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가족 은혜나눔] 목자의 애타는 사랑 편지글로 전달받아 外

등록날짜 [ 2022-01-12 14:34:36 ]

목자의 애타는 사랑 편지글로 전달받아


임은주(59여전도회)


끝이 보이지 않는 코로나19 위기 속에서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가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일상이 무너지고 신앙생활도 예전 같지 않다.


그러던 중 코로나19 이후의 주일예배 설교 말씀을 묶어 펴낸 윤석전 담임목사님의 저서 『나의 사랑하는 예수가족에게』를 읽었다. 설교 묶음 글이지만 담임목사께서는 매주 성도들을 향해 쓴 한 편의 편지처럼 쓰셨다고 하셨다. 편지글을 통해 주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담임목사인 당신께서도 연세가족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전해 주었다.


성도 영혼 지키려는 목자의 심정

‘얼마나 성도를 사랑하기에 매주 이렇게 애절하게 편지를 쓰셨을까!’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넘길수록 글을 써 내려가는 담임목사님의 모습이 눈앞에 훤히 보였다. 코로나19 감염을 예방하느라 성도들을 만나지 못하니 우리가 죄 아래 살다 영혼의 때에 멸망할까 봐 눈물로 편지를 쓰셨을 담임목사님….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는 피의 문을 여신 예수 그리스도께 감사하여 주님을 뵙는 것입니다.”(p.47)


여섯 번째 편지를 읽었을 때, 코로나 기간 가정에서 예배드리는 동안 하나님을 대하는 태도가 많이 흐트러진 내 모습을 깨달아 뜨끔했다. 처음 코로나19 사태가 터지고 예배드리러 교회 가지 못할 때 ‘세상에 이런 일이 있나’ 싶었다. 가정에서 예배드리는 내내 기가 막혀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 상황이 1년, 2년 계속되다 보니 처음 받았던 충격과 아쉬움은 온데간데없고, 어느새 타성에 젖어 예배드리는 태도가 많이 느슨해졌다.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행동과 마음을 쉽사리 다잡지 못하는 내 모습을 보며 ‘이러다 진짜 지옥 가겠다’ 싶어 무서웠다.


그러던 중 지난해 추수감사절성회 때 담임목사님께서 “사랑하는 성도여, 환난과 핍박이 오면 끝까지 믿음 지켜서 천국 갈 수 있겠습니까?”라며 울면서 애타게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코로나라는 환경을 핑계 삼아 믿음을 지켜 내지 못하던 내게 주님께서 애타는 당부하시는 목소리처럼 들렸다.


감사하게도 지난해 11월 ‘단계적 일상회복’으로 방역수칙이 완화되면서 교회에서 예배드릴 수 있어 살 것 같다. 담임목사님도 강단에서 예배드리러 온 성도들을 바라보시면서 “여러분을 만나니 살 것 같다”고 눈시울을 붉히셨을 때 내 눈에서도 눈물이 흘렀다.


마음 다잡고 신앙생활 회복할 때

담임목사님께서는 목회를 시작하면서부터 3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변치 않고 “곧 주님께서 다시 오실 것이니 신앙생활, 곧 이기는 생활을 잘해서 신랑인 예수께서 재림하시는 그 날 반드시 들림받아 혼인잔치에 들어가야 한다”고 애타게 당부하셨다. 그때마다 “아멘” 하며 대답만 했을 뿐, 코로나19 시대를 맞고 보니 내 믿음의 현주소가 어디쯤에 있는지 확실하게 보였다.

‘지금이 정말 말세구나. 곧 예수님 오시겠구나.’


담임목사님께서 설교 때마다 단 한 번도 빠뜨리지 않고 말씀하시는 ‘기도하라’는 애절한 부탁! 주님께서 지금 내게 요청하시는 말씀인데도 왜 그렇게 기도하기 어려운지…. 기도는 내 영혼의 때를 위해서 반드시 성공해야 하는 것인데도 말이다. 기도하지 않으면 내 영혼을 지킬 수 없다고 아무리 담임목사님께서 울면서 말씀하셔도 즉시 돌이키지 않고 기도할 마음이 희미해진 코로나 시대가 무섭기만 하다.


그러나 지금이 내 신앙생활을 회복하고 다시 일어설 기회이다. 성경에도 이런 일이 있을 때 주님께서 다시 오신다고 하셨다.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요4:23~24). 


무엇보다 무너진 예배를 회복하고, 정신 차려 기도하고, 잃은 양을 찾아서 예전의 성령 충만하던 나로 돌아가고자 한다. “육신이 있을 때만 천국 갈 기회가 있다”고 하신 설교 말씀을 기억하며 오늘부터 승리하리라.


