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산책] 철학박사 김석 교수와 함께 떠나는 유럽여행
인쇄술의 발명과 유럽의 변화 ①

등록날짜 [ 2009-04-14 16:20:11 ]

새로운 기술혁명과 ‘42행 성경’의 인쇄

성경은 가장 많은 수의 언어로 번역되고, 가장 많이 읽힌 책으로 알려졌다. 『성경, 세계 최고의 베스트셀러』의 저자인 프랑스의 비교문학자인 피에르 지베르에 의하면 성경은 여러 장르와 문체를 아우르는 문학서이자 시집일 뿐 아니라, 인간의 다양한 경험과 지혜를 이야기하는 역사서이고 삶에 유용한 잠언이기도 하다. 성경은 비단 기독교 신자뿐 아니라 서양학문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는 필독서가 되었으며, 지금도 다양한 판본이 인쇄되고 있다.
하지만, 가톨릭교회가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던 중세에는 극소수 성직자와 지식인들만이 성경을 볼 수 있었다. 인쇄술이 발명되기 전에는 양가죽을 가공해 건조한 양피지에 손으로 직접 글씨를 썼기 때문에 일단 책이 무척 귀했다. 신구약 전체를 직접 수기하려면 3년이 넘는 세월이 걸렸기 때문에 당연히 이렇게 공들여 만들어진 성경은 그 값이 매우 비쌀 수밖에 없었다. 중세 유럽 곳곳의 수도원에서 공동체 생활을 하던 수도사와 수녀들의 주된 활동은 기도와 성경 필사였다. 또한, 성경은 당시 교회와 상류층의 공용어인 라틴어로 쓰였기 때문에 일반 대중들은 설사 성경을 접한다 해도 읽을 수가 없었다. 자연히 성직자들은 성경을 읽고 전하는 유일한 집단이 됨으로써 민중들에게 절대적 권위를 행사할 수 있었다.
하지만, 14세기부터 목판 인쇄술이 도입되고, 마침내 15세기 들어 독일인 구텐베르크에 의해 금속 활판 인쇄술이 발명됨으로써 유럽은 세기적 변화를 겪게 된다. 금속 활자와 인쇄술의 발명은 소수 엘리트가 독점했던 서책의 보급을 가져옴으로써 지식의 확산을 통해 근대의 특징인 이성혁명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또한 성경을 각국 언어로 번역하고 쉽게 인쇄하여 널리 보급함으로써 성경의 독점에 근거해 유지되었던 가톨릭교회의 절대 권력을 흔들게 된다. 실로 인쇄술의 발명은 새로운 격변의 세기를 여는 신호탄이 되었다. 1999년 말 미국의 타임지는 새로운 천 년을 앞두고 지난 1천 년 동안 인류 역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발명으로 구텐베르크의 ‘금속 활자’를 선정했으며, 지난 1천 년간 가장 중요한 10대 인물의 한명으로 구텐베르크를 지목했다. 비록 구텐베르크 자신은 인쇄술 발명으로 인한 유익을 생전에 누리지 못했지만 새로운 기술혁명을 통해 근대정신의 태동을 가능하게 해줌으로써 그 이름을 길이 남기게 된다.
구텐베르크가 새로운 인쇄술의 발명자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사실 금속활자 인쇄술은 우리나라에서 먼저 시작되었다. 이미 12세기 고려에서는 놋쇠로 만든 금속활자 기술이 사용되기 시작했으며, 문헌에 의하면 1234년 『고금상정예문』 28부를 활자로 찍었다고 한다. 1377년 금속 활판 인쇄술을 사용해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白雲和尙抄錄佛祖直指心體要節)』이란 불서를 간행했는데 이것이 현존 세계 최고의 금속 활자본 인쇄물로 유네스코에 의해 공인된 일명 『직지』이다. 『직지』는 독일의 구텐베르크의 ‘42행 성경’보다 무려 78년이나 앞선다.
하지만 우리나라 인쇄술은 인쇄기를 사용해 대량으로 책을 찍어내는 방식이 아니었고, 서책의 보급도 상류층에 제한됨으로써 문화·기술 혁명을 주도하지는 못한다. 구텐베르크는 여러 합금을 주조하여 활자와 글자판인 활판을 만들었을 뿐 아니라, 포도주 압축기를 변형한 인쇄기와 유성잉크를 결합시킴으로써 오늘날처럼 책이 대량 생산될 수 있는 길을 연 사람이다. 구텐베르크(Johannes Gutenberg, 1397~1468)의 생애와 행적은 자세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간간이 발견되는 문헌을 통해 그가 금속세공 기술자이자 사업가로 일하면서 사업적 이유로 인쇄술을 발명했음을 추론해 볼 수 있다. 그는 정치적 이유로 고향인 ‘마인츠’(Mainz)에서 쫓겨나 1433~1444년 현재 프랑스의 영토인 스트라스부르에 건너와 살았는데 이 시기에 인쇄기 모델의 개발에 상당한 진척을 보인 것 같다. 구텐베르크는 마침내 인쇄기를 발명하여 1455년 이른바 ‘42행 성경’을 마인츠에서 최초로 인쇄한다. ‘42행 성경’은 한 페이지가 42행씩 두 줄로 되어 있는 라틴어 성서로, 대략 180부 정도가 인쇄되었는데 모두 팔려나간다. 새로운 인쇄술은 엄청난 변화의 소용돌이를 유럽 사회에 몰고 온다.

<다음 호에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156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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