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말씀]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생명의 문으로

등록날짜 [ 2020-03-28 10:44:12 ]

마태복음 7장 13~14절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우리는 세상이 비웃고, 외면하고,

무시하고, 조롱해도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문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피의 문(門)만이

죄와 사망과 지옥으로 가는 멸망의 길을

벗어나서 피 흘리신 예수와 

영원히, 영원히 함께하는

생명의 문, 영생의 문, 행복의 문입니다


하나님께 가지 못하는 영혼이 갈 곳은 지옥뿐

하나님은 사람을 지으신 조물주요, 창조자십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실 때 흙으로 육신을 만들고 코에 생기를 불어 넣어 사람이 생령이 되게 하셨습니다(창2:7). 사람은, ‘생령(生靈)’인 영혼이 육신을 입고 살아갑니다. 이처럼 사람을 영적 존재로 지으신 것은 하나님께서 영원하심과 같이 사람도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살게 하려 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영혼은 영원히 사는 존재요, 육신은 70~80년 살다가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갑니다. 성경에 “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시90:10)라고 하신 대로 말입니다. 우리의 영혼은 하나님에게서 왔으니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로 돌아가고 싶어도 하나님을 알아야 돌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창조한 영적 존재 인간에게, 하나님이 누구시며 어떤 존재인지 알려 주시기 위해 자기 자신을 말씀으로 나타내셨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요1:1).


하나님은 최초의 사람 아담에게 자신이 창조하신 만물을 다 주시면서 “소유하고 정복하고 다스리라”(창1:28)고 했습니다. 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2:17)고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선악과를 먹으면 하나님 말씀을 불순종한 죄로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생명이 중단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먹으면 죽는다’고 일러주신 것은 ‘죽어서는 안 된다’는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강렬한 사랑의 표현입니다. 이처럼 일러주셨는데도 아담이 마귀에게 속아 선악과를 먹자 즉시 죽음이 임했습니다. 육신은 사라져 없어져도, 영혼은 영원히 불타는 지옥 형벌을 받게 된 것입니다.


이 땅에서도 법을 범하면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면 “죄의 삯은 사망”(롬6:23)이기에 육신이 끝나는 순간에 그 영혼이 하나님 말씀을 범한 형벌로 지옥에 가서 영원히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가로놓인 죄(罪)라는 ‘담’입니다. 사람은 목숨이 끊어지면 육체는 그대로 있는데 아무리 불러도 대답하지 않고, 흔들어도 움직이지 않습니다. 이것이 죽은 자와 산 자의 ‘담’입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죄의 담 때문에 하나님께서 아무리 말씀하셔도 사람이 그 말씀을 듣지 못합니다.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 이는 너희 손이 피에, 너희 손가락이 죄악에 더러웠으며 너희 입술은 거짓을 말하며 너희 혀는 악독을 발함이라”(사59:1~3).


세상 최고의 악덕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요,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는 것이요, 하나님 말씀의 법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인간이 아무리 손을 들어 하나님의 도움을 구해도 얻지 못하는 것은 바로 죄라는 담이 가로막혔기 때문이라고 하나님께서 일러주셨습니다. 인간은 죄를 해결하지 않고는 절대로 하나님께 갈 수 없는 절망적인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 가지 못하는 영혼이 갈 곳은 지옥밖에 더 있겠습니까.


