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론과 훌] 이스라엘의 핵무기

등록날짜 [ 2012-04-11 16:31:49 ]

지난 1990년 1차 걸프전(戰) 당시, 사담 후세인은 바그다드가 점령당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생화학 무기를 사용하지 않았다. 이스라엘을 전쟁에 끌어들이기 위해 텔아비브에 수십 기(基)의 스커드 미사일을 발사했지만 끝내 화학 탄두는 사용하지 않았다.

1980년대 이란-이라크전(戰)과 북부 쿠르드 족에게 무자비하게 화학 무기를 사용했던 후세인은 어떻게 자신의 운명이 경각에 달린 순간에 그렇게 놀라운 자제력을 보인 것일까? 화학 무기를 사용하면 핵무기로 보복하겠다는 미국의 핵 위협이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후세인이 이스라엘의 핵무기도 의식했다는 사실은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현재 이스라엘은 중동에서 유일한 핵보유국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한 번도 핵무기 보유를 시인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부인한 적도 없다. 확인도 부인도 하지 않는 이스라엘의 공식 입장은 “중동에 핵을 들여오는 첫째 나라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은 이미 1950~60년대부터 미국과 소련의 핵이 비밀리에 들락날락하는 상황이어서 해석의 여지가 많은 발언이었다. 지금까지 핵을 보유한 나라들은 모두 핵실험을 하고 핵보유를 스스로 밝혔지만, 이스라엘만은 철저하게 ‘모호성’을 유지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이스라엘 핵에는 ‘지하실의 폭탄(The bomb in the basement)’이라는 별명이 붙어 있다. 핵무기가 완전히 조립한 상태로 감춰져 있는지, 스크루 드라이버로 조립만 하면 되는 정도로 대기 상태인지 아무도 모른다. 이스라엘은 이런 상태를 30년 넘게 유지해오고 있다.

하지만 이스라엘에 핵 프로그램을 공개하고 국제원자력기구의 사찰을 받으라는 국제적 압력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미국이 이스라엘의 핵무기 개발을 눈감아줬고 일방적으로 두둔한다는 비난의 목소리도 크다. 러시아와 중동 국가들은 이스라엘 핵 무장의 베일을 벗겨내려 애쓰고 있다.

하지만 여기에는 몇 가지 모순과 편견이 작용하고 있다. 먼저 미국이 이스라엘의 핵 개발을 돕고 비호해왔다는 인식이 그것이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핵 개발을 도운 나라는 미국이 아니라 프랑스다. 1950~60년대 이스라엘 초대 수상 벤구리온은 핵 개발을 시작하면서 미국에 원자로와 기술 지원을 기대했지만, 미국의 까다로운 태도 때문에 포기했다.

당시 미국과 이스라엘의 관계는 오늘날 상황과는 딴판이었다. 미국은 석유 때문에 중동 산유국들과 관계를 더 중요시했고, 이스라엘을 짐으로 여기고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던 때였다. 이스라엘이 핵무기를 개발하면 소련이 중동 국가들의 핵무기 개발을 지원할 것을 두려워한 미국은 이스라엘의 핵 개발을 막으려고 집요하게 압박했다. 미국 내 유대인 로비도 지금처럼 조직적이지 못했다.

이어 미국이 편파적으로 이스라엘의 핵무기를 못 본 체하고 있다는 인식이 있다. 하지만 미국이 핵무기 보유를 눈감아주는 나라는 이스라엘뿐 아니라 인도와 이슬람 국가인 파키스탄도 있다.

인도는 중국과 관계 때문에, 파키스탄은 테러와 전쟁 때문에 미국이 핵 개발을 울며 겨자 먹기로 눈감아주었다. 이란도 샤 정권 때는 핵 프로그램을 미국이 지원했다. 70년대 들어 4차 중동전과 중동에서 소련의 영향력이 확대되자 미국은 이스라엘을 본격적인 전략적 자산으로 여기기 시작했고 이스라엘에 천문학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소련 붕괴 이후에는 미국 내에서도 대(對)이스라엘 정책에 대한 비난 여론이 강해지고 있다. 이란 핵 문제에서 보듯 이스라엘은 다시 미국에 전략적인 자산이 아닌 짐이 되어가고 있다는 목소리가 커지기 때문이다. 이란 핵 해법을 두고도 미국과 이스라엘의 견해차는 크다.

이스라엘은 현재 100개에서 300개 정도의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핵 물질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가운데 얼마를 사용해 핵무기를 만들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핵무기를 아무리 많이 가지고 있어도 면적이 강원도만 한 이스라엘은 핵폭탄 한 발이면 멸절이다.

이 때문에 2500년 전 페르시아에서 유대인 왕비 에스더의 도움으로 멸절 위기를 넘겼던 이스라엘이 다시 페르시아의 후예를 자처하는 이란의 위협 앞에서 민족 전멸의 위기감에 사로잡혀 있다. 이는 이스라엘 네타냐후 총리가 지난 3월 5일 미 오바마 대통령과 정상회담에서 사흘 후 부림절을 앞두고 에스더서를 선물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위 글은 교회신문 <284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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