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론과 훌] 죄책감을 넘어선 죄 사함의 자유

등록날짜 [ 2014-10-21 23:47:22 ]

죄를 짓게 하는 영적 실체를 바로 알아야 신앙생활 할 수 있어



죄를 지으면 누구나 죄책감으로 고통스러워한다. 죄책감은 경찰에 쫓기는 범죄자처럼 초조, 불안, 두려움은 물론 자신에 대한 실망감, 자괴감, 우울증 등에 얽매이게 한다. 사람들은 죄책감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치지만 잘되지 않는다.

 

죄책감은 그리스도인이든 아니든 인간이라면 누구나 공통적으로 경험하는 문제지만, 그 죄책감을 치유하는 방법에는 그리스도인과 세상 사람이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

 

우선 죄책감의 원인을 이해하는 것부터 다르다. 유명한 철학자이자 무신론자인 버트런트 러셀은 인간을 불행하게 하는 조건 중 하나가 ‘죄의식’이라고 했다. 러셀은 죄의식은 어린 시절에 받은 도덕교육이나 종교 때문에 생기며, 열등감을 가지게 하고 결국은 사람들을 불행에 빠뜨린다고 주장한다.

 

‘죄의식’이란 과도한 신앙이나 도덕교육에서 오는 부작용, 즉 불필요하게 엄격한 신앙이나 도덕이 만들어낸 심리적 증상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죄의식이 주는 무거운 고통에 무관심하고 대신 일, 공부, 인간 관계 등 외부세계로 주의를 돌림으로써 죄의식에서 해방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러셀의 주장대로 해서 죄의식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예수 믿지 않는 심리학자나 상담 전문가도 죄의 원인이나 실체는 외면한 채, 죄책감만 심리적으로 치료해 주면 되는 줄로 안다. 우리는 죄와 죄책감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죄의 원인과 본질을 무시한 채, 죄의식과 죄책감만 다루려는 방식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것은 마치 어떤 사람이 큰 부상을 당해 응급실로 실려 왔는데, 의사가 대충 통증을 덜어주는 모르핀 주사만 놔 주고 그냥 돌려보낸 행위와 같다. 의사는 상처를 치료해 준 것이 아니라 환자가 느끼는 고통만 잠시 제거해준 것이다.

 

일시적으로 통증이 사라져서 환자는 편한 마음으로 갔지만, 결국 상처가 악화되어 문제가 걷잡을 수 없이 심각해질 것이다. 통증만 없애는 것은 도저히 살 가망이 없는 말기 암환자에게 고통 없이 죽음을 맞이하게 할 때나 쓰는 방법이다. 통증은 신체 일부가 손상됐으니 이대로 방치하면 죽을 수도 있다고 내 몸에서 알려주는 적신호다.

 

마찬가지로 죄는 상처에 해당하고, 죄책감은 상처로 오는 고통일 뿐이다. 죄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않는 한, 죄책감도 소멸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사람들이 종교를 만들고. 이런저런 의식을 만든 것도 자신들의 죄를 씻고 용서받아 죄책감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하나님이 주신 해결책이 아닌 인간의 방법으로는 죄와 죄책감에서 절대로 자유로울 수 없다.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여 하나님과 관계가 잘못된 데에서 죄가 비롯했기에 죄의 원인 규명도, 죄의 해결도 다 하나님에게서 정답이 나온다.

 

성경은 좀 더 구체적으로 죄의 원인을 알려주고 있다.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요일3:8)는 말씀처럼 죄를 짓게 하는 영적 실체가 있다.

 

그래서 죄는 ‘죄책감’ 정도의 괴로움으로 끝나지 않는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롬6:23),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요8:34)이라 했으니, 마귀는 죄지은 인간을 자기 종으로 삼아 평생 질병, 저주, 고통으로 괴롭히다가 죽은 후에는 영원한 사망인 지옥으로 인간의 영혼을 끌고 가 기어이 영원한 고통을 안기고 만다.

 

마귀가 장악한 이 죄의 권세에서 빠져나올 방법이 이 세상에는 전혀 없다. 단 하나, 하나님께서 보내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려 피 흘려 죽으시고 부활하시어 마귀의 권세를 멸하시고 인간을 구원하는 방법뿐이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요일1:9)라고 했다.

 

그러므로 죄책감은 회개의 시작이 되어야 하며, 죄 사함받아 의에 이르게 하는 믿음의 출발이 되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하면서 부득불 죄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장항진 목사

  도서출판국장


 

위 글은 교회신문 <406호> 기사입니다.


    아이디 로그인

    아이디 회원가입을 하시겠습니까?
    회원가입 바로가기

    아이디/비번 찾기

    소셜 로그인

    연세광장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