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말씀] 피 흘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등록날짜 [ 2020-04-18 10:50:30 ]

요한복음 20장 1~9절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와서 돌이 무덤에서 옮겨간 것을 보고 시몬 베드로와 예수의 사랑하시던 그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되 사람이 주를 무덤에서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겠다 하니 베드로와 그 다른 제자가 나가서 무덤으로 갈쌔 둘이 같이 달음질하더니 그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더 빨리 달아나서 먼저 무덤에 이르러 구푸려 세마포 놓인 것을 보았으나 들어가지는 아니하였더니 시몬 베드로도 따라 와서 무덤에 들어가 보니 세마포가 놓였고 또 머리를 쌌던 수건은 세마포와 함께 놓이지 않고 딴 곳에 개켜 있더라 그 때에야 무덤에 먼저 왔던 그 다른 제자도 들어가 보고 믿더라 (저희는 성경에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신 말씀을 아직 알지 못하더라)”



세상 것을 못 가졌다고 원망하고, 예수

믿어도 되는 것이 없다고 불평한다면,

부활의 믿음을 갖지 못한 사람입니다

부활 생명을 주신 주님께 감사하여
주님 일이라면 앞장서서 충성해야



예수만이 길이요, 진리요, 부활의 생명
아담 때부터 죄 아래서 영원히 죽은 인류의 영혼은,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으로 말미암아 살게 됐습니다. 만약 인간이 자기 육체를 마감하는 순간 영혼이 지옥에 가서 세세토록 불과 유황 불 못 속에서 죽지도, 타지도 않고 영원히 고통만 당한다는 사실을 안다면, 하루하루 세월 가는 것이 얼마나 괴롭겠습니까. 하지만 인간은 그 사실을 전혀 모르기에 태평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사실을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아담 사건을 성경에 기록해서 “너희 조상 아담은 내가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 준 생명을 가지고 영원히 살게 되었으나, 내가 먹지 말라 명한 실과를 먹어 불순종한 죄로 영원히 죽게 되었고, 그 후손인 너도 같이 죽게 됐으니 네 영혼은 죗값으로 반드시 지옥에 가서 고통당한다”고 애절히 일러주십니다. 또 이런 사실을 알고 살기 원하는 자를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습니다. 예수는 인간의 죽어야 할 죗짐을 대신 짊어지고 죽으시고 부활하셨으니, 이 세상에서 정말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분은 예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는 자신을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14:6).


이 세상에는 인간이 고통을 벗어날 길이 없고, 죽음에서 벗어날 진리가 없고, 영원히 살고 싶으나 살 생명이 없습니다. 예수만이 길이요, 진리요, 부활의 생명이시니 예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습니다(요11:25~26). 죗값으로 지옥 가기로 작정된 우리가 살 방법은 예수밖에 없으니 내 영혼이 살기 위해서는 예수를 믿어야 합니다.

예수 부활 믿는 자는 부활의 열매 맺어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공생애에 외친 첫 음성이 “회개하라”였습니다. 즉, ‘너는 죄 아래서 이미 죽을 자다. 네가 죽어 지옥 가기 전 육신이 있을 때, 빨리 네 죄를 내놓아라. 내가 그 죄를 짊어지고 피 흘려 죽어 네 죄를 해결할 것이다. 그리고 너를 영원히 살게 할 것이다’라는 뜻입니다.


죽음 없는 부활은 없습니다. 생명 없는 부활도 없습니다. 죽은 자는 생명이 없는데, 예수는 살아날 생명이 있기에 부활했습니다. 예수께서 피 흘려 죽으신 것은 아담 때부터 죄를 범한 인류의 죗값을 피 흘려 죽으심으로 단번에 해결하고, 우리에게 부활을 주려 하신 것입니다. 예수가 인류의 죄를 짊어지고 죽었지만, 예수는 죄가 없어 죽을 이유가 없으니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을지라도 그의 생명은 죽지 않았기에 그의 생명으로 부활했습니다. 예수의 부활은 예수가 의로운 분이시요, 죄가 없는 분이시요, 생명을 가지고 영원히 사는 분이심을 확증한 것입니다.


이 세상 사람은 누구나 죽습니다. 한 번 죽는 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이요, 죽은 후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다고 했습니다(히9:27). 죽은 후에 심판이 있다는 말은 이 땅에 태어나 하나님의 법대로 살았느냐 못 살았느냐에 대해, 또 육신이 살아 있을 때 예수가 내 죄 짊어지고 죽어서 구원한 사실을 믿고 회개해 죄사함 받았느냐 아니냐에 대해 심판받는 것입니다.


