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산책] 헛된 세상 욕망에 눈먼 군중 표현
기독 명화 감상

등록날짜 [ 2016-08-01 14:48:58 ]

창의적인 방식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예술세계를 펼쳐 나가

표현주의를 비롯한 현대미술의 화가들에게 큰 영향 미치다


<사진설명> <1889년 그리스도의 브뤼셀 입성>(1888, 캘리포니아 주 폴 게티 미술관, 252×430).

제임스 앙소르(James Ensor, 1860~1949)는 벨기에 오스텐데 지방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축제용품과 가면을 파는 가게를 운영하며 생계를 이어 갔다. 아버지는 영국 부유층 출신으로 의학을 공부했고 재능이 뛰어난 음악가였으나 집안의 생계에는 도움을 주지 못했다.

앙소르의 유년 시절, 가게에 진열된 기괴한 가면들과 신기하고 재미있는 축제용품은 앙소르의 성장 과정에 많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앙소르의 그림 속에는 가면과 해골 등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자주 등장하는 것을 보게 되는데, 어머니가 운영했던 가게 용품들의 추억이 그의 작품 속에서 지배적인 모티브가 되어 주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앙소르는 평소에 화를 내고 욱하는 성질이 있었으며 바보스러운 행동과 우스꽝스러운 유희를 즐겼다고 한다. 그는 고정된 회화양식과 당시 유행하는 예술사조에 매이기를 거부하고 자유롭고 창의적인 표현방식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예술세계를 만들어 갔다

우울한 그리스도를 표현해

<1889년 그리스도의 브뤼셀 입성>(1888, 캘리포니아 주 폴 게티 미술관, 252×430)은 앙소르가 그리스도의 브뤼셀 입성이라는 제목으로 그린 여러 작품 가운데 1887~1888년에 제작한 그림이다. 성경 속 예수 그리스도가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장면을 벨기에 수도인 브뤼셀에 입성하는 내용으로 묘사했다.

이 그림은 당시에 파격적인 표현 때문에 논쟁을 불러일으켰고 전시조차 될 수 없었다. 결국 제작한 지 40년이 지나고서야 세상에 공개될 수 있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많은 사람에게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21:9)”라는 환호를 받으셨던 성경 상황과는 달리, 그림 중앙 위쪽에 위치한 커다란 현수막에는 사회주의 만세라는 정치적 슬로건이 적혀 있다. 그림 한가운데는 예수 그리스도가 수많은 군중 속 한 사람에 지나지 않는 듯, 아주 작은 모습으로 그리스도의 존재를 표현해 놓았다. 그리스도의 주변에는 가장(假裝) 행렬을 연상하듯 분장과 가면으로 치장한 사람들로 북적인다. 그리스도의 행렬에 주목하지 않는 군중은 자신들의 사회적인 욕망을 이루기 위한 구호를 내걸고 축제 분위기에 휩쓸리고 있다. 인류를 구원하러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외면한 채 제각기 이기적인 욕망을 채워 줄 신세계를 꿈꾸는 군중의 냉소적인 태도는 대중에게 환영받지 못하는 화가 앙소르 자신의 처지를 동일시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많은 사람이 거리에 나아와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예수를 환영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은 로마의 식민지 생활에서 해방시켜 줄 메시아가 나타나기를 고대하고 있었다. 예수께서 광야에서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인 이적과 죽은 자를 살리고 각종 병든 사람을 고쳐 준 소문을 들은 이스라엘 백성은 예수가 로마의 속박에서 이스라엘을 해방시켜 줄 능력 있는 지도자가 되어 주길 원했다. 죄와 지옥 멸망에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이해하지 못했던 이스라엘 백성은 브뤼셀 군중이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정치적 욕구를 채워 줄 지도자 중의 한 사람으로 오해하는 모습과도 닮아 있다.

예수는 이 세상 사람들에게 떡을 주러 오신 분이 아니라 영원히 사는 생명을 주러 오신 구원자시다. 헛된 세상 욕망에 눈멀어 정작 자신들을 구원하실 구세주를 알아보지 못하는 군중의 우매한 모습을 군중 속에서 소외당하는 그리스도의 우울한 모습으로 표현해 놓았다

벨기에 대표 화가로 인정받아

앙소르의 독창적이고 그로테스크한 작품은 관람자들에게 주목받지 못했고 미술 비평가들에게도 비난과 혹평을 받았다. 그림이 거의 팔리지 않았던 앙소르는 생활에 어려움을 겪어야 했고 마흔 살 넘도록 어머니에게 생활비를 의존했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앙소르의 작품을 찾는 관람자가 점차 늘어났고 그의 작품은 대중에게 인정받기 시작했다. 1920년에는 앙소르를 위한 대규모 특별전이 잇달아 열렸다. 1931년에는 오스텐데 지방에 그를 위한 기념비를 세웠다.

고독하고 외로운 삶을 살았던 화가 앙소르는 일흔 살이 다 되어서야 대중에게 사랑을 받으며 호황을 누렸다. 벨기에 화폐에 앙소르의 초상과 그가 그린 가면 이미지가 함께 등장할 만큼 벨기에를 대표하는 화가가 되었다. 또 인간의 감정과 내면의 세계를 그림으로 재현하는 표현주의를 비롯한 현대미술의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문준희 기자

위 글은 교회신문 <490호> 기사입니다.


    아이디 로그인

    아이디 회원가입을 하시겠습니까?
    회원가입 바로가기

    아이디/비번 찾기

    소셜 로그인

    연세광장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