기독교의 최고의 힘은 사랑과 용서와 참는 것

누가복음 16장에 나오는 부자(富者)는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안긴 나사로를 보자 절규합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에서 고민하나이다.” 부자는 이 세상에서 호화로이 연락(宴樂)하며 살았지만, 거지 나사로는 부자 집 문턱에서 얻어먹었고 병들어 헌 데를 개가 핥을 정도로 비참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목숨이 끝나는 날, 나사로는 살아생전에 자기 영혼의 때가 있는 줄 알고 하나님을 섬겼기에 천국에서 행복하게 살지만, 부자는 영혼의 때를 까마득히 잊고 육신만을 좇아 살았기에 음부의 불꽃 가운데서 고통당하는 것입니다. 목숨이 끊어지는 순간, 육신으로 있을 때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도전하고, 말씀에 불순종한 자에게는 부자처럼 절망적인 영혼의 때가 도래하는 것입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예수 믿는다고 핍박을 참 많이 받았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심한 핍박을 받아도 두 가지 때문에 예수를 꼭 믿어야 했습니다. 첫째,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셔서 내 죗값을 갚아 구원하신 예수를 절대로 배신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둘째, 내 영혼이 예수를 배신하고 내 죗값으로 지옥 간다면 그 영원한 고통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한 죄, 하나님 말씀을 불순종한 죄, 하나님이 하지 말라 한 일을 한 죄, 이런 죄를 짊어지고 죗값으로 지옥에 가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가끔 예수 믿는다는 이유로 억울한 일을 당한 성도가 제게 와서 말합니다. “너무 억울하고 분하니 제가 가서 따지고 오면 안 되겠습니까?” 그럴 때 저는 이렇게 말해 줍니다. “당신에게 잘못하기 전에 하나님께 잘못했으니, 하나님께 잘못한 자가 죽으면 어디 가겠습니까? 지옥 갈 수밖에 없으니 참으로 불쌍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그를 위해서 기도해 주고 사랑해 주십시오!”


예수님께서 능력이 없어 그가 모진 매를 맞았으며, 십자가에 매달려 돌아가셨습니까? 예수는 죽은 자를 살렸고, 소경을 보게 했고, 파도치는 바다를 말씀으로 잔잔케 한 천지 만물을 지으신 창조주이십니다. 그러나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대신 죽어서 죗값을 갚고 우리를 회개하게 해 천국 보내려고 이 땅에 오셨기에, 우리 인간을 한없이 사랑하셔서 참으신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의 최고의 힘은 사랑과 용서와 인내입니다. 육신이 있을 때까지는 지는 것 같으나, 결국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한 것이니, 영혼의 때는 이긴 것입니다.


예수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

그러나 인간은 아담 때부터 하나님이 먹지 말라는 실과를 먹어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했고, 지금도 하지 말라는 죄는 다 지으며 살아갑니다. 성경에 예수께서 “사람을 미워해도 살인한 것이요,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어도 이미 간음한 것”(마5:21~28)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남을 비판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마7:1~2). 누가 이런 죄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까. 아무리 죄를 안 짓고 지옥 가지 않으려 몸부림쳐도 우리 힘으로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같이 절망적인 인간에게 하나님을 만날 절호의 기회를 주셨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행4:12).


제자들이 예수를 죽인 장로, 서기관, 랍비, 바리새인 앞에서 당당하게 말합니다. “너희가 죽인 예수는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이다. 그는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 예수를 죽인 자들 앞에서 ‘예수가 다시 사셨다’라고 말할 때, 예수와 똑같이 신성 모독죄로 십자가 죽음을 면치 못할 텐데도 그렇게 대담하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은 그것이 분명한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예수를 사대 성인(聖人)이라고 말합니다. 고대 로마의 사형법 중 가장 극형에 해당하는 십자가형(十字架刑)에 처한 자, 만장일치로 죽여야 한다고 외칠 만큼 동정의 여지를 받지 못한 죄인 중의 죄인 예수를 어찌 우리는 ‘구세주’라고 말하며, 어찌 세상 사람도 그를 사대 성인이라고 말합니까. 세상 수많은 사람 중 예수가 태어난 날만 ‘성탄(聖誕)’이라고 부르는 데서 알 수 있듯, 이 지구 안에 거룩한 분은 예수밖에 없습니다. 예수가 이 땅에 오신 것은 나와 여러분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시기 위해서입니다.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죽었다는 증거로 예수는 사흘 만에 부활했습니다. 법정에서 사형 선고를 받았을지라도 죄 없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사형선고에서 벗어나지 않습니까. 예수께서 사흘 만에 부활하신 것은 죄 없는 분이라는 분명한 증거입니다.


죄 회개치 못하면 자기 영혼 구할 수 없어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요10:7~9).


예수 그리스도는 죄를 사함받아 하나님 아버지 집으로 들어가는 문(門)입니다. 또 예수만이 지옥으로 가는 길을 닫을 문입니다. 예수께서 인류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어 그 죗값을 갚는 순간, 철통같은 죄의 담을 허물었습니다.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새롭고 산 길이 열린 것입니다(히10:19~20).