살구씨는 매우 단단해서 ‘이 속에서 무슨 싹이 나겠나’ 싶지만, 그 씨를 땅에 심어놓으면 봄에 씨 속에서 떡잎이 나오고 자라서 살구 열매를 많이 맺습니다. 이처럼 예수는 자신의 신령한 육체로 한 알의 밀알처럼 썩어지듯 죽어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 주님이 죽었다 부활할 때 그의 죽음으로 우리의 죽음을 갚으시고, 그 사실을 믿는 자에게는 예수께서 다시 사신 것처럼 부활의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 덕분에 다시 죽지 않는 신령한 몸으로 부활한다고 할 때, 부활의 믿음을 가진 자가 이 세상에 두려울 것이 있겠습니까? 사도 바울도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롬14:8),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빌1:21)고 말한 것은 부활의 믿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만약 예수가 죽은 것으로 끝났다면, 예수가 우리 안에 성령으로 와 계실 리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분명히 다시 사셨고 그의 말씀으로, 그의 피로, 그의 영으로 우리 안에 와 계십니다. 예수가 내 안에 와계시기에 나는 죽음이라는 죄에서 벗어나 예수로 새 생명을 얻었고 예수처럼 영원히 살게 됐습니다.

부활 믿고 수고한 이에겐 하늘 집과 면류관
부활의 믿음 없이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이 땅에서 잘 먹고 잘살아야 복 받았다고 생각하고, 가난한 예수 믿는 사람들을 손가락질합니다. 제가 어렸을 때 우리 집도 예수 믿는다고 욕을 많이 먹었습니다. 예수 믿는다는 이유로 아버지가 어머니를 밤낮 핍박하고, 농사를 제대로 못 지었기에 늘 가난해 주위 분들에게 “저 집은 예수 믿다 쫄딱 망한다”고 손가락질을 받았습니다. 성경에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마5:3),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마11:5)고 했습니다. 세상 것을 못 가졌다고 불평하는 사람은 부활을 전혀 모르기 때문입니다. 부활의 믿음을 가진 사람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영원한 생명을 가졌고, 이 땅에서 부활을 알고 충성한 사람에게는 하늘에 집과 면류관과 상이 있습니다. 그러니 부활의 영광과 기쁨을 가진 사람을 누가 막겠습니까. 세상 것을 못 가졌다고 원망하고, 예수 믿어도 되는 것이 없다고 불평한다면, 부활의 믿음을 갖지 못한 사람입니다.


피 흘려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하신 것은 그가 죄로 인한 인간의 죽음을 대신하셨고,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셔서 인간을 살렸다는 증거입니다. 만약 예수가 부활 없이 그대로 무덤 속에서 살아나지 못했다면, 예수도 우리와 똑같이 죄인이라는 증거입니다. ‘죗값은 사망’이기에 죄인은 부활할 수 없습니다. 부활은 예수 자신이 죄가 없는 의로운 분이라는 것을 증거하고, 그가 생명임을 확증한 사건입니다.


우리는 부활이라는 영원한 신령한 작품을 위해 항상 죽음을 기대해야 합니다. 그런데 세상에서 어떻게든 하루라도 더 살아보려고 몸부림친다면 부활의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육으로 이 땅에서 살고자 하는 열망이 충만합니까. 이것은 바로 당신이 부활의 믿음을 안 가졌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지표입니다. 예수 믿는다면서 부활의 믿음이 없는 사람의 신앙생활은 육신의 기대와 소망으로 가득하고, 육신의 것으로 삶을 귀결하려 하니 안타깝습니다.

예수 죽음과 부활은 믿는 자들에게 생명의 축복
부활은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는 것이기에, ‘죽은 것이 확실한가’를 확인하는 일이 선행돼야 합니다. 예수의 죽음은 그 절차부터 얼마나 확실했습니까. 대제사장 가야바의 뜰에 끌려갔을 때 유대인들이 예수의 얼굴에 침을 뱉으며 때렸습니다. 당시 최고 권력자인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끌려가 십자가형을 선고받았고, 로마 군병들이 예수께 홍포를 입히고 가시관을 씌우고 갈대로 머리를 때리며 희롱했습니다(마27:28~30).


