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례 세미나(21)] 주님 오시는 날에 알곡이 되어
불 침례

등록날짜 [ 2014-04-22 11:56:40 ]

알곡과 쭉정이는 마지막 때 불과 성령으로 심판받아
어떤 불행이 닥쳐와도 악착같이 주님께 붙어 있어야



알곡과 쭉정이는 한 논배미에서 자랍니다. 마찬가지로 알곡 같은 성도도, 쭉정이 같은 성도도 한 교회에서 자랍니다. 하지만 마지막 심판은 성령과 불이라는 확연히 다른 침례로 이들을 가름하게 됩니다. 성령을 받은 후, 알곡 성도는 어떠한 고난이 오고 시험이 와도 까닥하지 않습니다. 손에 키를 들고 까부르면 쭉정이는 키 밖으로 떨어지지만 알곡은 키질을 할수록 더욱 키 안으로 들어옵니다. 어떤 키질에도 날아가지 않습니다.

시험의 바람이 아무리 거세게 불어도 알곡의 신앙을 가진 사람은 그것 때문에 주님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주님 안으로 들어옵니다. 그렇게 알곡의 신앙을 가진 자는 시험으로 자기 믿음을 더 성장시킵니다. 교회에 무슨 일이 생기면 알곡은 그것에 관심을 가지고 매달립니다. 반면, 쭉정이는 시험의 바람을 견디지 못하고 주님 밖으로, 교회 밖으로 날아가 버립니다.

침례 요한 자신은 물로 회개케 하는 침례를 주지만 성령과 불로 침례를 주시는 이가 있으니 그분이 바로 예수라고 선포했습니다. 그분이 심판주로 오셔서 하실 일이 손에 키를 들고 타작마당에서 알곡과 쭉정이를 가르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성령과 불로 침례를 주실 것인데 성령으로 침례를 받은 자는 알곡이요, 회개치 않은 자는 쭉정이로서 최후에 지옥에서 불로 침례를 받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회개치 않아 성령의 침례를 받지 못하면 쭉정이가 되고, 회개하고 성령을 받은 자는 알곡이 됩니다. 이와 같이 마지막 심판이 성령의 침례와 불 침례로 구분되는 것입니다.

성령을 받지 못한 쭉정이 같은 사람들은 자기를 드러내기를 원하고, 성령이 충만한 자는 알곡처럼 그 속에 있는 예수의 생명만을 드러내길 원합니다. 우리는 어떤 일이 있어도 성령 침례를 받아 알곡이 되어야 합니다. 알곡 성도는 주님의 요구에 얼마든지 “예” 하는 자입니다. 순교를 하라고 해도 “아니오”가 없습니다.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고후1:20).

성경을 보면 내가 무슨 침례를 받고 있는가를 금세 알 수 있습니다. 교회에 핍박과 시험과 환난이 오면 쭉정이로 빠지느냐, 알곡으로 들어오느냐는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만일 나에게 시험이 왔을 때 신앙생활이 좌절되면 ‘내가 쭉정이구나!’ 하고 자기 자신을 분명히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키질한다는 것은 어려움과 환난이 닥친다는 말입니다. 알곡이 키질할 때마다 키 안으로 들어오듯이 알곡 성도는 믿음 안으로 들어옵니다. 이 사람이 바로 고난이 와도 끝까지 견뎌서 고난의 침례에 성공하는 사람입니다. 고난의 침례에 참예하지 못하고 떨어진 결과는 알곡과 쭉정이, 천국과 지옥으로 구별됩니다. 불신자를 놓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을 부인하고 믿음에서 떨어지는 자가 얼마든지 있다고 했는데 이 자가 바로 키질할 때 쭉정이로 드러나는 사람입니다.

바람이 불면 나무의 열매도 살기 위해 나뭇가지에 더욱 달라붙는다고 합니다. 이처럼 우리도 어려움이 오면 올수록 주님께 바짝 붙어야 합니다. 어려울수록 주님만 붙들고, 힘들수록 주님만 붙들고, 키질을 당하면 당할수록 주님 안으로 들어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최후의 날에 절대로 알곡이 될 수 없습니다. 충성하다가 그만두고, 기도하다가 그만두고, 전도하다가 그만두는 등 신앙생활에 변덕을 부리는 사람들은 마지막 그날에 믿음에서 모두 떨어지고 말 것입니다. 지금 평안한 환경 속에서도 그만두고 떨어지고 만다면 환난이 올 때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주님 오실 날이 임박했습니다. 삶 속에서 어려움과 고통을 당할 때 시험으로부터 빠져나갈 것이 아니라 더욱 주님을 사모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주님 오실 날까지 주님 뜻대로 살기를 바랍니다. “주여, 주여” 한다고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구원을 받습니다. 침례가 하나님의 뜻이라면 침례 받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 순종하는 것입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7:21).

우리는 어떤 일이 있어도 고난이 닥쳐올수록 주께 악착같이 붙어 있어야 합니다. 고난 때문에 주님으로부터 떨어져 나간 인간은 비참합니다. 내가 처한 환경으로 인해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일을 실패하지 않고 이기기를 바랍니다.

말세에는 모이는 자리를 폐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자주 모이라는 말입니다. 모이는 자리를 폐할 때, 그 사이에 세상이 들어와서 주님과 분리시킵니다. 당장에 삼일예배만 빠져도 그 사이에 세상이 들어와서 다음 예배에 또 빠지게 됩니다. 우리 안에 세상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예배 시간을 자주 가져야 합니다.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히10:24~25).

알곡은 익어가기에 바빠야 합니다. 천국 가려는 사람이라면 천국에 도착하려고 부지런히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주님과 동역하는 자는 부지런히 동역해야 합니다. 합리주의니, 인본주의니 하는 말은 쭉정이 같은 소리입니다. 우리는 쭉정이가 되어 불 침례를 받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주님 오시는 날에 알곡이 되어 모두 다 주님 품에 안기는 최후의 승리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계속>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고』(윤석전 지음)

위 글은 교회신문 <382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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