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남 이승만, 그의 생애와 업적(22)] 철저히 반공주의 노선을 주장
반공 독립 노선

등록날짜 [ 2013-06-26 09:58:54 ]

공산주의의 허구와 실체 명확히 진단한 천재성 빛나

이승만의 천재성은 공산주의를 보는 견해에서 분명히 나타난다. 1917년 러시아에서 혁명이 일어나자, 전 세계 지식인이 갈채를 보냈다. 세계는 국민을 노예로 삼아 억누르며 절대 권력을 휘두르던 러시아 황제를 물리쳐 노동자와 농민의 나라를 건설하겠다는 혁명 대의에 열광했다.

하지만 이승만은 바로 그 순간부터 반공을 주장했다. 이승만은 1917년 러시아 혁명 직후부터 공산주의를 “원래 자유를 원하는 인간 본성을 거역하여 국민을 지배하려는 사상 체계”라고 간주했다. 공산주의를 따르는 정치는 반드시 실패할 것이라고 장담했다. 세계 주요 지도자 가운데 가장 먼저 공산주의의 정체를 파악한 것이다.

여기에서 한 가지 질문이 생긴다. 이승만은 어떻게 그토록 일찍 공산주의를 꿰뚫어보고 그토록 강경하게 반대할 수 있었을까? 이승만 연구가들은 한결같이 “이승만이 철저한 기독교인이었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이승만은 진리에 정통했기에 거짓의 가면에 속지 않았다. 빛에 몰두했기에 어두움을 쉽게 분별할 수 있었다.


<사진설명> 1924년 11월. 호놀룰루에 모인 대한인동지회 대표들과 이승만(앞줄 왼쪽). 오른쪽 끝의 유일한 여성대표는 노디 킴이다.

이승만의 반공 노선은 임시 정부에서 파문을 일으켰다. 임시 정부 내에 소련의 지원을 받은 공산주의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1920년 한인 사회당 대표로 박진순, 박애, 이한영이 모스크바에 파견되었다. 그들은 소련 공산당이 지급한 지원금 60만 루블을 받고 돌아왔다. 이들은 그해 9월 15일 이동휘, 김립 같은 상하이 공산 혁명 간부들과 함께 한인 공산당을 조직했다.

1920년 임시 정부에서는 대통령 이승만과 국무총리 이동휘가 정면 대결을 벌였다. 이승만은 소련과 협력하는 행위는 조국을 공산주의자의 노예로 만들자는 작태라며 끝까지 물러서지 않았다. 이승만의 일생을 특징 지은 강력한 반공주의의 시작이었다.

1923년 이승만이 집필한 논설 ‘공산당의 당부당(當不當)’의 주요 내용을 소개한다.

“모든 부자의 돈을 합하여다가 나누어 가지고 살게 하면, 부자의 양반 노릇하는 폐단은 막히려니와, 재정가(기업가)들의 경쟁이 없어지면 상업과 공업 발달이 어려우니, 사람의 지혜가 막히고 모든 기기묘묘한 기계와 연장이 다 스스로 폐기되어, 지금 이용후생 하는 모든 물건이 다 진보하지 못하며, 물질적 개명이 중지될지라…”

한.일합병조약이 강제로 체결되었을 때, 이승만은 임금이 없어지고 양반 제도가 없어지고 상투가 없어져서 좋다는 말을 하여 물의를 일으킨 적이 있다. 나라가 망한 판에 좋아진 점이 있다고 하니, 꽤 위험한 발언이기는 했다. 하지만 임금과 양반과 상투를 그토록 싫어했던 이승만의 평등주의를 보여 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실제로 왕족 이승만은 독립운동을 하면서 신분에 구애하지 않고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렸다. 양반에서 하층 양반, 중인, 상민에 이르기까지 여러 사람이 이승만을 지지하고 도왔다.

뼛속까지 평등주의자인 이승만은 공산주의가 부자가 양반 노릇하는 폐단을 막는 장점이 있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사유 재산 제도가 폐지되면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없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하든 안 하든 똑같이 재산을 나누어 갖는다면, 누가 구태여 고생해 가면서 일하겠는가? 똑같이 갖게 되면 일을 안 하게 되고 경쟁이 시들해져서 결국 개개인이 지닌 능력이 충분히 발휘되지 못한다. 이승만은 그런 세월이 모이고 쌓이면, 인간 개발과 문명 발전이 중단되는 엄청난 사태가 닥친다고 예언했다.

그 후 66년이 지나고서야 소비에트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의 마지막 공산당 대회에서 서기장 고르바초프는 심각하게 토로했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기술 혁신이 이토록 발달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뒤집어 읽으면 공산주의 체제에서는 기술 혁신이 발달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이는 이승만의 예견이 정확하게 맞았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계속>

자료제공 | 『하나님의 기적, 대한민국 건국』 (이호 목사 저)

위 글은 교회신문 <343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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