또 만인이 보는 앞에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 십자가에 달렸을 때 수많은 유대인이 예수를 조롱하고 욕을 했습니다. 십자가 형틀 위에 매달린 예수의 시신을 수습할 때도 양 옆에 달린 강도는 아직 죽지 않아서 다리를 꺾었지만, 예수는 이미 죽었기에 다리를 꺾지 않았고(요19:33) 다만 창으로 옆구리를 찔러 물과 피를 다 쏟게 했습니다. 아리마대 요셉이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신을 달라고 해서 자신의 무덤에 두었는데, 로마 군병이 와서 그 무덤 입구를 지켰습니다. 예수가 죽는 현장을 본 사람이 몇 명 없었다면, “예수가 다시 살아났다는 말은 거짓이다! 시체도 못 봤는데 부활한 것을 어떻게 믿어?’라고 주장할 수 있겠지만, 예수의 죽음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었습니다. 유대인 누구도 부인할 수 없고, 로마 총독도 부인할 수 없고, 수많은 로마 군병도 그 사실을 부인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람이 지켜보았고 그의 죽음에 가담했으니, 죽은 것이 만천하에 확실히 공개된 것입니다. 그런데도 예수가 부활하셨다는 것은, 예수는 죽을 이유가 없다는 말입니다. 예수는 성령께서 살려내셨습니다. 확실히 죽었는데 살아났다면 누가 믿으려 하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는 진짜 죽음에서 살아났기에 우리의 믿음이 되십니다.


예수는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셔서, 그의 죽으심과 부활을 믿는 자는 비록 육체는 죽어 썩으나 예수로 다시 살아 부활한 자가 됩니다. 우리는 마귀로 인해 죄를 지었기에 죗값으로 죽었고, 예수의 새 생명으로 살아났습니다. 예수의 죽으심과 부활로 인간을 영원한 죽음으로 끌고 가는 죄의 권세는 사라졌습니다.
그러므로 예수의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심은 죄 가운데서 죽어 지옥 갈 수많은 인류 영혼이 죄와 사망과 지옥의 고통에서 벗어나 영생과 저 천국에서 영원히 사는, 부활의 단 하나의 문(門)이 됐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히10:19~20).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으로 죄의 담에 가로막혀 저 천국에 도달할 수 없는 인간에게 하늘 문을 활짝 열어 주셨습니다. 하나님과 나 사이를 가로막는 죄의 담을 그의 죽음으로 헐고 예수의 피를 힘입어 들어가게 했습니다.


우리는 그 부활과 생명을 얻었기에 다시는 죄와 사망으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 흘려 죽으심과 부활은 성령으로 강력하게 전파되고 믿는 자들에게 경험되는 위대한 생명의 축복입니다.

부활은 죗값인 사망을 확실하게 이긴다는 증표
믿음에는 절차가 분명합니다. 첫째, 내가 죄인임을 아는 것 둘째, 회개해 죽게 된 죄를 내놓는 것입니다. 예수가 내 죄를 짊어지고 죽으시는 순간 죄는 더이상 나를 죽일 수 없고, 죽일 수 없는 예수 생명, 예수 피가 내 안에 있어 부활을 성취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노라 하면서, 이 부활을 자신의 부활로 믿고 살려는 의지가 없다면 영혼의 때에 영원한 부활 생명으로 살려는 믿음을 포기한 사람이요, 종교인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부활절은 2000년 전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셨다고 하는, 과거 일을 기념하는 의식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은 지금 바로 내게 현재성 있게 경험되는 생명입니다. 부활절에는, ‘죗값은 사망’이라는 죽음의 법칙대로 죄로 말미암아 죽어 지옥에 가서 영원히 고통받아야 할 내가, 나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로 말미암아 영원히 살아 천국 갈 자가 되었음을 확인하면서 감사로 마음을 쏟아 부으며 진실하게 예배해야 합니다.


