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말씀] 탕자여, 기다리시는 아버지께로 돌아가자

등록날짜 [ 2020-05-09 10:48:25 ]

누가복음 15장 11~24절

“또 가라사대 어떤 사람이 두 아들이 있는데 그 둘째가 아비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아비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 그 후 며칠이 못되어 둘째 아들이 재물을 다 모아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허비하더니 다 없이한 후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어 저가 비로소 궁핍한지라 가서 그 나라 백성 중 하나에게 붙여 사니 그가 저를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는데 저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 이에 스스로 돌이켜 가로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군이 얼마나 많은고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군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상거가 먼데 아버지가 저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아들이 가로되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하나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저희가 즐거워하더라”



가정주일을 맞아 육신의 가정이 아무리

행복해도, 하나님과 한가족을 이루지

못한다면 장차 당신과 당신 가족의

영혼은 어디로 가겠습니까. 


먼저는 당신과 당신의 가족이

아버지께로 돌아와야 합니다. 


우리의 직분은 창조주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

하나님은 천지 만물을 말씀으로 만든 조물주이십니다. 그 천지 만물을 사용하며 살아갈 인생도 지으셨으니, 세상 모든 것이 창조자 하나님이 없이는 단 하나도 나타난 것이 없습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천지 만물과 함께 살아 가는 모든 피조물에게 생명과 함께 삶의 책임을 다할 직분을 부여하셨습니다. 그래서 만물은 각자 하나님이 창조하신 그대로 직분을 완수해 가고 있으니, 창조 이래 그 직분이 변한 것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특히 사람을 창조하실 때는 흙으로 육신을 지으시고 코에 하나님 자신의 생기를 불어넣어 사람이 생령이 되게 하셨으니, 사람은 하나님과 같은 생명을 가지고 살아가는 항구적 존재로서 영원히 사는 인격체로 지어졌습니다. 우리는 육신을 입고 살아갈 때도, 육신을 떠나 영혼의 때를 맞을 때도 하나님이 창조해 주신 목적대로 직분을 완수할 사명을 띠고 살아갑니다. 우리 인간에게 주신 직분은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 말씀을 지키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여 창조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이처럼 인간은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하나님과 같은 인격을 지니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도록 지음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허락하신 인격 속에는 지성과 감성과 의지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의지, 하나님 주신 은혜에 감사하는 감성, 이 세 가지가 합쳐져 형성된 인격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아야 합니다. 인간의 인격이 하나님이 주신 인격대로 작동한다면, 인간은 하나님이 행복하심과 같이 영원히 행복한 존재가 됩니다.


 공의의 법에서 벗어나 죄지으면 갈 곳은 지옥뿐

하나님의 공의(公義)의 법에 순종하면 그 안에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넘쳐나고, 불순종하면 공의의 법대로 심판받아 저주와 사망에 처하게 됩니다. 탕자 비유는 기어이 아버지를 떠난 자의 결국은 고생과 파멸과 죽음밖에 없고, 순종한 자의 결과는 아버지 집에서 행복과 축복이 있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오늘날의 가정에서도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공경하라,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엡6:1~4) 한 성경 말씀대로 아름다운 천륜 속에서 서로 사랑하고 책임지는 가족 관계를 이루어야 하는데, 그 말씀을 지키지 않고 성경과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으니, 탕자처럼 제 길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셨는지를 생각한다면, 우리도 창조주 하나님을 얼마나 경외하고 공경해 드려야 할까요. 우리 인간이 사용하며 살아가도록 천지 만물을 만드시고, 우리를 흙으로 지으셔서 그 코에 하나님의 생기를 불어넣어 생령이 되게 하시고, 그 모든 만물을 지배하고 다스리고 정복하며 살라고 다 주셨으니 말입니다. 본문의 탕자는 아버지와 관계 속에서 아버지의 인격과 상당한 차이를 드러냅니다. 탕자는 아버지 집을 떠날 때 아버지께 물려받은 재산을 자기 마음대로 쓰면 참으로 행복할 줄로 생각했습니다. 가지고 간 재산을 탕진하면 결국 죽음이 온다는 지식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지식이 바뀌면 탕자가 되고 맙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도 “어떻게 하나님 말씀대로 다 살아요? 하나님은 사랑이신데 하나님 말씀대로 안 산다고 설마 지옥 보내시겠어요?”라며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지식을 바꿔 가집니다. 이 사람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법을 무시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말씀이라는 법대로 신앙생활하고, 법대로 사랑받고, 법대로 은혜받습니다. 예수님도 하나님 말씀의 법대로 인간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니까 법대로 죽으시고 법대로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도 내 사정을 이해하실 거야”라고 변명을 늘어놓으며 죄를 짓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인격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서, 하나님 공의의 법에서 벗어나서 죄를 지으면 갈 곳은 지옥밖에 없습니다.


