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론과훌]우리 안의 ‘바알’을 찍어내자

등록날짜 [ 2010-02-08 14:21:07 ]

우상은 실상보다 심리적인 것이 더 위험
탐욕과 물질만능주의 타파 위해 기도해야

구약성경에서 우상숭배가 문제될 때 항상 거론되는 이방신이 바알과 아세라다. 많은 선지자들이 이스라엘의 신앙을 타락시키고 민족성을 훼손시키는 우상숭배의 위험을 비판했으며, 엘리야는 바알의 선지자들과 몸소 대결하여 이들을 몰살시키기도 하였다. 그러나 바알숭배는 광범위하게 민간에 퍼지면서 여호와 유일신 종교를 내부로부터 서서히 붕괴시켰다. 특히 아세라를 섬기는 종교의식은 성적 제의가 동반되었기에 풍속을 오염시키면서 이스라엘인들을 향락에 빠뜨렸다.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바알과 아세라
종교적 타락은 이스라엘인들의 선민의식을 약화시키면서 결과적으로 이스라엘 왕국을 무너뜨린 요인이 된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찬란했던 영화를 복원하려고 한 왕들은 이방종교를 뿌리 뽑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대부분의 왕들과 지도층은 이방종교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이것이 이스라엘 멸망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바알과 아세라는 원래 페니키아인들의 신으로 나중에 이들이 팔레스타인 지방으로 이주해오면서 가나안 사람들의 주신이 되었다. 바알은 폭풍우를 주관하면서 곡물, 과실, 육축의 성장을 가져다주는 풍요의 신으로 숭배되었고, 아세라는 바알의 아내로 행복을 가져다준다고 믿었다. 가나안 사람들이 이들을 조각으로 새기고 섬긴 것은 농경사회에서 풍성한 소출과 다산이 매우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남신인 바알과 여신인 아세라가 결합해야 그로부터 온갖 만물과 부가 생긴다고 믿으면서 이를 상징하는 성 의식을 실행하기도 하였다.
바알과 아세라가 뜻하는 의미들을 살펴보면 물질적 풍요와 번영, 육체적 쾌락이 가나안 사람들이 추구한 이상적 가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스라엘인들은 주위의 부족들과 전쟁하면서 늘 긴장했던 초기 사사시대가 끝나고 그들의 왕국이 확장되고 부가 증가하면서 바알 숭배를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역설적으로 어려운 시기가 끝나고 사회가 안정되면서 세속의 행복과 풍요를 갈망하고 육체적 쾌락과 방종에 젖어든 것이다. 여기에 주위 국가들과 정략적으로 결혼하고 교류하면서 선린 외교를 통해  평화를 지키려는 지배층의 전략도 우상숭배가 퍼지는 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탐욕과 물질만능주의가 더 큰 우상
오늘날도 기독교는 우상숭배 금지를 제일의 계명으로 지키면서 영적 순결을 강조하기 때문에 사회나 타종교로부터 배타적이라고 비판받기도 한다.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제사나 사주 등 미신을 극도로 경계하면서 자신은 우상숭배를 절대 하지 않는다고 자신 있게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우상을 만드는 보다 근본적인 것은 외적인 요인이 아니라 위에서 본 것처럼 심리적인 것이다. 더 잘살고, 더 많이 먹고 마시고, 더 많이 소유하려는 물신주의 심리가 우상을 만든다.
오늘날 현대인은 그 어느 때보다 풍요롭고 문명화된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그럴수록 사람들의 욕망은 점점 더 커지고 있으며, 상대적 박탈감 때문에 괴로워한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장 보드리야르가 말한 것처럼 바야흐로 ‘소비가 소비를 낳는 소비만능 사회’에 살고 있는 것이다. 현대인들은 필요 때문에 소비를 하는 게 아니라 타인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기호화된 상품에 집착한다. 예를 들어 자신이 많은 옷을 옷장에 가지고 있어도 유행에 좀 뒤쳐진다면 새로 옷을 구입하려고 하고, 상품이 명품브랜드라면 효용성과 무관하게 좋아한다.
불황이지만 소수의 고객들을 위해 차별화된 고가의 상품을 판매하는 귀족마케팅은 요즈음 더욱 성행하고 있다. 부자는 부자대로 가난한 사람은 가난한 사람대로 물질만능주의를 좇고 있다. 또한 자녀를 좋은 학교에 보내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명품처럼 키우기 위해 엄청난 돈을 쏟아붓고 조기 교육에 목을 매면서 부의 대물림을 꿈꾼다.
우리 사회처럼 학벌, 직업 등 모든 영역에서 서열화가 강조되고, 개그프로의 대사처럼 ‘일등만이 대우받는 더러운 세상’에서 남들보다 더 성공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세상의 성공이 아니라 내세의 평안과 영적 삶을 강조하면서 나그네와 같이 인생을 살라고 말하는 기독교인들은 이런 분위기에서 자유로운가? 혹시 내 욕망을 다 충족시키기 위해 부자가 되려고 하고 남보다 우위에 서려고 발버둥 치면서 이러한 탐욕을 축복이라고 강변하지는 않는가?
눈에 보이는 바알과 아세라를 쪼개고 불태우기는 쉽다. 하지만 부와 성공에 집착하는 보이지 않는 마음속 우상을 몰아내는 것은 어렵다. 우리 안에 바알이 없는지 항상 살피자. 성경은 하나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고 하지 않았는가.

위 글은 교회신문 <178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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