예수의 부활은 의로운 사람은 절대로 죽지 않는다는 증거요, 의로운 생명은 죗값으로 죽이는 사망을 확실하게 이긴다는 증표입니다. 가야바와 빌라도가 죄 없으시고 의로운 예수를 죄 있다 죽였으나, 예수는 죄 없기에 삼 일만에 다시 사셨습니다. 그러면 그의 죽음은 무엇으로 보상합니까. 그의 죽음으로 인류의 죗값을 갚으시고 우리를 살려냈으니, 예수의 부활은 죄 없는 예수를 죽인 불법을 만천하에 드러내는 것입니다. 마귀는 사망의 세력을 가지고 예수를 죽였으나 사망의 세력은 절대로 생명을 죽일 수 없다는 증거가 부활로 입증됐고, 부활하는 순간에 죄 없는 예수를 죽인 사망의 세력은 예수를 죽인 죄로 영원히 결박당해서 지옥 가기로 결정됐습니다.


이처럼 부활에는 권세와 능력과 힘이 있습니다. 마귀는 사망의 세력을 가지고 모든 사람을 죽이기에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하기 위해서입니다(히2:14). ‘죗값은 사망’이니 사망의 세력을 없이 하려면 죄가 없어져야 하는데, 예수의 죽음으로 죄를 없애고 우리를 사망의 세력에서 살려 예수 생명으로 예수 안에서 살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사망 세력을 가진 자 마귀에게서 벗어나는 유일무이한 길은 예수 부활입니다. 할렐루야!

부활은 생명 주신 예수와 함께 영원히 사는 경험
예수의 죽음과 부활은 인류를 속죄한다는 선언입니다. 속죄받은 의로움이 곧 우리에게 부활의 새 생명으로 이루어진다고 성경은 선언하고 있고, 우리는 경험으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부활 믿음은 과거 얘기도, 비유도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내 부활이 이루어진 실상이요, 다시 사는 생명이요, 생명 주신 예수와 함께 영원히 사는 경험입니다. 그러므로 예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믿는 믿음 안에는 성도들의 새 생명이 있고 반드시 부활이 있습니다. 죄와 사망과 지옥을 파괴하는 생명의 약속이 부활로 이루어집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우리 무리의 죄악을 여호와께서는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53:5~6).


예수가 죽고 부활하지 않았다면, 예수가 찔린 것이 내 허물 때문이라고, 예수가 상한 것이 내 죄 때문이라고 어떻게 확인할 수 있습니까? 또 예수가 받은 징계가 내 징계를 대신한 것이고, 예수가 매 맞음이 내 질병을 짊어진 것이고, 예수가 받은 저주가 내 저주를 담당한 것이고, 예수가 피 흘려 죽으심이 나를 죄와 사망과 지옥에서 건지기 위해 대신 죗값을 치른 것이라고 어떻게 확인할 수 있습니까? 오직 예수 부활로 이 모든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수로 부활한 것에 감사 모르면 교만한 사람
죄 아래 죽은 내 영혼이 예수로 부활한 것에 감사할 줄 모르면 교만합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무슨 일이 있으면 “왜 나만 시키십니까?” “왜 나를 힘들게 하십니까?”라고 불평하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예수가 자기 위해서 죽어주시고 부활해서 그 생명을 주신 줄 모르거나, 그 생명을 안 받았거나, 부활과는 상관없는 사람입니다. 부활은 공짜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아들을 죽게 해야 하고, 아들은 우리 죄를 짊어지고 죽어야 하는데, 그 죽음의 고개를 넘어가기 위해 육체로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을 견디다 견디다 십자가에서 피 쏟아 죽어야 하는 값을 치르고 부활하셨고, 내게도 그 부활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은혜에 빚진 자’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부활은 아무리 찬양하고 감사해도, 백 번 죽어도 갚을 길 없는 은혜입니다. 그래서 그 은혜 앞에 충성하고 순종하고 겸손하고 온유해야 합니다. 부활 생명을 주신 주님께 감사하여 주님 일이라면 앞장서서 충성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부활의 믿음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예수 부활로 살았기에 내 평생 사는 날이 부활절이요, 천국 가서도 영원히 부활절입니다. 부활절은 부활을 망각한 이들이 깨닫고 돌아와 부활을 기억하고, 부활의 믿음을 갖고, 부활의 생명을 누리며, 부활을 주신 주님께 감사하도록 일깨워줍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항상 부활의 은혜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성령은 부활의 은혜를 입은 자들과 항상 함께하십니다. 성령받은 것은 내가 예수 피로 거룩해졌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증거요, 내게 예수 생명이 있다는 증거요, 부활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우리 모두 죄 아래서 죽은 내 영혼이 예수로 부활한 것에 감사하며, 예수로 주신 부활로 저 천국에서 영원히 살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672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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