 인격적인 타락의 결과가 바로 탕자

하나님께서 인격적인 말씀으로 자신을 나타내셨기에, 하나님의 인격적인 말씀을 듣고 따르는 사람도 하나님과 동일한 인격으로 살아가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의 인격을 벗어나 마귀의 타락한 인격을 받아들여 전 인격적인 타락을 가져 왔습니다.


에덴에서 행복하던 인간에게 인격적 타락이 오는 순간, 지옥갈 비참한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창세기 3장 1~6절에 보면, 마귀는 뱀을 이용해서 아담과 하와에게 인격적 타락을 시도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한 뱀이 여자에게 묻습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그러자 여자가 뱀에게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고 대꾸합니다. 하나님이 한번 말씀하면 일점일획도 변함이 없는데, 뱀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하와는 “정녕 죽으리라”(창2:17) 하신 하나님 말씀을 “죽을까 하노라”로 변질시킵니다. 우리도 주일 예배 시작 시각을 엄수해야 함을 알면서도, 사정이 생겨 늦으면 “하나님도 내 사정 이해하시겠지” 하고 하나님과 사이에 틈을 만듭니다. 죄를 의도적으로 지으면서 “사랑의 하나님이 그까짓 작은 잘못을 했다고 해서 어찌하시겠어?” 하며 하나 하나 틈을 내어갑니다. 틈을 발견한 뱀이 여자에게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고 계속 미혹합니다. 마귀가 뱀을 통해서 “정녕 죽는다”라는 지식을 “안 죽고 하나님처럼 된다”라고 바꾸어 지성을 타락시킵니다. 여자가 뱀의 말을 듣고 “나무를 본 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하며 감성이 타락합니다. 그러니 저것을 먹는 날이면 내가 눈이 밝아져서 하나님처럼 되고 선악을 알게 되려는 의지가 생길 때, 선악과를 따먹고 남편에게도 주어 먹게 합니다. 이처럼 지성과 감성과 의지가 마귀가 원하는 쪽으로 변하는데, 마귀 역사가 한 단계 한 단계 조장해서 선악과를 먹게 만들어서 결국 죽음을 가져오게 합니다.


우리도 무엇이든지 ‘이러면 안 되지’라는 생각이 들 때, 멈춰야 하는데 ‘설마 이렇게 한다고 해서 무슨 문제가 일어나겠어?’라고 안이하게 생각해 죄를 지으면, 그때부터 다음 악한 일이 전개되고, 결국에는 멸망 단계로 들어갑니다. 예를 들어, 저녁마다 열심히 기도하던 사람이 어느 날, 기도하러 갈 때 일이 생겨 그만 기도회에 늦고 맙니다. 다음에도 비슷한 일이 생겨 또 늦습니다. 그러다 나중에는 ‘하나님도 이해하실 거야. 밤낮 하는 기도인데 오늘 하루 기도 안 하면 어때!’라고 하다가 차츰 차츰 기도해야 한다는 지식, 기도를 꼭 해야 한다는 의지, 기도해서 하나님의 은혜로 내 영이 기쁨을 누리며 살아야 한다는 감성이 무너져 갑니다. 이렇게 만들어가는 마귀역사에 시작부터 걸려들지 말아야 합니다. 인격적인 타락의 결과가 바로 탕자라는 말입니다.


신앙생활은 마귀에게 인격 지배 안 받게 하는 것

기차가 철로를 벗어나면 전복하듯, 사람이 하나님의 인격에서 벗어나면 인격적인 전복으로 파멸을 피치 못합니다. 그래서 “지킬 만 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잠4:23)”고 하신 말씀은 하나님이 네게 주신 똑바른 인격을 고장 내지 말고 잘 지키라는 뜻입니다. 성령이 오신 것은 타락한 인격을 회복해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성령의 인격으로 사는 것이 가장 원칙적으로 하나님이 창조하신 인격으로 돌아가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이같이 인격적인 타락은 한순간에 자신의 영육을 고통의 현장으로 내던지고야 맙니다.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 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창3:17~19).


