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침례교 역사 속 믿음의 인물들 4
풍랑 속 순교의 꽃 피운 김희서 교사

등록날짜 [ 2008-09-12 14:24:27 ]

죽음도 막을 수 없었던 복음 전도의 여정

시문에 능통했던 김희서 교사는 본 교단이 낳은 대전도자였다. 충남북 일대는 물론, 간도를 중심으로 남북 만주에서 전도에 전력을 다했던 김희서. 그는 러시아 선교사로 파송을 받고 가던 중 보시엘해 모커우 지점에서 45세의 한창 나이로 순교했다.

선구 전도자로서 김희서
김희서(金希西)는 1873년 10월 20일 충청남도 부여군 양화면 원당리에서 아버지 김광식 씨의 다섯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가 22세 되던 1895년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였다. 이는 우리나라에 복음이 전파된 지 10년도 안 된 이른 시기였다. 아직 그가 사는 마을에는 교회가 없었다. 그래서 멀리 전북 익산군 용안면 난포리에 있던 침례교회에서 주일 예배를 드렸다. 이때 하나님께 예배하는 즐거움을 알게 된 김희서는 신실한 신앙인으로 성경을 배우고 교회의 가르침대로 매일 기도했다.
어려서 한학을 공부하여 한학에 조예가 깊었던 김희서는 인근 주민들에게 한학자로 알려져 있었다. 이때는 성경이 한글로 번역되지 않았던 때라 그는 한문 성경을 보았다. 그의 후손인 김연배는 김희서가 보던 한문 성경을 아직도 보관하고 있다. 성경을 읽고 묵상하면서 하나님의 진리를 깨닫고 기쁜 마음으로 침례를 받았다. 그리고 전도인으로 사명을 받은 후 충북 단양과 제천지방을 중심으로 노방에서 전도했다.
당시 전도인으로 임명되는 목사나 교사들은 거의 무보수로 일했다. 매월 여비라는 명목으로 10원씩을 총부에서 지급했지만 전국을 누비며 전도 활동을 하는 이들에게는 턱없이 부족했다. 이마저도 5원은 현금이고 5원은 펜윅 선교사가 발행하는 「만민 좋은 기별」이라는 책으로 받았다. 5원 상당의 250권의 책을 등에 지고 짚신을 신고 전국을 돌며 복음을 전했다. 이러한 행장이야말로 예수님이 70인의 제자들을 파송할 때의 모습과 같았으며 사도 바울 선생이 복음을 전하는 것을 닮은 것이었다.
이들은 송화가루를 물에 타서 마시는 것으로 한끼 식사를 대신하기도 했다. 송화가루는 봄에 소나무에서 채취하는데, 송화가루를 구할 수 없는 계절에는 영양실조에 걸려 생명의 위협을 받은 이들도 적지 않았다.
하루에 백여 리를 걷는 데서 오는 피곤함과 잘 먹지 못하는 굶주림은 복음을 전하던 당시의 전도자들에게 어떤 것보다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다. 그런데다 일제의 종교 탄압은 날이 갈수록 더해져 고난은 배가 되었다.
김희서 교사는 일본정부의 종교정책(신사참배)에 항의했다. 종교의 자유를 보장한다고 하면서 교회를 탄압하는 정책의 잘못을 지적하고 반대 투쟁을 벌이다가 구속되어 옥고를 치렀다. 그러나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고 옥중에서도 투쟁을 계속했다. 깊은 옥중에서 베드로를 구원하신 주님은 김희서 교사를 보호하였다. 옥에서 풀려나자 다시 전국을 맨발로 돌며 하나님의 복음 전하는 일을 계속했다.

장렬한 순교
1915년 목사 후보인 교사(현재 전도사에 해당함) 직분을 받았다. 교사 직분을 받은 김희서는 함경북도 전 지역은 물론 간도성까지 다니며 널리 복음을 전했다. 지역을 더 넓혀 만주까지 복음을 전하던 중 시베리아로 선교의 사명을 받았다. 동료 네 명과 함께 국경을 넘어 배를 타고 보시엘 해역 모커우라는 지점까지 항해했다. 그러나 모커우 해역에 들어서자 풍랑은 순식간에 배를 삼켜버렸다. 이 날이 공교롭게도 김희서의 만 45세 생일이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슴에 품고 전도인으로 13년을 전국을 돌며 수많은 영혼에게 복음을 전하다가 시베리아로 가는 바다에서 순교한 것이다.

자손에게 이어진 믿음의 기업
김희서 교사의 빈자리에도 불구하고 미망인 강성재 여사는 자녀들을 교회에서 봉사하는 목사 또는 교회의 훌륭한 일꾼으로 성장시켰다. 자녀들 중 김연배는 감로로, 4남 김장배는 목사가 되어 주님을 위해 헌신된 삶을 살았다.
특히 2남 김성배 집사의 자녀 3남 4녀 중 3녀 김종선은 연세중앙교회(윤석전 담임목사)의 사모로서 할아버지의 순교 정신을 이어받아 오직 주님을 향한 사랑으로 사모의 사역을 잘 감당하고 있다. 이것은 모두 한 알의 밀알처럼 자신을 희생함으로 이루어진 결과이며 주님을 위해 순교한 김희서 교사의 순교정신을 이어온 믿음의 결실이라고 말할 수 있다.

/ 자료출처 <한국침례교인물사> (김갑수, 요단출판사)

위 글은 교회신문 <142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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