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라는 이름으로] 직분은 나를 보는 거울

등록날짜 [ 2011-12-20 17:06:36 ]

5년 전, 사랑부(학령기 지적장애인예배부, 유치부~고등부) 아이들을 처음 대할 때 두려움과 부담감이 컸다. 발달장애를 지닌 학생 중 양호한 이들도 있었지만, 잠깐 자리에 앉는 것조차 어려운 이도 있었다. ‘감당할 수 있을까? 한 해만 하고 그만 해야지’ 하는 생각으로 교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교사를 하는 동안 갈등보다는 감사한 일이 더 많아 지금껏 사랑부 교사로 아이들과 함께하고 있다.

먼저 사랑부 교사를 하면서 종종 내 신앙생활을 점검하게 되니 감사하다.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은혜 받으면 예전보다 더욱 신앙생활 잘못한 점이 생각나 회개하게 된다.

또 사랑부 아이들과 함께하면서부터는 스스로 자신의 실상과 믿음을 점검하게 된다. 베드로 사도는 한 번 설교할 때 삼천 명씩이나 회개하고 돌아왔는데, 나는 어떤가? ‘내게는 우리 아이들에게 줄 예수가 있는가?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것처럼 진정 내가 세상보다 예수를, 세상보다 천국을 더 사모하며 소망하는가? 나는 정말 영혼의 때를 위해 살려고 몸부림치며 애쓰는가? 예배와 기도 생활을 생명처럼 여기는가?’

이렇게 자문할 때마다 부족하고 연약하기만 한 나를 발견한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롬7:24)는 바울 사도의 탄식이 바로 나의 것임을 고백한다.

또 순수하기 이를 데 없는 사랑부 아이들을 볼 때, 얼마나 내가 악한 자인지를 깨달아 감사하다. 나는 죄인 줄 뻔히 알면서도 죄지으니 정말 죄질이 나쁘다. 나에 비하면 우리 아이들의 죄는 단순하기 이를 데 없다. 또 우리 아이들은 한번 사람을 좋아하면 진실하게 변함없이 좋아한다. 늘 의지하고 순수하게 따른다. 그에 비해 나는 얼마나 계산적으로 사람을 좋아하는가? 은연중 많이 배우고 많이 가진 사람을 좋아하고 연약한 자를 멸시하지 않는가? 우리 아이들 앞에 서면 그런 내가 얼마나 부끄러운지.... 그런 나를 반겨주며 사랑해 주는 아이들 모습 속에서 순수와는 거리가 먼 초라한 나를 발견한다.

사실, 교사 초년기 때는 우리 사랑부 아이들의 영혼 구원이 과연 이루어질지 걱정스러웠다. 그들이 지적장애인이기에 어쩌면 당연한 의문이었을 것이다. 교사하면서 흘린 땀방울에 비해 눈에 띄는 영혼 구원의 결실이 없는 것 같아 답답하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새 5년째 사랑부 교사를 하면서, 그런 조급함을 지그시 눌러버리는 믿음이 생겼다. 하나님은 공평하시다는 믿음이다. 나는 저들보다 죄가 많은 악한 자요, 언제 깨질지 모를 질그릇 같은 자가 아닌가? 그런 나도 구원하신 주님께서 어찌 이들을 구원치 못 하시랴는 믿음 말이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막10:27).
이 말씀을 의지하여, 오늘도 나는 사랑부 아이들의 교사로서 그들의 입술에서 인격적인 신앙고백이 터져 나오길 소망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도를 가르치고 있다.


오형석 교사
(교회복지실)

위 글은 교회신문 <270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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