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쓰신 사람들] C. S. 루이스(Clive Staples Lewis)
복음의 진리에 기초를 둔 기독교 변증자

등록날짜 [ 2011-07-28 15:16:42 ]

1963년 11월 C.S.루이스가 세상을 떠났을 때 그의 죽음을 보도한 일간지는 거의 없었다. 몇몇 신문만이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중세 문학을 가르치던 교수가 심장병과 간 질환으로 세상을 떠났다”라며 지면 한쪽을 할당했을 뿐이다. 루이스가 세상을 떠났을 당시 신문의 첫 페이지는 암살자의 총을 맞고 쓰러진 존 F.케네디의 모습이 실렸다.
 
루이스는 예민한 사고력과 뛰어난 머리를 가진 사람이었다. 그는 어린이를 위한 이야기책이자 신비에 싸인 존재와 동화 속 인물로 가득 찬 『나니아 연대기(Narnia Chronicles)』를 포함해 영국 문학, 철학 등 다양한 주제로 많은 글을 썼다.
 
어떤 사람들은 루이스를 변증자 혹은 기독교를 변호하는 사람이라고 말하지만, 실제로 루이스는 그 어떤 것도 변호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제2차 세계대전 중 라디오에서 강의한 내용을 책으로 엮은 『순전한 기독교(Mere Christianity)』는 찰스 콜슨이 예수 그리스도를 이해하는 도구가 되었으며, 수백만 명에게 감동을 주었다. 논리적이고 직관적인 루이스는 복음과 복음에 함축된 내용을 받아들이는 것이 그것을 믿지 않는 것보다 더 이성적이라고 단순하게 결론지었다.

루이스는 어려서부터 신자였다. 그러나 성에 대한 고민과 갈등 때문에 믿음을 저버리고 무신론자라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다시 그에게 복음이 의미 있게 다가오자, 기독교를 확실하게 받아들이고 자신을 헌신했다.
  
루이스는 그의 구원을 결코 느낌이나 감정적인 경험에 기초하지 않았다. 반대로 그는 자신이 회심하기 전에도 기독교가 아주 논리적으로 보일 때가 있었으며, 회심 후에도 무신론자들의 주장이 논리적으로 보일 때도 있었다는 글을 나중에 썼다. 그는 우리가 감정을 조절해야 함을 강조했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이 누구인지, 그리고 무엇을 믿고 있는지를 확신하지 못한 채 오락가락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된다고 믿었다.

그의 개인적인 생활은 복잡했고 믿음의 여정 역시 갈등과 심각한 고민이 있었다. 그는 운전을 배우지도 못했고, 집안에서 뭔가를 고치거나 하는 실제적인 일들에는 재주가 없었다. 저작 활동으로 많은 돈을 벌 수 있었지만, 대부분 나누어 주며 돈을 관리할 줄 몰랐다. 그러나 그는 언어를 다루는 데는 천재였다. 복잡한 것을 단순하게 만드는 일에 그는 아주 탁월했다.

루이스는 그를 존경하던 미국 작가를 만나 결혼하고 두 아들의 아버지가 되었다. 루이스는 아내 조이 그레셤을 존경했지만, 처음부터 사랑한 것은 아니었다. 영국 정부가 그녀를 추방하려고 했기 때문에 “그녀와 결혼할 것이냐 아니면 잃을 것이냐?” 하는 귀로에서 루이스는 그녀와 결혼을 했다. 그러나 결국 그는 아내 조이를 사랑하게 되었고, 그에게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 되었다.

그녀가 암으로 죽자 루이스는 심한 충격을 받았다. 마치 하나님께서 자신을 저버린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너무나 간절히 하나님께로 향했는데 내가 얻은 것은 무엇인가? 내 면전에 대고 꽝 소리를 내며 문을 닫아 버렸다. 그리고… 침묵뿐이었다” 하고 그는 말했다.

그러나 루이스는 자신의 고통과 상실감 때문에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다. 루이스의 삶 속에서 그 어떤 것보다 우리 마음에 감동을 주는 것이 있다. 루이스는 감정이나 느낌에 믿음의 기초를 두지 않고, 기분이나 감정을 넘어서 ‘복음의 진리’에 그 기초를 두었다는 점이다.

C.S.루이스는 그의 능란한 구사력으로 삶을 회의하는 많은 이들에게 큰 가르침과 깨달음을 주고 있다.

위 글은 교회신문 <251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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