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론과 훌] 자살예방을 위한 절실한 노력 필요

등록날짜 [ 2013-09-17 09:16:39 ]

2011년 기준 OECD회원국 중 8년째 자살률 1위
예방 차원의 여러 정책 국민 모두 인식 같이해야


어떤 사건이나 자극을 처음 접하면 놀라고 집중하는 반응을 보이는데, 이를 심리학은 ‘지향반응’이라고 부른다. 반대로 고통스럽고 충격적인 일도 자주 접하다 보면 익숙해지고 나중에는 무덤덤해지는데, 이것은 ‘내성’이다.

9월 10일(화)은 세계 자살 예방의 날이라 새삼 이 말이 생각났다. 자살을 대하는 우리 태도가 이와 같기 때문이다. 한국은 2011년 기준 10만 명 당 자살률이 33.5명로 경제협력기구(OECD) 회원국 중 8년째 자살률 1위를 기록하고 있는데 이제 만성화해 자살이 대수롭지 않은 일처럼 받아들여진다.

유명인이 자살하거나 아주 끔찍한 경우가 아니면, 자살은 뉴스도 아닌 내성의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곰곰 생각하면 점증하는 자살률은 이미 우리에게는 너무 큰 비극이자 우리 사회의 치부다. 지금도 우리 주변에서 33분마다 1명이 자살로 세상을 등지고 있는데, 정작 우리는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총력으로 나서지 않기 때문이다.

작년 기준으로 국내 자살 인구는 연 1만5000여 명을 넘어섰으며, 이제 자살이 한국인의 사망 원인 4위를 차지하고 있다. 최근 들어 더 심각한 사실은 노인과 청소년 자살 비율이 급격히 증가한 점이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자살문제를 우리 사회가 해결할 시급한 과제로 인식하기보다는 개인의 문제로 돌리기 때문에 자살률이 줄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또 은연중에 자살은 항상 있는 일이라고 당연시하기도 한다. 물론 현대 사회의 여러 소외가 자살의 원인인 점도 사실이다. 하지만 많은 연구나 정책 사례를 보면 자살예방정책을 적극적으로 펼 때 상당 부분 자살률을 줄일 수 있기에 자살이 많다는 것은 공동체의 책임이기도 하다.

자살하는 심리에는 보편적으로 자신이 사회적으로 고립되어 있고, 항상 타인에게 짐만 된다는 부정적 정서와 좌절이 깔려 있다. 그러면서도 누군가 자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따뜻한 손을 내밀어 주기를 바라기에 이러저러한 형태로 구조 신호를 보낸다. 세상을 향한 마지막 절규가 외면당하면 결국 자살을 선택하는데 이는 사회가 저지르는 간접 살인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실제로 자살하려는 사람을 적극적으로 만류하면 94% 정도가 다시는 자살을 감행하지 않는다는 통계도 있다.

근래 들어 우리나라도 자살예방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여러 정책을 펴고 있지만, 아직 다른 선진국에 비하면 조족지혈이다. 예를 들어 이웃나라 일본의 경우 자살을 막기 위해 한 해에 투입하는 예산이 얼추 3265억 원인데, 이는 우리나라의 100배에 달하는 규모라고 한다. 다른 선진국들도 관련 전문가들이 협력해 자살률을 줄이려고 다양한 노력을 하고, 성공적으로 자살률을 줄이기도 한다.

자살예방과 절망에 빠진 사람들을 구제하려면 정부나 지자체가 나서야 하지만, 교회도 좀 더 적극적으로 자살을 줄이려는 사회적 분위기를 주도할 필요가 있다. 성경은 99마리 양뿐 아니라 잃은 양 한 마리를 찾는 일이 목자의 애타는 심정이라는 점을 가르쳐 주고 있다. 영혼 구원을 위해서 천하만국보다 한 생명이 귀함을 인식하면서 지금도 어디선가 죽어가는 한 영혼을 위해 우리 모두 나서야 한다.

단체 못지않게 개인의 노력도 중요하다. 주변의 관심과 말 한마디가 자살을 결심한 사람을 살릴 수 있다.

언젠가 어느 책에서 본 유서 한 구절이 기억난다. 마지막으로 투신자살을 하러 가는 길에 만약 누군가 자신을 보고 한 번이라도 웃어 주면 다시 돌이켜 살겠다던 말이….


/김 석 집사
철학박사(프랑스 현대철학)
現 건국대 자율전공학부 교수
신문발행국 논설부장

위 글은 교회신문 <354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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