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론과 훌] APEC과 한·중·일 외교전

등록날짜 [ 2014-11-18 09:30:26 ]

북.미 간 접근, 중.일 정상회담 등 한국 고립감 키워

미묘한 국가 간 변화 조짐이 외교에 적잖이 부담 돼

 

 

이번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는 정상들의 만남이 의제를 덮는 듯한 양상이었다.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과 일본 아베 총리는 정상 간 만남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냉랭했고 양국 국기나 테이블도 마련하지 않을 만큼 중국 측 의전도 형편없었다.

 

시진핑은 “중.일 관계에 엄중한 어려움이 생기게 된 것에 대한 시비곡직은 명확하다”며 훈계조로 아베를 나무라는 듯했다. 정상회담 사흘 전인 7일 막후교섭을 통해 중국과 4개 항의 합의문을 타결하며 공들인 일본은 수모를 당한 셈이었다. 일본은 애써 만남을 성사시켰다는 데 의미부여를 했다. 중국은 회담이 아닌 회견이나 회동이라며 일축했다.

 

중.일 정상회담 직전에 있던 한.중 정상회담은 친밀감이 넘쳤다.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의 실질적 타결 선언을 한 터라 더욱 그랬다. 한.중의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가 자유무역협정를 매개로 더욱 가까워진 듯했다.

 

미국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THAAD) 도입 논란, 중국이 주도하는 아시아인프라개발은행(AIIB) 가입 유보 등으로 조성된 양국 간 다소 서운한 분위기는 FTA 타결로 한결 누그러졌다. 더구나 다음 날 박근혜 대통령이 APEC 정상 선도발언에서 아시아태평양자유무역지대(FTAAP) 지지 입장을 밝히고 시진핑 주석이 화답함으로써 최상의 분위기를 연출했다.

 

한.미 정상회담은 한.중 정상회담에 비해 조촐했다. 중.일 정상회담 같진 않았지만 의전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20여 분간 간소한 약식회담이 이뤄졌다. 중국 주도의 FTAAP에 대한 미국의 섭섭함이 반영됐다는 분석이 제기됐지만 주요 현안에 대한 논의가 충분히 이뤄졌다는 것이 청와대 설명이다.

 

한.일 정상회담은 계획에 없었다가 뜻밖에 이뤄졌다. 박 대통령은 APEC 갈라 만찬에서 알파벳 순서에 따라 자리를 배치 받아 아베 총리와 나란히 앉게 됐다. 과거사 문제에 진정성을 보이지 않았지만 박 대통령은 아베와 의례적인 인사 수준을 넘어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한.일 국장급 협의 등 실질적인 현안들을 논의했다.

 

APEC에서 이뤄진 정상회담들은 각국의 이해관계를 그대로 반영했다. 상대에 따라 냉랭하고 어색한 분위기에서도 정상들이 대화를 시도한 것은 한.중.일 간 외교적 대립과 경색 국면이 도를 넘고 있다는 위기의식 때문이다.

 

한국의 위기의식은 북.미 접근과 전격적인 중.일 정상회담이었다. 미국이 정보기관 총책임자를 북한에 직접 보내 억류 미국인들을 데리고 나온 데다 중.일이 전격 정상회담 개최에 합의한 점이 고립감을 키우는 요인이 됐다.

 

중국으로서도 악화일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일본, 북한과 관계가 좋을 수 없다. 일본은 아베 총리의 과거사 부정으로 더 고립된 양상이다. 중국, 한국과 극심한 외교적 대립에 처한 일본은 국면 전환 카드로 쓰려던 북한과의 납북자 협상까지 북한의 합의 파기로 무산되면서 ‘왕따’가 된 상황이다.

 

하지만 동아시아 경제 통합을 주도하려는 중국과 이를 제어하려는 미국, 센카쿠(중국 댜오위다오)를 둘러싼 중.일간 대립, 과거사 문제에 퇴행적 행보를 고집하는 일본 등 넘기 어려운 문제가 산적해 있어 당장 현상 타개는 어려워 보인다.

 

그러나 최근 중간선거에서 패한 오바마 정부가 클린턴이나 부시 때처럼 임기 말 외교적 성과를 위해 북한과의 대화에 전격 나설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이 경우 북.미 협상이 본격화되고 한국은 뒷전으로 밀려날 수 있다.

 

중.일 관계는 정상회담 한 번으로 갈등이 해소될 수는 없지만 센카쿠에서 군사적 충돌을 막기 위한 대화창구가 가동되기 시작한 점은 주목해야 한다. 한.중.일 관계에 미묘한 변화 조짐이 보이면서 한국 외교에도 부담이 더욱 가중되고 있다.


/ 이웅수 집사
KBS 보도국 기자
정치부 외교안보팀장
신문발행국 논설위원


 

위 글은 교회신문 <410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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