예수 십자가 피의 공로의 문은 죄를 들고는 들어가지 못합니다. 그래서 남을 미워한 죄, 음욕을 품은 죄, 남을 비판한 죄, 사랑하지 않은 죄를 가지고는 못 들어갑니다. 오직 예수 피의 의(義)만 가지고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처음으로 하신 말씀이 “회개하라(메타노이테)”입니다. 곧 ‘돌이켜라, 수정해라’ 즉 ‘네 삶의 지식을 수정해서 예수께서 하신 말씀이 옳다고 인정하고 피 흘리신 그 문으로 들어오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아무리 피 흘렸어도, 예수님이 피 흘려 죽으실 만큼 내가 죄인임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 피가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아무리 예수 믿으라고 해도 자기가 죄인이요, 그 죗값으로 목숨 끊어지는 순간 자기 영혼이 지옥에 가서 영원히 고통당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예수를 믿지 않습니다. 예수 피가 아무리 바다를 이뤄도, 내가 죄인이라고 깨달아 죄를 회개치 못하면 죄와 사망과 지옥 형벌에서 자기 영혼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 믿는 목적은 예수 십자가 피의 공로로 죄 사함 받고, 예수께서 열어놓은 문으로 들어 가서 육신이 끝나는 순간 천국에서 영원히 살려는 것입니다.


회개해서 죄 사함받고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려야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다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하라는 일을 내가 하는지, 안 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우리 영혼이 하나님 앞에 서는 날, 하나님 말씀을 놓고 자기 행위를 정확하게 심판받아 하나님 말씀과 다르면 유황 불못에 던져진다고 했습니다(계20:12~15). 그래서 하나님 말씀대로 살려고 몸부림치고, 죄를 안 지려고 몸부림치고, 죄를 지었다면 철저히 회개합니다. 예수 피의 공로로 죄 사함 받아서 언제 어디서 내 육신이 한 줌 흙으로 돌아가든지 천국 갈 준비를 갖추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삶입니다. 하나님 앞에 의로운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는 모두 의롭지 못한 죄인이기에 예수 십자가 피의 공로 앞에 회개해서 죄 사함 받고 의로워져서 천국에 가려고 예수 믿는 것입니다.


제가 집사 때 어느 분께 예수를 믿으라고 전도했더니 그가 말합니다.


“여보시오, 나는 예수 믿기는 다 틀렸소. 세상에서 온갖 못된 짓을 다 저질렀는데 나 같은 놈이 어떻게 교회 가서 예수를 믿겠습니까?” “예, 그러니까 당신은 예수 믿을 자격이 있습니다.” 죄인만이 예수 믿을 자격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죄를 깨달았기에 예수 믿을 자격이 있고, 회개했기에 그 자격으로 죄 사함 받았고, 믿음으로 의로워졌습니다.


죄인인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문은, 예수 십자가 피의 공로로 우리에게 허락하신 바로 그 문입니다. 우리는 예수께서 그 피로 열어주신 그 문을 열고 들어가 하나님을 뵙고, 피로 구원하신 은혜에 감사해서 예배합니다(요4:23). 그냥 말로 구원한 것이 아니라 아버지는 아들을 희생했고, 아들은 인류의 죄를 짊어지고 대속물로 죽어 우리 죄를 해결했으니, 누가 하나님을 뵙는 일을 막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뵙는 것이 예배입니다. 예배는 종교의식이 아닙니다.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요4:23).


피 흘려서 나를 구원하시고 회개로 죄 사함 받게 하셔서 하나님 나라 갈 수 있게 해 주신 그 은혜에 감사해서, 그 피를 들고 하나님을 뵙는 것이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예배 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공로를 망각한다면, 누가 하나님께 나갈 수 있으며, 어떻게 하나님을 뵐 수 있겠습니까. 우리의 충성, 순종, 사랑, 전도, 감사 등 하나님을 향한 모든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 공로라는 문으로 들어가 하나님을 뵙고 은혜받은 자답게 감사 행위를 보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외모로 보지 않으시고, 중심을 보십니다(삼상16:7). 내 마음 중심에 피 쏟아 구원하신 주님 은혜 감사하여 그 피 공로를 들고, 속죄 은총을 들고 하나님을 뵙기 바랍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도 죄의 담 때문에 하나님과 가로막혔다면 어찌 응답받겠습니까. 기도의 향연이 주님이 피 흘려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가로막은 죄의 담을 헐어서 열어놓으신 피의 문을 통과해서 하나님께로 올라가야 기도응답을 받습니다(계8:3~4). 하나님의 최고 관심사는 자기 아들입니다. 우리가 회개해 죄를 아들의 피와 바꿔서 그 피의 생명으로 살고, 그 피가 우리 안에 있을 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관심을 두십니다. 그러니 예수 이름으로 기도할 때, 어찌 하나님께 상달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예수 이름은 구원의 이름, 생명의 이름입니다.