탕자도 아버지 집에서 아버지의 권한으로 종을 부리면서 먹을 것 입을 것이 풍족하게 살았지만, 아버지를 떠나는 순간에 비참한 최후가 닥쳐옵니다. 영적으로 인격적인 타락은 참으로 비참하고 참혹하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영적 인격이 타락한 것을 분명하고도 확실하게 깨달아 돌아오게 하려고 율법을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타락한 인격을 회개하고 예수 믿어 아버지께로 돌아오게 해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14장 6절에 예수님이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하신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앞에 전인격적인 타락을 가지고 와 회개해서 죄 사함받으면 성령이 네 안에 임해서 성령으로 전인격이 회복되고 아버지 나라에 가게 된다’라는 뜻입니다. 예수가 내 인격을 회복할 수 있는 길이요, 진리요, 다시 사는 생명이라는 말입니다.


인간의 인격적 타락이라는 것은 창조자시며 인간 영혼의 본질이신 하나님 아버지의 계시 없이, 육신의 생각대로 육신을 위해 하나님을 떠나 스스로 살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8장 6절에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라는 말은 육신의 생각은 내 영혼을 살리려는 하나님의 인격을 전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마귀는 인간을 하나님과 분리시켜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명의 말씀대로 사는 인격을 파괴하고 탕자처럼 아버지를 떠나 자기 육신의 요구대로 살도록 미혹하고 거짓으로 역사합니다. 마귀 역사의 목적은 우리 인간을 미혹해서 세세토록 괴로움을 받는 불과 유황에 던지고자 하는 것이니(계20:10) 아버지를 떠나는 저주는 결코 우리에게 없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떠났다는 것은 탕자같이 아버지의 보호와 사랑과 은혜와 부유와 축복과 인격에서 완전히 이탈해서 가면 갈수록 죽음만 있을 뿐, 그 속에는 행복이 전혀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엡6:11)고 했으니 우리는 전인격을 타락시켜 지옥 보내려는 마귀를 알고 보고 이겨야 합니다. 영감으로 내 인격의 변화를 알고, 영의 눈이 열려 악한 자를 보고 이겨서 마귀에게 인격이 지배받지 않게 하는 것이 우리의 신앙생활입니다.


행복의 근원인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해야

본문의 탕자는 아버지를 떠납니다. 예수님은 탕자의 영, 곧 아버지를 떠난 영은 절대 성공할 수 없다고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탕자가 성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아시기에 탕자가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나의 영적인 아버지요, 우리는 아버지 집에서 아버지와 더불어 행복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사이에 행복이 깨지면 어디에서 행복이 오겠습니까? 행복의 근원이 하나님 아버지이시므로, 아무리 아버지 재산을 한아름 가지고 떠났다 하더라도 그는 이미 실패자입니다. 아버지를 떠난 탕자에게는 자기 영혼을 위해 주는 친구가 없고, 얻어 먹으려는 방탕한 사람들과 창기(倡妓)만 있을 뿐입니다. 우리도 내게 주신 한 번뿐인 육신의 때를 하나님을 떠나 정욕의 욕구 충족을 위해 탕자와 같이 세상에서 허랑방탕하게 살아서야 되겠습니까? 타락한 인격의 사람들은 자기가 죽어가는지도 모르고 그런 짓을 하고 있습니다. 탕자의 진정한 친구는 탕자를 살리기 위해서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주신 예수밖에 없습니다. 예수께서 “너희가 하나님 아버지의 계명을 지키면 나의 친구”(요15:10~14)라고 하셨으니, 하나님의 계명은 하나님의 인격에서 오기에 하나님의 인격으로 사는 자는 예수의 친구라는 것입니다.


육신의 때 놓치면 아버지께 돌아갈 길 없어

21세기 탕자여, 당신이 하나님 아버지에게서 받은 세월이 아직 남아 있습니까? 당신이 얼마나 자기 육신을 정욕을 좇아 탕진하고 낭비하는지 돌아보십시오. 육신의 때는 하나님께 돌아갈 밑천이요, 시간이요, 기회인데, 이를 놓치면 아버지께 돌아갈 길이 없습니다.


지구의 생존 기간이 얼마나 남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 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벧후3:10)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지구보다 훨씬 짧은 당신의 육신은 이 세상에서 얼마나 버티고 존재할 수 있겠습니까? 당신이 이 땅에서 육신을 가지고 버틸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시간표가 당신에게는 없고, 오직 하나님에게만 있습니다. 정신 바짝 차려서 기회를 놓치지 말고 인격을 회복하기를 바랍니다.


