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전 목사 지상강의 ‘산상수훈’] 의를 위해 당연히 받는 핍박과 죽음
윤석전 목사 지상강의 ‘산상수훈’(32)

등록날짜 [ 2013-11-19 10:25:51 ]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곧 의이며, 그 반대는 불의
주를 위해 죽음까지 각오한 자, 기쁨과 감사 넘쳐

“의를 위하여 핍박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마5:10).

핍박은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이에게 찾아옵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 핍박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핍박이 오면 그만큼 자신이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서 의로워졌다고 여겨야 합니다. 핍박받는 일을 의로 알라는 말입니다. 핍박받는 자라면 그는 이미 천국을 소유한 자입니다. 그러니 핍박은 의와 동격이라 하겠습니다. 자신에게 의가 있어서 죄를 불의로 느낄 때부터 핍박이 옵니다. 자기 육신이나 명예가 우상인 사람은 절대 예수를 위해 핍박받으려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조금만 핍박이 와도 예수 믿는다는 사실을 숨기기에 바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의로 여기셨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아들 예수와 반대되는 말이나 행동이나 이념은 모두 불의입니다. 의이신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오셔서 모진 핍박을 받았습니다. 하나님 아들의 의를 소유한 자도 그분과 똑같이 핍박을 받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의를 위하여 핍박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은 곧 ‘핍박을 지불하라, 그래야 그 대가로 천국을 얻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예수의 피 공로로 의로워진 자에게는 누구에게나 핍박이 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나로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다’고 하시며 대항하지 말라고 당부하십니다.

곧 ‘너희에게 복이 있으니 참으라’는 뜻입니다. 핍박하는 자에게 대항하여 너희 속에 쌓아둔 복을 짓밟지 말고 그 복을 고이 잘 보관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히려 영적으로는 너희가 풍성한 자이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는 것입니다. 기뻐하는 것은 내적으로 하는 일이고, 즐거워하는 것은 행동으로 하는 일입니다. 핍박을 받으면 마음속으로 기뻐하고 그 기쁨을 적극적으로 겉으로 표현하여 즐거워하라는 말입니다.

속상한데 겉으로 기쁨을 표현할 수 있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정말 기쁘면 그 기쁨이 나타나는 법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핍박이 오거든 ‘아, 내게 의가 있구나’ 하고 깨달을 때 핍박받는 중에도 오히려 기뻐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도 “나의 기쁨을 너에게 주려 하노라”고 하셨습니다(요17:13). 주님께서는 이 땅에 와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면서도 채찍으로 맞고, 모진 매를 맞고, 십자가에 달려 피 흘리며 잔인한 죽음을 당할지라도 그 핍박이 바로 인간의 질병을 치유하고, 인류 구원을 이루어 예수 자신의 모든 사역이 완성되는 순간이니, 오히려 핍박이 기쁘다는 말입니다. 그 완성된 사역이 우리 안에 임할 때 우리에게도 핍박이 오니 우리도 그 핍박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오시는 기쁨의 절정을 마태복음 5장 1~12절 마지막에 말하고 있습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으니라.”

그러므로 예수로 말미암아 핍박받으면 속으로는 기뻐하고 겉으로도 즐거운 표시를 나타내라는 말입니다.

호박은 속이 익으면 껍질도 벌개집니다. 참외는 속이 익어 맛이 들면 겉은 노래집니다. 속이 익어가는 양상이 겉으로 표출됩니다. 이같이 우리도 마음속에서 기뻐하면 겉으로 즐거움이 표출됩니다. 욕을 잔뜩 먹어 속상하면 기뻐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주를 위해 핍박받거든 그렇게 속상해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속과 겉 모두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당부하십니다. 그리하면 하늘에서 상이 크다는 것입니다. 전에 온 선지자들도 이같이 핍박받아 결국 죽임을 당해도 기뻐했으니 너희도 그렇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성경에서는 예수를 위하여 욕먹고 순교한 자들이, 그 아픔 중에도 기뻐하고 즐거워한 모습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7장에 스데반은 돌에 맞아 죽으면서도 얼굴이 천사와 같이 환히 빛났다고 했습니다. 죽는 순간까지도 속으로 기뻐하고 겉으로도 즐거워했습니다. 우리도 이렇게 할 믿음이 있어야 순교할 수 있습니다.

이제 순교의 날이 곧 다가옵니다. 순교의 날이 현실로 닥쳐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할렐루야! 하나님, 제게도 순교를 허락하시니 감사합니다. 제가 어떤 아픔과 고통을 겪을지라도 제 안에 천국이 있음을 기뻐하게 하소서. 그 때문에 제가 핍박과 고통을 받는다면 영광이니 아버지 뜻대로 되기를 원합니다”라고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십자가에서 고통 중에 죽어가면서도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23:34). 정말 속에 있는 기쁨이 겉으로 드러난 고백입니다.

죽어서 하나님 앞에 간다면 즐거운 고백이 나올 수 있습니다. 순교는 말할 수 없는 고통이 뒤따르지만, 그보다 즐거움이 앞서는 이유는 인생을 마치고 아버지께로 가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생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입니다. 병들어 죽고, 아파서 죽고, 매 맞아 죽고, 순교해서 죽습니다. 이왕 죽을 바에야 의를 위하여 핍박받다가 죽는다면 이 얼마나 영광입니까.

의를 지키다가 핍박을 받아 죽으면 같은 아픔이라도 이는 곧 기쁨입니다. 병들어 죽는 사람들의 고통이 얼마나 심한지 모릅니다. 극심한 고통을 참아보려고 손톱으로 벽을 긁습니다. 손톱이 뒤집히고 까져서 벽이 온통 피로 얼룩집니다. 통증으로 못 견디니까 그렇게 몸부림을 칩니다. 그렇게 병으로 죽으나, 예수 믿는다고 핍박받아 매 맞아 죽으나 고통당하는 자체는 매한가지입니다.

그러나 죽은 후에 받을 영광은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그러기에 다 똑같이 고통당하다 죽을 바에야 주를 위하여, 의를 위하여 죽을 수 있는 기쁨과 감사를 미리 준비해 두어야 합니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362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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