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친해지기] 비올라, 존재감 없지만 꼭 필요해

등록날짜 [ 2015-03-10 15:22:37 ]

오케스트라에서 절대 튀지 않고 묵묵히 받쳐 주는 음역대

비올라 연주자 중 훌륭한 지휘자로 성장한 예 매우 많아

 

 

“슈퍼맨과 배트맨, 그리고 빠른 비올라 연주자의 공통점이 무엇인 줄 아니? 정답은 셋 모두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거야.”

 

필자가 알고 있는 것만도 50가지가 넘는 ‘비올라 조크(농담)’ 중 하나다. 사람의 음역과 가장 유사하고, 바이올린과 첼로 음역의 중간에 해당되는 ‘비올라’(Viola)는 관현악과 앙상블에서 빠질 수 없는 역할을 하지만, 바이올린처럼 튀어나오는 고음을 낼 수도 없고, 첼로처럼 장중한 저음을 낼 수도 없어서 존재감이 상대적으로 많이 떨어진다. 아마 클래식과 친근하지 않은 분들은 비올라를 바이올린으로 착각하거나, ‘저 바이올린은 좀 크네’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래서인지 같은 음악가들 사이에서도 비올라를 무시하거나 놀리는 농담이 엄청나게 많다.

 

“비올라는 왜 큰가? 그게 아니라 연주자의 머리가 작은 것이다.”

(비올라 연주자들이 머리가 나쁘다는 것을 은유한 농담)

“비싼 바이올린을 도둑맞지 않으려면 비올라 케이스에 넣어 다니면 된다.”

(도둑도 비올라에는 관심이 없다는 뜻)

“악보에 ‘F’음이 하나 그려져 있는 것을 비올라 연주자 세 명이 동시에 연주하면, 3도 불협화음이 된다.”

(비올라 연주자는 정확한 연주를 못 한다고 놀리는 것)

 

흥미로운 사실은 많은 비올라 연주자가 이 같은 농담을 들었을 때, 짓궂은 놀림에 동참하고 자신들을 비하하는 더한 농담을 하면서 크게 웃는다는 점이다. 만일 예민하고 날카로운 바이올린 연주자들에게 이런 농담을 던지면 어떻게 될까? 당장 뭐가 날아올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비올라 연주자들의 이 같은 여유로움에는 바윗돌이 부딪히고 깎이면서 둥근 자갈돌로 바뀌는 것과 유사한 개개인의 과정도 한몫했겠지만, 항상 고음과 저음 사이에서 받쳐 주는 음악적 역할도 큰 이유라고 생각한다.

바이올린(왼쪽)과 비올라(오른쪽).

 


오케스트라에서 어떤 이는 높은 소리가 나는 악기로 제일 앞자리에서 주목을 받으며 연주해야 하고, 어떤 이는 비올라 주자처럼 존재감이 있건 없건, 꼭 필요한 존재로서 심지어 무시하는 조롱이 쏟아져도 웃어넘기며 연주해야 한다. 그래서 오케스트라는 마치 각자의 은사대로 한 지체로서 하나님의 나라가 온전히 임하시게 하는 교회의 표상이 되기도 한다.

 

훌륭한 작곡가 중에는 원래 비올라 연주자 출신이 많다. 신세계교향곡을 작곡한 드보르자크가 그렇고 유명한 베토벤이 그렇다. 참고로 우리 교회 윤승업 상임지휘자도 비올라 전공으로 학부를 졸업했다.

 

“바이올린 연주자는 턱에 멍이 들고, 첼로 연주자는 가슴에 멍이 든다. 그런데 비올라 연주자는 무릎에 멍이 든다.”

 

비올라 연주자가 악기를 내려놓고 쉬고 있을 때가 너무 많다는 뜻의 조크다. 많이 쉬면서(?), 높고 낮은 음을 들어주며 음악의 흐름 전체를 이해하는 능력이 출중해지면서 훌륭한 작곡가, 지휘자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이리라.

 

그래서 필자는 교회 안에서 마치 오케스트라의 비올라 연주자처럼, 어떤 갈등의 올무를 던져도 걸려 넘어지지 않고 웃어넘기며 드러나지 않게 충성하는 분들을 부러워하고 존경한다. 말씀대로 때가 되면 그들을 주께서 높이시리라.

 

혹시 이 글을 읽고 비올라 연주에 관심이 생기면, 시중에 훌륭한 비올라 솔로 앨범도 많으니 들어 보길 권한다. 특히 리처드 용재 오닐의 비올라 연주 앨범이나 김상진 교수의 비올라 찬양 앨범 을 추천한다. 바이올린의 날카로움이나 첼로의 묵직함이 부담스러운 분들에게 가뭄의 단비 같을 것이다.

박성진

메리츠증권 상무 / 바이올리니스트
 

위 글은 교회신문 <425호> 기사입니다.


    아이디 로그인

    아이디 회원가입을 하시겠습니까?
    회원가입 바로가기

    아이디/비번 찾기

    소셜 로그인

    연세광장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