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론과 훌] 깨진 유리창을 방치하지 말아야

등록날짜 [ 2011-08-16 13:12:53 ]

사회에 만연하는 각종 문제와 의식들
악이 익숙해지지 않도록 사고 바꿔야

고위 공직자로 추천받은 사람들을 검증하는 인사청문회에서 자주 낯익은 풍경을 보게 된다. 청문회 과정에서 비리 혐의나 부정행위가 폭로되면 의혹을 부정하던 후보자들이 잘 몰랐다고 슬쩍 발뺌하거나, 당시 상황이 불가피했다고 읍소(泣訴)하면서 용서를 구하는 식이다. 그리고 후보자를 대신해 여야 의원들이 설전을 벌이며 옥신각신하다 결국 흠이 많은데도 임명을 한다. 사태가 이러니 청문회 무용론이 심각하게 대두하는 실정이다.

특히 현 정부 들어 적지 않은 후보들이 위장 전입, 부동산 투기, 세금 포탈, 병역 의혹으로 물의를 일으키다 보니 이제 사람들도 지도층은 다 그러려니 하며 포기해 버린다. 이번에도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 대해 온갖 의혹이 제기되고, 심지어 허위로 가격을 낮춘 다운계약서로 세금까지 탈세한 정황이 보이지만 후보자는 떳떳하다고 강변(强辯)한다.

신문에서 각종 비리 관련 기사를 읽다 보면, 우리나라 공직자와 정치인의 도덕성이 고작 이 정도인지 의문이 들고, 도대체 누구를 믿을 수 있을까 몹시 우려된다.

그런데 공직자 후보들의 추문과 스캔들이 단지 개인이 부패한 탓일까?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는 승자가 모든 것을 차지하고 패자를 경멸하는 독식주의와, 무엇을 하든 결과만 좋으면 된다는 사고방식이 팽배하여 원칙을 잃어버리고 탈법과 기만이 만연하고 있다.

엄청난 비리를 저질러도 능력만 출중하면 공직자가 되어 국가에 공을 세워 지난날의 잘못을 씻으면 되고, 위법한 행위도 적발만 되지 않으면 괜찮은 것처럼 받아들여진다. 국민이 믿고 존경할 만한 지도자 찾기가 하늘의 별을 따는 것만큼 힘들고, 오히려 정직하고 원칙대로 사는 사람은 융통성이 없다고 손가락질을 당하는 세상이다.

조선의 황희 정승이나 성경에 나오는 다니엘 같은 청렴하고 헌신적인 공직자를 보고 싶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이런 사람을 보는 것이 아주 드문 일이 되었다. 또 국가 기관이나 대기업이 앞장서서 원칙을 훼손하거나 법을 무시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국가는 말할 나위도 없고 어느 조직이든 원칙이 무시되고 법이 지켜지지 않으면 리더십이 흔들릴 뿐 아니라, 불신이 만연하여 조직 자체가 무너지고 만다. 마치 둑에 난 작은 균열이 점점 커져서 둑을 무너뜨리는 것과 똑같다. 지금처럼 원칙을 무시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사회 지도층부터 위법 행위를 쉽게 하다 보면 우리 사회의 도덕성이 실종하여 나중에는 국가 존립 자체가 위태로울 수도 있다.

심리학 이론에 ‘깨진 유리창 이론’이 있다. 자동차 유리를 조금 깨뜨려 치안이 허술한 뒷골목에 방치해 두면 금방 낙서와 파괴가 발생하여 한 주도 못 되어 차가 엉망이 된다. 그런데 동일한 골목에 세워둔 깨끗한 차는 사람들이 전혀 손을 대지 않는다.

‘깨진 유리창 이론’은 오늘날 치안 유지나 범죄 심리학에서 많이 활용하고 있는데 뭔가 작은 결점이라도 방치하면 그것이 걷잡을 수 없는 파괴와 무질서를 가져온다는 것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건물에 낙서를 하거나 쓰레기를 버리는 것을 방치하면 결국 걷잡을 수 없는 강력 범죄까지 발생하기 때문에 초기에 더러운 것을 일소(一掃)해야 한다.

지금 우리 사회가 정확히 이와 같은 상태다. 유리창이 깨지고 길바닥에 쓰레기가 조금씩 쌓여 가는데 점차로 사람들이 그런 환경에 면역이 되려고 하니 사회가 위기 아닌가. 작은 원칙이라도 철저하게 지키고, 법의 철저함은 누구라도 훼손하지 않게 해야 하며, 약자만 처벌하는 편파성을 종결해야 한다. 성경은 악에 익숙해지면 절대 선을 행할 수 없다고 말한다(예레미야13:23).

위 글은 교회신문 <253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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