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라는 이름으로] 스물하나, 젊은 교사가 쓴 일지

등록날짜 [ 2012-08-21 22:01:37 ]

자식 보듬는 심정 조금 알 듯해
주님 안에서 내가 양육받는 듯

대학 입학을 몇 달 앞두고 고등부에서 대학선교회로 등반하려던 무렵, ‘내가 있어야 할 곳은 고등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영혼을 섬기기에는 너무 부족하지만, 주님이 주신 마음에 순종해 고등부 교사로 2년째 충성하고 있다.

처음에는 고등부 특별반에서 보조교사로 섬겼다. 천하보다 귀한 영혼을 섬긴다는 부담과 이제 갓 스무 살인 나이가 염려로 다가왔다. ‘미숙한 내가 할 일이 있을까?’ ‘나이 차이도 얼마 안 나는데 나를 선생님으로 생각해 줄까?’ 반 배정을 받고 설렘 반, 두려움 반으로 일주일을 보냈다.

처음 공과 공부하는 시간, 각양각색인 아이들과 인사를 나눴지만 어떻게 섬겨야 할지 몰라 가만히 앉아 있었다. ‘명색이 교사인데….’ 무언가 해야겠다는 고심 끝에 주중에 아이들에게 심방 문자를 보냈는데, 답장이 오지 않자 마음이 상하기도 했다.

예배시간에 늦게 오고, 공과시간에 아무 말없이 시계를 쳐다보며 끝나기만을 학수고대하는 아이들. 그런데 이런 아이들도 성회에만 다녀오면 확연히 달라진다. 얼마 전에 열린 중.고등부 1차 하계성회 때 한 아이가 은혜를 많이 받더니 집회를 마친 후에 덥다며 머리를 감겨 달라고 했다.

평소 말을 걸어도 퉁명스럽게 대답하던 아이라 깜짝 놀랐지만, 이게 부모의 마음일까. 내 자식 보듬는 심정으로 머리를 감겨 주었다. 딴 사람은 별일 아니라고 생각하겠지만, 내게 무언가 말을 걸고 한발 다가선 그 모습이 어찌나 사랑스러웠는지 모른다.

통성기도 시간에는 기도가 안 된다고 답답해하는 아이들에게 다가가 끌어안고 함께 기도해 주었는데 학생들과 내 눈에서 동시에 눈물이 흘렀다. 아이들을 섬기라고 하나님께서 나를 교사로 보내신 것이 아니라, 그 아이들을 통해서 도리어 내 믿음을 굳건히 세우고 성장하라고 이 자리에 있게 하신 것 같다.

그럼에도 아이들이 문제가 생기거나 영적으로 힘들어할 때, 백 마디 좋은 말이나 세상 지식을 전하는 것보다, 진심으로 기도해 주고 예수의 사랑을 전해 주는 것이 참으로 아이들을 위하는 일인데 그러지 못할 때가 가장 힘들다.

사실 교사는 학생을 가르칠 뿐만 아니라 아이들을 보면서 내 모습을 발견해 회개하고 세상 유혹에 빠지지 않고 주님께 나아가는, 참 감사한 직분이다. 때로 아이들 때문에 속이 상하면, ‘하나님께서 나 때문에 얼마나 속상하셨을까’ 하며 죄송한 마음에 눈물이 난다.

그러기에 주님께 더 매달리고, 캠퍼스 풍조와 세상 물질문명의 유혹 속에서 믿음을 지킬 수 있다. 지금 고등부에는 나 같은 20대 초반 대학생 교사들이 많은데, 서로 하나가 되어 세상과 죄를 이기고 고등부 영혼을 섬기며 젊음의 때를 보내니 참 감사하다. 

고등부 아이들 한 명 한 명이 하나님이 쓰실 귀한 그릇으로 성장해 민족사, 세계사, 교회사 속에 주님께서 크게 쓰실 귀한 인물이 되길 바란다. 그리고 나 역시 그들을 주님 안에서 잘 양육하고 섬기는 늘 성령 충만한 교사가 되길 원한다. 

위 글은 교회신문 <302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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