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론과 훌] 참된 앎이 주는 행복과 사랑

등록날짜 [ 2011-04-13 17:30:45 ]

안다는 것은 실천의 의미가 있음을 알아야

지인의 소개로 오랫동안 기(氣) 수련을 하고 보급하는 분을 만났다. 70세가 한참 넘은 할머니였지만 고운 피부와 꼿꼿한 자세에 예사롭지 않은 힘과 기품까지 느껴져 첫인상이 남달랐다. 이분은 내게 기 수련을 하고 난 후 생긴 여러 변화를 설명하면서 이런 좋은 수양법을 배운 것이 참 행복하고 항상 감사하다고 말했다.

또 자기가 가르친 사람들도 이런 좋은 기술을 알게 해주어 무척 고마워한다며 내게도 수련을 권했다. 소재는 매우 다르지만 예수를 알아서 큰 축복이고 감사하다는 우리 기독인들의 고백과 그 분위기가 매우 유사하지 않은가? 이분을 보면서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고 무언가를 안다는 것이 얼마나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지 새삼 느꼈다. 이처럼 사람들은 남들이 모르는 무언가를 깨닫고 그것을 누릴 때 큰 행복감을 맛본다. 천국을 밭에 감추인 숨은 보화를 발견하고 기뻐하는 농부에 비유한 성경 내용도 이런 상황을 빗댄 것이리라.

서양 문명의 시조격인 그리스인들도 행복한 삶을 영위하려면 참된 지식과 앎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예컨대 소크라테스는 현란한 지식을 과시하는 소피스트들과 달리, 진리와 지혜가 있어야 행복할 수 있다고 역설하면서 젊은이들을 깨우치려고 광장을 누비고 다녔다. 내가 누구이고,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야 삶을 행복하게 만드는 데 필요한 것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참된 앎이 행복 자체는 아니지만 충분조건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자명하다. 우리는 상황 자체가 아니라 항상 내가 경험하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고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괴로움이나 만족을 느끼기 때문이다. 가끔 뉴스에서 보듯 남들이 보면 뭐든지 다 가지고 있어 전혀 부러울 것이 없어 보이는 사람들이 자살하거나 정신장애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

또 가난하지만 가정이 화목하고 작은 것에 만족하면서 즐겁게 사는 사람들 얘기도 많이 듣는다. 사회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돈이나 물질은 사람에게 만족감을 주기는 하지만 일정 정도가 넘으면 더는 영향력이 없고 심리적 요인이 더 크게 작용한다고 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물질이 아니라 자신만의 소중한 가치를 재발견하면서 나만의 행복을 발견하는 것이다.

참된 앎은 행복뿐 아니라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보통 어떤 사람을 좋지 않은 감정으로 대하거나 미워하는 심리를 분석해보면 그 사람의 가치를 잘 알지 못하거나 오해에서 비롯한 것이 많다. 사람들은 단편적인 정보만 접하고 첫인상으로 그 사람의 성향을 쉽게 판단하지만, 자신이 확실하게 사람을 안다고 착각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가 다른 사람을 잘못 판단했거나 그 사람의 장점을 발견하지 못해 오해했음을 깨닫는 경우가 많다. 싫어하던 사람의 진면목을 새롭게 발견하거나 그 사람이 처한 특수한 상황을 이해하면 오히려 그 사람에게 연민이 생기기도 한다.

안다는 것은 신앙에서도 중요하다. 교회에 다니고 신앙생활을 하지만 예수의 가치와 가르침을 내 삶 속에서 진정 알고 있는지 냉정하게 자문해보라. 성경에 기록한 예수가 아니라 내가 알고 제시할 수 있는 나만의 예수 말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바로는 참된 앎은 이미 실천을 포함한다.

예를 들어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담배의 해독성을 지식이 아니라 생생하게 느끼고 제대로 안다면 당장 금연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예수를 믿어서 매우 감사하며 예수를 닮으려는 마음이 우리에게 없다면 참된 앎이 부족한 것이다. 알아야 행복하고 제대로 된 사랑을 할 수 있다.

위 글은 교회신문 <237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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