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절망 속에서 피는 희망
『백악관으로 간 맹인 소년 강영우』를 읽고

등록날짜 [ 2011-09-07 11:01:02 ]


김성춘,김현정 著/
생명의 말씀사

강영우 박사는 하나님을 잘 믿고 교회와 목사님을 섬기는 행복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6·25전쟁 중 모든 가산을 잃고 서울로 올라온다. 강 박사의 아버지는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하였지만 강 박사가 중학교에 다닐 때 세상을 떠나고 만다.

아버지를 잃은 슬픔이 채 가시지 않은 어느 날, 강 박사는 날아온 축구공에 맞은 사고로 수술을 두 차례나 받고도 맹인이 됐다. 큰 충격을 받은 어머니마저 수술결과가 발표된 날 세상을 떠났다. 불행은 쉼 없이 강 박사 가정에 찾아왔다. 동생을 돌보던 고등학생 누나마저 얼마 지나지 않아 과로로 죽는다. 4년 동안에 이 모든 일이 일어났다. 결국 두 동생 중 하나는 보육원으로, 하나는 철물점 일꾼으로 보냈다. 그리고 자신은 맹인 기숙사로 간다.

사람들은 예수 믿어서 집안이 저렇게 되었다고 수군거렸다. 하지만 이러한 고난 중에도 강 박사는 더욱 하나님께로 가까이 갔다. 강 박사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은 그가 가는 길 곳곳에서 돕는 손길로 응답하셨다.

강 박사가 학교에 가려고 버스를 탈 때면 종종 운전기사가 “아침부터 재수 없다!”며 버스에서 밀쳐버리고 침까지 뱉고 가버렸다. 대학을 마치고 유학을 가려하니 장애인은 유학갈 수 없다는 법이 가로막았다. 이것이 과거 한국의 장애인 정책이었다. 하지만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법조항이 없어지고 강 박사는 유학길에 올랐다. 그리고 하루에 15시간씩 공부에 매달려 박사학위를 받았다.

하지만 당시 한국 사회는 여전히 장애인 인식이 부정적이었다. ‘드디어 한국에 돌아갈 수 있겠구나!’ 하고 한국 대학에 수많은 원서를 냈지만, 실망스럽게도 모두 채용할 수 없다는 내용뿐이었다. 피츠버그대학교 폴 메이스너 박사가 한국에 와서 강영우 박사의 우수성을 전했지만 한국사회에 뿌리내린 장애인 차별에 실망만 하고 돌아올 뿐이었다. 당시 강 박사 가족은 친구 집 지하실에 기거했다. 아내는 둘째아이를 낳은 후 몸조리를 하고 강 박사 역시 무료 급식을 타러 가야하는 상황이었다. 강 박사는 한국행을 포기하고 미국에서 직장을 구한다.

그렇게 영주권도 얻고 미국에서 안정된 삶의 기반을 갖춘 후 강 박사는 다른 사람을 돕고자 세계 로터리 클럽 활동을 하였고, 이 활동으로 강 박사의 삶이 훗날 드라마와 책으로까지 나오게 됐다. 강 박사는 지금도 유엔 세계장애위원회 부의장으로 일한다.

우리 삶이 힘들고 어려울 때 우리가 낙심하는 이유는 내 문제가 너무 커 보이고, ‘나는 왜 이렇게 힘들까?’ 하는 생각 때문일 때가 많다. 비교할 수 없는 큰 절망 속에서도 삶에 귀감이 되는 강 박사의 삶은 우리에게 큰 위안을 준다. 그리고 무엇보다 보이지 않지만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며, 늘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느낄 수 있는 책이다. 

글/정선애

위 글은 교회신문 <256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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