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산책] 철학박사 김석 교수와 함께 떠나는 유럽여행
천년 기독교문화의 보고 유럽 성전 ①

등록날짜 [ 2008-05-27 13:47:46 ]

중세 장인들의 신앙심을 반영한 로마네스크 건축양식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에는 비밀과 음모로 가득한 중세수도원의 음울하고 어두운 분위기와 수도사들의 이중성이 아주 생생히 묘사되어 있다. 흔히 중세를 ‘암흑의 시대’라고 부르는데 그 말에는 기독교가 사회를 지배하면서 학문, 문화, 예술이 퇴조하고 침체되었다는 부정적 뉘앙스가 깔려 있다. 영화 속 수도원처럼 사람들은 독선과 권위가 지배하고, 문화와 학문이 억압된 어두컴컴한 이미지를 중세의 모습으로 곧잘 떠올린다. 그러나 중세에도 수도원을 중심으로 그리스 학문의 명맥이 이어졌으며, 철학적 논쟁도 매우 활발하였다. 또한, 중세인들은 고대인 못지않게 그들의 예술적 창의력과 세련된 미적 기교를 신앙과 접목시켜 찬란하게 승화시켰으니 성전이 바로 그것이다. 지금도 유럽 곳곳에는 수백 년 역사의 숨결을 겹겹이 두른 채 중세 장인들의 섬세한 손길과 신앙심을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는 수많은 성전이 남아있다. 이번호와 다음 호는 중세의 대표적 건축양식인 로마네스크와 고딕식 성전들을 통해 성전에 반영된 신앙심과 중세인들의 수준 높은 예술혼을 살펴보고자 한다.

신의 성채 로마네스크 성전

11~12세기 중부유럽에 지역마다 다양하게 발달한 건축이 로마네스크 건축양식이다. 현존하는 것으로는 프랑스 툴루즈의 셍 세르낭 대성전, 독일의 밤베르크 대성전, 그리고 사탑으로 유명한 피사 대성전 등이 있다. 로마네스크 양식 이전에는 주로 목조로 성전을 건립하였는데 목조건물은 화재에 취약하고, 쉽게 훼손되는 것이 문제였다. 11세기 초부터 교회천장을 목조 대신 석조궁륭으로 바꾸면서 무거운 석조 천장을 지탱하는 두꺼운 측벽과 굵은 기둥들이 늘어선 모습으로 성전의 모습이 바뀐다. 우선 천장을 이루는 석조궁륭은 절단면이 원칙적으로 반원 아치모양이다. 창문이나 처마 밑부분에도 이 반원 아치들이 사용되었다. 로마네스크 건축은 한마디로 반원형 아치들의 집합체라 말할 수 있다. 석재를 사용한 무거운 천장의 수직압력과 아치의 구부러진 부분에 작용하는 횡압력을 지탱하기 위해 벽을 견고하게 만들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궁륭의 중량을 벽의 일정한 부분에 집중시키고, 그 부분을 지탱하는 부벽을 외부에 보강하여 천장의 하중을 견디게 하는 공법이 사용되었다. 건축공학상 창문을 작게 만들 수밖에 없었으며, 채광이 약해져서 내부는 어두웠지만 대신 중후하면서 신비한 분위기를 자아내게 된다.
석재 벽돌이 사용됨으로써 불에 견디는 힘이 대폭 보강되었을 뿐 아니라, 공간의 통일성이 강화되고 음향이 은은하게 반사됨으로써 성전의 내부는 아늑하면서도 포근한 느낌을 주게 된다. 반면에 성전 외부는 두꺼운 측벽과 아치의 만곡부(灣曲部) 하중을 지탱하는 부벽이 둘러쌈으로써 전체적으로 견고한 요새처럼 육중하고 압도하는 모습을 갖추게 된다. 성전의 전체적 형태는 하늘에서 봤을 때 십자가 모양으로 배열되도록 설계하여 교회가 동시에 예수의 몸임을 보여주고자 했다. 약탈과 전쟁이 많은 시기를 살았던 중세인들은 교회를 하나님의 요새이자, 외부의 사악한 세력에서 자신을 보호해주는 처소로 생각했는데 로마네스크 양식은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딱 부합되었다고 할 수 있다.

섬세한 추상조각과 성경이미지

성전건물이 투박하고 남성적이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로마네스크 건축은 미려하고 섬세한 조각을 동반했는데 조각은 건축의 일부로서 성전장식과 성경의 이미지를 표현하는 데 주로 사용되었다. 예를 들어 성전 내부의 회랑을 구획하는 기둥의 머리 부분에는 동물이나 인간의 모티브를 한 쌍씩 대칭적으로 조합한 조각을 넣음으로써 건축의 단조로움을 보완하였다. 건축조각은 실내장식이기도 하였지만 성경의 메시지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상징의 역할을 함으로써 포교의 효과를 동시에 노린 것이다. 성경의 이야기나 인물을 표현한 조각이나 금속 및 상아 공예는 주로 성전벽이나 문 주위를 장식하는 데 사용되었는데, 추상적 기법으로 표현된 세밀한 도상들은 당시 추상예술의 높은 수준을 잘 보여준다. 가장 유명한 로마네스크 성전인 피사의 대성전과 돔을 올려다보라. 그 웅장한 모습에 압도된다. 그리고 “내 주는 강한 성이요, 방패와 병기 되시니…" 찬송이 천 년의 시간 속에서 울려 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위 글은 교회신문 <135호> 기사입니다.


    아이디 로그인

    아이디 회원가입을 하시겠습니까?
    회원가입 바로가기

    아이디/비번 찾기

    소셜 로그인

    연세광장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