예수만이 생명의 문, 영생의 문, 행복의 문

오직 하나님께 나아가는 구원의 문, 생명의 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라는 유일무이(唯一無二)한 문입니다. 성경은 이 문을 ‘좁은 문’이라 했습니다(마7:13~14).


‘좁은 문’으로 가는 사람은 매우 적습니다. 지구상에 78억 인구가 살고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가 나를 천국 보내려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산 죄를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 달려 피 흘려 죽어 주셔서 나를 구원했다는 사실을 아무리 말해도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예수 믿노라 해도 넓은 길로 가는 사람은 그저 육신이 원하는 대로, 육신의 복을 사모합니다. 그러다 자기 뜻대로 안 되면 “믿어도 되는 것도 없네” 하며 좌절하고 낙망하고 시험 듭니다. 우리는 그런 차원에서 예수 믿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 피 흘려 죽으러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그의 십자가 피 공로로 인류 구원의 이름 ‘예수 이름’을 이루시는 것이 예수의 생애요, 그것을 믿는 자에게 구원이 이루어집니다.


사람들은 육신으로 살다가 육신이 끝나면 모든 것이 그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죽음을 두려워할까요? 창세 이래 모든 인간은 세월이라는 무덤에 다 묻혔습니다. 누가 세월을 초월해서 살아갈 수 있습니까? 그러나 우리에게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공로, 내 영혼이 받은 구원은 세월을 초월하고, 육신이 끝나면 세월 없는 천국에서 영원히 삽니다. 그런데 지옥에서 고통 중에 영원히 산다면, 그 아픔과 슬픔과 절망을 어찌하겠습니까? 우리가 그런 신세를 면하고 예수 때문에 천국에서 영원히 살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세상의 돈, 명예, 권세, 부귀영화를 갈망하는 사람들에게는 예수가 아무런 의미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믿는다고 해서 돈이나 권세나 부귀영화를 가질 수 없으니까요. 예수 믿으면 오히려 돈, 명예, 권세를 초월해야 하니까, 예수를 믿고 싶지도 인정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주일에 교회 가서 고리타분하게 뭣 하는지 모르겠네” 하면서 그들이 버린, 그들이 인정하지 않는 예수를 우리는 발견했습니다. 세상에 아무런 소망 없는 거지 나사로 같은 자가 들어가는 문, 죄로 하나님과 닫힌 것을 알아 살고 싶어서 예수의 피로 회개한 경험을 가진 자들만 들어가는 문입니다. 십자가의 피로 여신 단 하나의 문은 아들을 버리신 하나님 아버지의 극진하신 사랑과 피 쏟으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은혜를 소유케 하는 문입니다.


이 땅에서 우리가 거지가 되고 비록 몸은 병들었어도 육신이 있을 때 예수 십자가 피의 공로로 죄를 회개해 하늘나라로 가는 문만 열렸다면 당신은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세상이 비웃고, 외면하고, 무시하고, 조롱해도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문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피의 문만이 내 영혼이 죄와 사망과 지옥으로 가는 멸망의 길을 벗어나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생명을 얻어 아버지 집에서 예수와 영원히, 영원히 함께할 수 있습니다. 그 문은 생명의 문, 영생의 문, 행복의 문입니다.


우리는 모두 이 그리스도의 피의 문을 찾아 그 피의 문으로 들어가서 저 천국에서 영원히 행복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669호> 기사입니다.


    아이디 로그인

    아이디 회원가입을 하시겠습니까?
    회원가입 바로가기

    아이디/비번 찾기

    소셜 로그인

    연세광장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