책 끝에 있는 부록을 읽을 때도 담임목사님의 심정이 느껴져 눈물이 났다. ‘코로나로 지친 성도들에게’, ‘아기 엄마들에게’, ‘어린이들에게’, ‘질병 때문에 교회에 못 나오는 성도들에게’, ‘노인 어르신들에게’ 등. 담임목사님께서는 처한 사정이 각각 다른 성도들에게 편지를 써 주시면서 세심하게 섬겨 주셨다. 얼마나 연세가족을 보고 싶어 하시고, 걱정하시고, 사랑하시는지 연세가족이라면 누구나 목자의 그 사랑을 전달받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우리 주님께서 나를 너무나 사랑하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려 죽으셔서 죄에서 저주에서 사망에서 지옥에서 구원해 주셨으니 그 은혜를 받은 자로서 배은망덕 하지 않으리라 다짐한다. 반드시 천국에서 우리 주님과 담임목사님과 가족들 그리고 모든 연세가족들과 만나 영원히 살기를 소망한다. 이 모든 일을 하신 주님께 영광과 감사와 찬양을 올려 드린다.



내 영혼 잘되라는 애절한 절규 듣고 순종


박정일(48남전도회)


윤석전 담임목사님의 저서 『나의 사랑하는 예수가족에게』를 펼쳤다. 담임목사께서 연세가족들을 향해 쓴 편지글이라는 소개말을 듣고 설교집이나 강해집과 달리 편지 느낌의 저서일 듯했다. 그런데 내 생각과 달리 평소 듣던 담임목사님 설교 말씀과 책 내용이 큰 차이가 없어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했다.


성도 사랑하는 글에 눈물이 왈칵

그러나 담임목사님께서 애절한 심정으로 쓰셨을 글에 감격스럽게 반응하지 못하는 까닭이 내게 있는 것은 아닐까. 책 내용이 심령 깊숙이 들어오지 않자, 책을 덮은 후 무엇이 문제인지 나 자신을 점검했다. 가장 큰 문제는 내 심령이 예전만큼 은혜받는 데 갈급해하지 않는다는 것과 기도하지 않은 채 사모함 없이 책을 읽고 있었던 것이었다.


‘주일 하루라도 금식기도 하면서 은혜받기를 사모해 보자!’


마음을 새롭게 다잡으며 주일 하루 동안 금식하면서 기도했다. 다음 날 오후, 전도하려는 분을 찾아가려고 하는데 담임목사님 저서를 다시 읽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곧바로 책을 펼쳤다. 그런데 참으로 놀라웠다. 분명 엊그제와 같은 책 내용인데 담임목사님의 애절한 목소리와 함께 성령께서 내 영혼을 향해 깊이 탄식하시면서 내게 당부하시는 말씀을 전해 들을 수 있었다. 내 영혼을 사랑하셔서 내 심령에 외치시는 주님의 뜨거운 사랑의 소리가 들려왔고, 그 사랑에 반응해 눈물을 흘리면서 주님의 사랑에 감격하는 고백을 올려 드렸다.


“주님! 이 부족하고 어리석은 제게 주의 사자를 통해 이렇게 애타게 말씀하십니까! 내가 무엇이관대 이렇게 주님의 핏소리를 들려 주십니까. 주님! 이 죄인을 죄에서 저주에서 사망에서 지옥에서 구원해 주신 것도 너무 감사한데 또 큰 사명을 주십니까!”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넘길수록 담임목사님의 뜨거운 절규와 성도 사랑이 내 심령에 그대로 전달됐다. 한 구절 한 구절 생명의 말씀이 살아 움직이는 듯했다. 주님께서 성령 충만한 주의 사자를 만나게 해 주심에 다시 한번 감사했다. 한 영혼이라도 더 살리고자 외치는 주의 사자의 절규는 편지글마다 담겨 있어 마지막 유언처럼 들려왔고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알려 주고 있었다.


책 제목인 ‘나의 사랑하는 예수가족에게’라는 말도 내 폐부 깊숙이 성령으로 와닿았다. 성도 영혼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목숨 다해 사랑하고, 힘을 다해 사랑하며 심령 깊숙이 내 영혼을 안아 주시는 주님의 뜨거운 사랑으로 다가왔다. 책을 더는 읽어 나갈 수 없을 정도로 뜨거운 눈물이 흘러 내렸다.


‘오! 주님. 감사, 감사드립니다!’


이어 “기도하라”는 마지막 절규가 다시 한번 내 심령을 강하게 붙잡았다. 육신의 정욕을 버리고 영혼의 때를 위하여 영적생활 잘하기를 사모하라는 간절한 외침이 내 영혼에 명령으로 전달됐다. 이제는 그 명령에 순종하는 일만 남았다.


『나의 사랑하는 예수가족에게』를 읽으면서 ‘말씀과 기도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생명을 증거하라’는, ‘진실로 영혼의 때를 위한 삶을 살라’는 성령의 음성을 듣고 영적생활 잘할 것을 다시 한번 깊이 마음먹게 됐다. 책을 읽게 하신 성령님께 깊은 감사를 올려 드리며 이 모든 일을 하신 주님께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올려 드린다.



/손미애 기자


위 글은 교회신문 <732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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