을 마시고, 하나님이 만든 흙을 밟고, 하나님이 만든 모든 열매를 먹고, 하나님이 만든 태양에너지를 사용하고, 하나님이 만든 육체를 내 것으로 사용하며 살지 않습니까. 그 모두가 하나님의 소유인 줄 모르는 것이 죄입니다.

천지 만물은 하나님이 정하신 법대로 움직입니다. 저 태양과 지구와 별들은 인격이 없으나,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창조 때부터 지금까지 움직여 가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에게도 사는 법을 주셨으니, 바로 하나님 말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말씀의 법대로 사는지 우리 자신을 살펴보고 그렇지 못하다면 반드시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해서 예수 십자가 피의 공로 만나야
예수가 인간의 죄로 받을 지옥 형벌을 해결해 주시려고 걸어가신 공생애 첫 음성이 “회개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선지자의 첫 음성도, 제자들의 첫 음성도 “회개하라”였습니다. ‘회개(悔改)’는 뜯어고쳐서 다시는 과거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과거의 본성(本性)이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십자가라는 쓰디쓴 고통의 잔이 얼마나 두렵고 고통스러운지 알아야 하고, 살 찢고 피 흘려 죽어 주신 그 고통의 분량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진정한 회개를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이 내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 죽으신 만큼이나 진실하게 회개해야 주님께 인정받습니다.

신앙 양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예수님이 이렇게 고통스럽게 내 죄 때문에 죽어 주셨으니, “주님이 채찍에 맞아 온 몸 찢기고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신 것은 바로 내 죄 때문입니다. 내가 그렇게 죽어야 할 죄인인데 주님이 대신 죽으셨습니다”라고 죄를 쏟아내며 진정으로 회개해야 합니다.

만약 내가 빌라도의 법정에서 채찍에 맞아 살이 쭉쭉 찢어지며 뼈가 부러지고 최후에 십자가를 짊어지고 골고다에 올라 십자가에 잔인하게 못 박혀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겪다 여섯 시간을 지나 죽어야 하는데, 주님이 대신 그 모든 고난을 담당해 주셨다면 주님의 고난을 간단하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의 신앙은 종교생활이 아닙니다. 주님과 나의 이 뜨거운 은혜와 사랑의 가슴 저린 만남입니다.

우리는 살기 위한 절대적 생존 본능으로 회개하여 멸망하는 죄를 토해내야 합니다. 주님이 우리 죄를 짊어지고 찔린 만큼이나, 상한 만큼이나, 징계받으신 만큼이나, 저주받으신 만큼이나, 모진 채찍을 맞으신 만큼이나, 십자가에 달려서 잔인하게 고통 속에 죽어 주신 만큼이나 주님의 심정과 마음을 알고 “내 죄 때문에 주님이 이 고통을 당했으니 감사합니다” 하고 죄를 꺼내 놓을 때 그 진정한 회개를 주님께서 받아주실 것입니다.

교회 와서 회개한답시고 자책(自責)하는 도덕적 회개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주님의 피를 망각하고, 주님의 고통을 망각한 회개는 자책일 뿐입니다. 도덕적 회개는 자기 행위를 어느 정도 고칠 수 있으나 완전히 고칠 수 없으며, 자기 영혼을 죄와 사망과 지옥에서 구원할 수 없습니다. 자신의 영혼을 구원할 수 없는 회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피의 공로와 무관합니다.

예수께서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셔서 인류의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피 쏟아 죽으신 것은, “내가 저렇게 죽어야 될 만큼 죄인인데 내 죄 짊어지고 예수가 죽어서 나를 살렸구나”라고 깨달아 내가 얼마나 죄인인지, 동시에 내가 얼마나 사랑받았는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죄를 해결할 때 사랑은 내 안에 저절로 이루어지니, 회개해서 예수의 십자가 피 공로를 만나고, 그 피의 공로로 생명을 얻어 그 사랑으로 사시기 바랍니다.

“주님 죽어서 나를 살렸어요”라고 고백하라
성령 충만해진 베드로가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고 외칠 때,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이 얼마나 찔렸겠습니까? 하나님을 최고로 잘 섬긴다는 장로, 제사장, 바리새인, 서기관, 랍비들이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이 보낸 메시아 구세주를 죄 있다 죽였으니, 하나님 앞에 형벌을 어찌 피하겠습니까? 일반 사람을 죽인 것도 아니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으니, 무서운 저주와 죽음을 어찌 피하겠습니까? 그래서 그들은 처절히 후회하면서 베드로와 다른 사도에게 묻습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나님의 아들을 죽인 무서운 죄를 어떻게 용서 받을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말합니다.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행2:37~39).

