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라는 이름으로] 주님이 함께하시는 현장

등록날짜 [ 2012-10-09 10:24:08 ]

2010년 4월 초 절친한 친구에게서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대장암으로 병원에 입원해 있다는 것이었다. 대장에 붙어 있던 암 덩어리는 삽시간에 몸 구석구석으로 무섭도록 전이됐고, 결국 입원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은 4월 말, 갓 돌 지난 딸을 두고 눈을 감았다.

예수를 믿지 않은 친구를 위해 주님 심정으로 기도하고 전도하지 못했다는 좌절감에서 한동안 빠져나오질 못했다. 그때쯤 선물로 받고 한동안 읽지 못했던 하이디베이커의 「사랑이 강권하시도다」 책을 읽었다. 장마다 펼쳐지는 어린아이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그 사랑으로 변하는 놀라운 현장을 간접적으로 접하면서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사역에 기꺼이 사용받고 싶다는 소망을 품게 됐고, 2011년 유년부 교사로 지원했다.

처음에는 뭔가 뭔지 몰라 헤매고 어리둥절했지만 앞서 교사로 충성해 온 유년부 선생님들의 섬김과 조언이 있어 어렵지 않게 적응할 수 있었다. 어느 교사에게나 그렇듯이 내게도 두고두고 마음 한쪽에 남는 아이가 있다.

지난해에 맡았던 반 아이 중에 유독 체구가 작아서 피해의식으로 싸움이 잦던 아이, 예배 때와 공과 시간에 방해해서 많이 혼내기도 했던 아이다. 기도를 도와주려면 몸을 숙이려고 해서 붙잡고 기도해 주니 바닥에 아이의 큰 눈물방울이 떨어져 있는 것이 보였다. 눈물을 감추려는 것이 어쩌면 내 어릴 적 모습과도 그렇게 똑같은지.

6개월이 지나도록 공과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주위를 뱅뱅 돌던 아이였지만 결국 여름성경학교 때 은혜를 받고 회개의 눈물을 펑펑 흘리는 게 아닌가. 그 후로 공과 때도 반 아이들과 섞여 앉아 질문에 대답도 잘했다. 지금은 거리가 멀어서 부득이 타 교회에 출석하는 그 아이는 얼마 전 방언은사를 받았다는 소식을 전해 줬다. 주님의 일하심에 감사할 뿐이다.

때때로 힘들었던 것은 아이들이 예배에 은혜 받지 못하고 돌아갈 때다. 내 수단으로 아이들을 통제하려고 했던 건 아닌지, 주님보다 내가 먼저 가려고 했던 건 아닌지 내 교만함을 탓하며 주님의 심정을 달라고 기도하게 됐다. 이후로 아이들은 하나둘 공과시간에 서로 내 옆에 앉으려고 때 아닌 자리 쟁탈전을 벌이기도 한다.

또 내 연약한 믿음으로 낙심할 때마다 한동안 심방이 잡히지 않던 아이에게서 전화가 오고, 토요일에 하는 전도를 기다리는 아이에게서 독촉 전화가 오는 등 아이들을 통해 회복할 힘도 주셨다. 더욱 감사한 것은 이기적이고 내 중심적인 기도만 했던 기도시간이 교사로 충성하면서 아이들의 이름을 불러가며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기도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또 전도와 심방 어느 것 하나 내 힘으로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하시고 기도하게 하시면서 기도의 힘도 경험케 하셨다. 앞으로도 주님이 사용하시고 싶은 분량만큼 더욱 준비되어 지옥 갈 영혼을 살리고 싶다.

위 글은 교회신문 <308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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