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남 이승만, 그의 생애와 업적(46)] 남한 전체가 한마음으로 똘똘 뭉쳐
대한민국 항전 의지

등록날짜 [ 2013-12-31 10:20:44 ]

전쟁이 나면 순식간에 끝날 것이라는 북한의 착각


<사진설명> 6·25전쟁 초기, 일선전방에서 어린 병사를 격려하는 이승만 대통령.

전쟁 초기에 가장 중요했던 사건은 이승만과 트루먼이 즉각적으로 싸우기로 결정했다는 점이다. 어떻게 보면 당연하게도 생각되지만, 결코 당연하지 않다. 경제 문화 기술 대국이었던 중국의 송나라는 싸우려는 의지가 없었기에 거란, 여진, 몽골에게 차례로 뜯어 먹히다가 비참하게 멸망했다.

서방 국가들이 계속해서 싸우기를 회피했기에 히틀러는 순식간에 세력을 확장할 수 있었다. 북한에서 조금만 위협을 가해도 일부 정치가들이 “전쟁이냐, 평화냐”라며 북한에게 고분고분하지 않으면 큰 일이 날 것처럼 국민들에게 겁을 주었기에, 조그마한 북한이 거대한 대한민국을 좌지우지할 수 있었다.

이승만이 앞장서서 싸웠고, 자유세계는 그를 지켜보면서 싸워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싸움을 준비할 수 있었다. 이승만은 세계적인 선구자였다.

이승만의 투지를 보여주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전쟁 초기 낙동강 전선까지 밀렸을 때, 미국의 무초 대사는 정부를 옮길 것을 건의했다. 그는 최악의 경우 남한 전체가 공산군에게 점령된다 해도 망명 정부를 지속해 나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무초가 한참 열을 올려 이야기하고 있을 때, 이승만 대통령이 허리에 차고 있던 권총을 꺼내들었다. 순간 무초는 입이 굳어 버렸고 얼굴색이 하얗게 질렸다. 대통령은 권총을 아래 위로 흔들면서 말했다.

“이 총으로 공산당이 내 앞까지 왔을 때 내 처를 쏘고, 적을 죽이고 나머지 한 알로 나를 쏠 것이오. 우리는 정부를 한반도 밖으로 옮길 생각이 없소. 모두 총궐기하여 싸울 것이오. 결코 도망가지 않겠소.”

75세 대통령의 기세에 무초 대사는 기절초풍할 정도로 놀라서, 아무 말도 못하고 돌아갔다.

싸우려는 의지는 국군에게도 분명했다. 전쟁이 터지고 3일 만에 국군의 전력 절반이 손실되었다. 누가보아도 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어디에서나 ‘지는 전쟁’이면 적군에게 항복하는 병사들이 속출하고 부대가 붕괴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국군은 붕괴되지 않았다. 중국에서도 국공내전 당시 국민당 군대에서는 사단 병력이 통째로 공산군에 투항하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6.25전쟁 때 우리 국군은 단 1개 병력도 항복하지 않았다. 압도적인 무기와 우세한 병력으로 쳐내려오는 적들과 끝까지 맞서 싸웠다.

손자뻘 되는 국군들의 투지는 할아버지 대통령의 눈시울을 여러 번 젖게  했다. 대통령의 위문과 격려를 받은 부상병들은 경무대로 편지를 쓰곤 했다. 대부분의 편지가 비슷한 스토리였다. 대통령의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하다는 것과, 비록 부상을 입은 몸이지만 남북통일의 대열에서 분골쇄신할 각오이니, 다시 군대에 복귀해서 싸울 수 있도록 배려해 달라는 감격적인 내용들이었다.

지도부와 국군과 국민들의 항전 의지는 북한의 예상을 크게 빗나가게 만들었다. 북한은 자신들이 쳐내려 가면 남한 전역에서 민중 봉기가 일어나리라고 예상했다. 국민들이 들고 일어나 이승만 정권을 둘러엎고 공산군과 합세할 것이라고 기대했던 것이다. 그러나 국민의 환영을 받으리라는 기대는 환상이었다.

북한군의 한 작전 명령서는 1개 분단에 모포 1매, 3인에 식기 하나를 준비하라고 했다. 마치 하루 이틀의 고지 쟁탈전이라도 벌이는 듯하였다. 이는 그들이 남침하면 곧바로 남한 내 남로당 20만 당원이 일제히 봉기하고 그래서 며칠 안으로 전쟁을 끝낼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일은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 그들은 대한민국을 너무 우습게 보았다.

장밋빛 예측은 오히려 악몽으로 변했다. 연합군의 인천 상륙 작전 이후로 전세는 역전되었다. 국군은 1개 대대도 투항하지 않았지만, 인민군은 지휘관이 이탈하고 부대가 붕괴되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났다. 북한군은 연합군의 반격에 밀려 압록강까지 쫓겨 갔다.

잘될 때는 서로 공을 다투지만, 안될 때는 서로 책임을 미룬다. 김일성과 박헌영이 그랬다. 북한 정권의 1인자와 2인자는 11월 7일 만포진의 소련 대사관 연회에서 격렬하게 싸웠다. 술을 마신 김일성은 박헌영에게 “여보, 박헌영이. 당신이 말한 그 빨치산이 다 어디에 갔는가? 백성들이 다 일어난다고 그랬는데 어디로 갔는가?”라고 비난했다.

박헌영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아니, 김일성 동지, 어찌해서 낙동강으로 군대를 다 보냈는가? 후방은 어떻게 하고 군대를 내보냈는가? 그러니까 후퇴할 때 다 독 안에 든 쥐가 되지 않았는가?” 하고 반문했다. “그러니 다 내 책임은 아니다” 하고 반박하였다. 그러자 김일성의 입에서 상소리가 튀어나왔다. 대리석으로 된 잉크병을 벽에 던져 박살 냈다.

전쟁을 일으킨 두 당사자가 멸망 위기에 몰리자 책임을 상대방에게 전가하려는 추한 싸움을 벌인 것이다. <계속>

자료제공  『하나님의 기적, 대한민국 건국』 (이호 목사 저)

위 글은 교회신문 <367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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