탕자의 고생과 방탕의 결과는 죽음뿐입니다. 잠시 후, 현재 살고 있는 이 육신의 날을 다 사용한 다음, 당신의 영혼은 어디에 가 있겠습니까? 아버지는 지금 애타게 기다리고 계십니다. 하나님 앞에 염치없는 빈손일지라도 전지전능 하시고 부유가 쇠하지 아니하시는 하나님 아버지께 돌아와 아버지의 부유를 누리기 바랍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떠나서 영적 고갈을 느낀다면 그때가 돌아올 기회입니다. 고갈마저 못 느끼고 방탕이 좋아서 세상에 빠져 있다면, 빨리 여러분의 생각을 정리해야 합니다. 사라져 가는 육신의 때는 방탕할 시간이 없습니다. 하나님과 더불어 내 영혼의 때를 위해서 살기에도, 나를 창조하신 창조자 앞에 직분을 지키기에도 시간이 모자랍니다.


세상에서 자기 육신만을 위해 세월을 낭비한 사람은 영적인 사망, 곧 죽음과 지옥 형벌이라고 하는 참혹한 결과가 기다릴 뿐입니다. 절망의 날, 지옥의 날이 오기 전에 빨리 회개하고 돌아와야 합니다. 회개는 “하나님의 인격을 네 인격으로 가져라. 하나님의 인격을 떠났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인격을 수용하라”는 말입니다. 세상은 내 영혼의 소망이 전혀 없는 곳이요, 영혼의 때를 위해 살아야 할 육신의 시간을 탕자와 같이 낭비하는 곳입니다. 주 예수의 강림이 가까운 이때가 아버지 하나님께로 돌아올 적기입니다. 더 주저할 시간이 없습니다. 잠시 후면 굶주린 탕자가 죽듯, 내 영혼의 때를 위해 살 시간이 얼마 없습니다. 최후의 날이 오기 전에 교만하고 무지한 방탕을 버리고 빨리 돌아오기 바랍니다. 아버지는 당신의 육체가 소멸되기 전에 빨리 돌아오기를 애타게 기다리십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아버지를 떠난 당신의 죄를 담당해 주시려고 아들 예수의 피를 쏟게 하시고, 당신 영혼이 아버지의 부유 안에서 함께 살기 바라십니다. 아버지는 자식이 고생하면 가슴이 쓰려 견딜 수 없습니다.


“너희 죄가 주홍 같을찌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찌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사1:18). 아버지는 죄를 묻지 않을 테니 어서 회개하고 돌아오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하나님의 인격을 짓밟고 마귀의 인격을 가져 타락했기에 갈 곳은 지옥밖에 없는데, 깨닫고 돌이키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하며 돌아오십시오. 탕자가 돌아오자 그 아버지는 살진 송아지를 잡아 잔치를 벌여 탕자를 얻은 기쁨으로 충만했습니다. 하나님은 탕자인 우리에게 자기 독생자 예수의 살을 먹고 그 피를 마셔서 영원히 살라고 아들을 주셨습니다. 어서 돌아와서 예수의 살을 먹어 영원히 살고, 예수의 피를 마셔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예수로 주시는 옷을 입어 우리 아버지의 기쁨이 되기 바랍니다.


아버지께 돌아와 예수로 사는 행복한 가정

아버지를 떠난 탕자여, 쥐엄열매같은 세상의 돈, 명예, 권세 다 내던지고 아버지께 돌아와서 영원히 사는 양식을 먹고 영원히 사는 생명의 음료를 마시고 영원히 있는 예수로 옷 입어 타락한 자신의 영혼이 죽음에서 나와 아버지와 함께 영원히 행복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탕자가 돌아오는 것만이 아버지의 기쁨이요, 탕자 자신의 고통을 끝내는 기쁨이니, 아들의 행복은 시작되고 아버지의 걱정은 끝이 납니다. 염치없더라도 아버지께 돌아와 탕자된 영혼의 고생을 확실히 종결해야 합니다.

가정주일을 맞아 육신의 가정이 아무리 행복해도, 하나님과 한가족을 이루지 못한다면 장차 당신과 당신 가족의 영혼은 어디로 가겠습니까. 아직도 탕자처럼 방탕하고 있을 뿐이니, 먼저는 당신과 당신의 가족이 아버지께로 돌아와야 합니다. 아버지의 잔치상에서 예수로 먹고 예수로 마시고 예수로 옷 입고 예수로 사는 행복한 가정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675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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