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론과 훌] 지옥을 믿지 않으려는 이들에게

등록날짜 [ 2011-10-18 13:16:58 ]

하나님은 우리 생각보다 훨씬 더 거룩하시며
우리는 우리 생각보다 훨씬 더 죄인임을 알자

“믿지 않는다고 하여 자신의 자녀라는 인간들을 지옥 불에 던져버리는 당신의 신을 당최 나는 이해할 수 없다. 차라리 나는 지옥에 가서 당신네 신에게 버림받은 영혼들을 구제하겠다.”

어느 종교 지도자가 한 말이다. 기독교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기독교인들을 공격하기에 너무 좋은 말이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이 말을 들으면 굉장히 당황스럽다. 그래서 그리스도인 중에도 “하나님이 설마 그렇게까지 심하게 하시겠어?” “어차피 용서해주실 거면 그냥 모든 사람의 죄를 없는 것으로 하면 되지 않을까?” 하고 말하며 지옥을 불편한 것으로 여긴다. 그럴 때마다 늘 그 앞에 붙는 말이 있다. “하나님은 사랑이신데….”

이런 의문은 하나님의 속성에 대한 철저한 오해에서 비롯한다. 하나님은 사랑이시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랑이 곧 하나님의 전부는 아니다. 사랑은 하나님이 가진 다양한 속성 중 하나일 뿐, 유일한 속성도 아니고 더 중요한 속성도 아니라는 말이다.

더욱이 오늘날 흔히 말하는 하나님의 사랑이란 것은 요즘 시대에 만연한 인본주의적 문화에 영향을 받아서 사람들이 불편하게 느끼는 하나님의 속성들은 전부 제거한 채, 괜찮아 보이는 것만을 선택해 살균 처리하고 평준화시킨 감상적인 개념의 사랑이기에 더더욱 하나님의 속성과는 거리가 있다. 그러므로 이 의문에서 벗어나려면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단정 짓기 전에 먼저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라는 속성부터 인정해야 한다.

하나님의 속성 중에 거룩함이 사랑보다 우선하면 우선했지, 절대 사랑이 거룩함보다 우선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만약 하나님의 사랑이 거룩함보다 우선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자기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아 피 흘려 죽여 인간을 구원하실 필요가 전혀 없다. 그냥 아무 조건 없이 사랑으로 인간의 죄를 순간에 용서하면 그만이다. 어느 누가 이의를 제기하겠는가?

하지만 그렇게 하실 수 없는 이유는 하나님의 ‘거룩함’의 속성이 불의한 죄를 절대 용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죄가 있는 한 거룩함의 속성상 인간을 사랑하고 싶으셔도 할 수 없다. 그래서 하나님의 거룩함과 사랑을 동시에 만족할 방법을 택하셔야 했는데, 그것이 바로 예수다. 거룩한 하나님의 아들을 인간 대신 십자가에 못 박아 그의 죽음으로 인간의 죄를 대신 짊어지셨으니 인간을 사랑함과 동시에 하나님의 거룩함을 보존하신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지옥을 믿지 않으려는 사람들도 히틀러나 스탈린, 킬링필드의 주범인 폴 포드 같은 인류 역사상 잔인한 학살을 저지른 자들은 반드시 심판을 받아야 하고, 지옥이 있다면 그런 자들에게 해당한다고 주장한다. 그것을 정의라고 믿는다. 그러면서도 하나님이 악을 영원한 지옥의 형벌로 다스리는 것이 너무 심한 처사라고 하니 한마디로 모순이다.

왜 그럴까? 자기 자신은 그 정도로 큰 죄를 짓지 않았으니 지옥의 형벌과는 상관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스스로 죄의 기준을 정해 놓은 것이다.

이렇게 자기 죄가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를 몰라서 멸망을 눈앞에 둔 어리석은 인간에게 하나님께서는 “의인은 하나도 없다”(롬3:10), “죄의 삯은 사망”(롬6:23)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지금 너희가 짓는 죄가 내 아들을 죽이지 않으면 안 될 만큼 심각한 것이니 십자가 앞에 그 죄를 가지고 나와 회개하고 나와 만나자”라는 사랑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 바로 복음이다.

지옥이 여전히 죄에 대한 하나님의 과민 반응이라고 생각하는가? 나는 예외라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반드시 귀를 기울이고 받아들여야 할 말이 있다. “하나님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거룩하신 분이며 당신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죄인입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262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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