베드로는 성령의 감동에 따라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고 합니다. 즉 회개하라, ‘예수는 네 죄 짊어지고 죽었으니 네가 그렇게 죽을 자임을 고백하면서 물속에 들어가라, 또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 하시고 죽으셔서 사흘 만에 부활하셨으니 네 죽을 죄가 없어져서 너를 죄와 사망과 지옥에서 구원했으니 너도 물에서 나오면서 주님과 함께 산 자가 되었다’고 고백해야합니다. 이보다 더한 회개의 고백이 어디 있겠습니까. 침례할 때 물속에 들어가면서 “주님이 나 위해서 이렇게 죽었어요. 내가 죽을 죄인입니다”라고 고백하고, 물에서 나오면서 “주님이 죽어서 나를 살렸어요”라고 고백한다면 이보다 더 큰 회개의 고백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렇게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또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는 것은 ‘너희가 하나님의 아들까지 죽이는 패역한 자들이 아니었더냐, 이 패역한 세대에서 나와서 구원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50일 전만 해도 “예수를 죽여라, 돌로도 아니고 불로도 아니고 십자가 최고의 형으로 죽여라” 하며 부르짖던 그들이었지만, 베드로가 성령의 감동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임이 잘못된 것, 부활하신 주님이 죄가 없으신 것, 오히려 그들의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 달려 피 흘려 죽으셔서 너희 죄를 담당하셨다는 것을 설교할 때 그 말씀을 믿고 가슴을 치며 회개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회개하여 침례를 받으매 그 날에 회개하고 돌아와 구원받는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했습니다.

내 의지대로 육신의 정욕대로 산 죄 회개하라
누구든지 자신의 죄를 회개한다고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피를 망각한다면 이는 자책일 뿐이요, 속죄받을 가망성은 전혀 없으니 죄와 사망과 지옥에서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참된 회개는 예수만이 구주라 시인하는 것이요,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심을 확실하고 분명하게 시인하는 것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히 사는 생명의 피와 영원한 지옥 고통을 확실하게 바꿔내는 것입니다.

우리가 왜 순종합니까. 불순종한 죄를 회개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왜 충성합니까. 불충한 죄를 회개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왜 예배합니까. 하나님께서 영육 간에 베푸신 그 크신 은혜를 무시하고 스스로 산 죄를 회개하고 영원히 사는 속죄의 은총을 우리에게 주셨기에 감격해서 예배합니다. 예배는 주님이 나 위해 피 흘리신 은혜에 대한 진실한 감사의 최고 표현이요, 주님의 피의 공로를 배신할 수 없는 최고의 행위입니다. 우리는 오늘 죽어도 영생과 천국이 내 안에 있음을 예배로 확증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왜 전도합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피 쏟아 죽으신 목적을 영적 존재인 모든 인류에게 이루어 죄와 사망과 지옥에서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예수가 죽으심으로 이루셨습니다. 그 구원이 내게도 이루어졌으니, 나만이 아니라 전 인류 단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든 자에게 이루어지기를 주님이 바라시기에 전도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우리가 왜 찬양합니까. 주님이 내게 주신 크나큰 은혜에 대한 감사를 잊었던 죄를 회개했기에 구세주 예수께 찬양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우리는 얼마나 회개해야 할까요? 우리는 옛 구습을 벗을 만큼, 과거의 나는 찾으려야 찾을 수 없을 만큼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범한 죄, 하나님과 나의 관계 속에서 구속의 은총을 주시려고 그토록 생애를 가지고 자기를 찢어 피 쏟아 나를 구원하신 은혜를 싸구려로 취급한 죄를 회개합시다. 여러분이 받은 구원은 싸구려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소중한 하나밖에 없는 독생자를 죽였습니다. 아들은 자기 목숨을 주셨습니다.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죽음으로 해결해 주셔서 우리를 구원했으니 싸구려가 아닙니다. 엄청난 축복입니다. 이 구원을 싸구려로 보기 때문에 과거로, 옛 구습으로 돌아가면서 신앙생활을 아무리 해도 바뀌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기 품속에 있는 아들 예수를 육신을 입고 이 땅에 보내서 우리가 지옥 가지 말라고, 고통당하지 말라고, 천국에서 아버지와 함께 영원히 살라고 우리 죄를 아들에게 대신 짊어지워 죽게 해서 우리를 죄와 사망과 지옥에서 구원했다면 이것이 싸구려입니까. 회개를 싸구려로 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하나님 앞에 내가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못하고 자행자지(自行自止) 해서 내 의지대로 육신의 정욕대로 산 죄를 회개합시다. 하나님이 하지 말라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하라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예수 믿는다면 종교생활에 불과하지 예수 믿는 것은 아닙니다. 회개하라 외치시는 우리 주님의 목소리, 성령의 소리를 듣고 회개함으로 죄 사함을 받고 성령 충만하십시오. 회개하여 죄는 떠나가 예수 피의 공로가 충만하고, 죽음은 떠나가 예수 생명이 충만하고, 저주는 떠나가 예수의 축복이 충만하고, 질병은 떠나가 건강이 충만하고, 예수가 주시는 그 모든 은혜를 소유하기를 예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668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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