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언어 감각이 돋보이는 수필
『바다의 기별』을 읽고

등록날짜 [ 2012-02-28 13:03:30 ]


김훈 著/ 생각의 나무

김훈의 단편 소설집 『강산무진』을 앞부분 2편만 읽고 그만두었다. 기대가 큰 만큼 실망의 무게가 무거웠다. 그 이후엔 김훈의 책을 읽어 본 적이 없다가 최근 백독백작 클럽(독서클럽)에서 『자전거 여행』, 『바다의 기별』 등 작가의 책들을 추천하고 있어 읽게 되었다. 작가 김훈에 대한 나의 첫 소감은 『바다의 기별』 62페이지에 잘 표현하고 있었다.

“나는 시를 쓰지 못하고, 시를 쓸 수 있게 되는 마음의 바탕을 이해하지 못한다. 나는 시적 대상이나 정황이 시행으로 바뀌는 언어의 작동방식을 짐작조차 하지 못한다. 그래서 시행들은 나를 소외시키고, 시인들은 낯설어 보인다.”
저자가 시인들을 낯설어하듯 나는 김훈 씨의 문장들이 낯설어 보인다. 왜일까?
“모든, 닿을 수 없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품을 수 없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만져지지 않는 것들과 불러지지 않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건널 수 없는 것들과 모든, 다가오지 않는 것들을 기어이 사랑이라고 부른다.”(p.13)

시처럼 쓴 위의 문장을 잘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일까.
“어머니는 거칠고 사납고 과장된 말을 무척 싫어하셨다. 남의 감정을 상하게 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생각을 말할 수 있는 아름답고 순한 서울말을 어머니는 좋아하셨다.”(p.97)

아니면 저자가 어머니를 닮지 않고, “나는 가부장의 아들로 태어난 가부장이었던 것이다.”(p.23)라고 했기 때문일까.
“우리는 한국어로 아주 아름다운 서정시를 쓸 수가 있어요. 그런데 한국말로 법전은 기록할 수가 없습니다. 나는 법전 읽기를 아주 좋아합니다. 법전에는 아주 명석한 개념과 간결한 문장과 혼란이 없는 논리적 세계가 드러나 있어요.”(p.152)

나는 따뜻하고 서정적인 감성을 좋아한다. 김훈 작가는 법전을 좋아하기 때문일까. 하지만, 다음과 같은 문장 때문에 김훈에 대한 나의 생각이 헛갈릴 때도 있다.
“하루는 놀라운 것입니다. 하루라는 시간 안에 어둠이 오고 밝음이 오고 해가 뜨고 달이 뜨고 별이 뜨고 죽음처럼 잠드는 시간이 있고 또 깨어나는 부활의 시간이 있고 노동과 휴식, 절정과 맨 밑바닥이 다 있는 거죠. 하루는 사람의 한 일생과 맞먹는 시간입니다. 여러분, 소홀히 하면 안 됩니다. 하루는 일생과 맞먹는 거예요. 그 안에 모든 게 다 들어 있습니다. 시간이 갖추어야 될 모든 모습이 그 안에 다 있습니다.”(p.160)

신선하지만 거친 문장, 화려하지만 단순한 문장, 평범하지만 의외성 있는 문장이 나를 놀라게 한다. 낯설기만 했던 작가와 나 사이의 간극이 메워지며 접점을 발견하는 순간, 작가의 책을 한 장 두 장 넘기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위 글은 교회신문 <279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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