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64년 전 12월, 흥남 부두에서 있었던 일

등록날짜 [ 2014-12-09 01:24:50 ]

피난민을 태우려고 모든 무기를 버렸던 연합군

생명을 구하는 일은 그 어떤 것보다 더 위대해

 

#1. 1950년 6.25사변 발발 후 우리나라는 낙동강까지 전세가 밀렸다가 UN군 개입으로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함에 따라 전세는 역전됐고, 10월 26일에는 한국군과 연합군이 압록강까지 진격하는 쾌거를 누린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중국군이 전쟁에 개입하면서, 30만 명에 이르는 중국군이 한국군과 연합군이 알지 못하게 후방을 차단함으로써 육로도 퇴각하는 일이 불가능한 상황에 이른다.

 

결국 한국군과 연합군은 육로로 퇴각하는 것을 포기하고, 바다를 통한 퇴각을 결정하는데, 군인들 집결 장소가 바로 흥남 부두였다.

 

연합군은 한국군과 연합군 군인 10만 5000명과 군수물자 35만 톤을 모두 수송할 계획으로 군함과 상선을 총동원한다. 그런데 군인들이 퇴각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피난민도 군인들을 따라 흥남 부두로 밀려든다.

 

‘흥남부두철수작전’은 군인과 군수물자의 철수를 위한 것이어서 민간인은 처음부터 이 작전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런데 당시 미군 민사고문단이던 의사 현봉학 씨가 피난민을 배에 태워 줄 것을 미군에 강력하게 요구했다. 미군은 처음에는 현봉학 씨의 요구를 거절했지만, 현봉학 씨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피난민들을 배에 태워 줄 것을 요구한다.

 

#2. 얼어붙은 전선에서는 총상보다 동상으로 인한 부상자들이 더 많았다. 피난민들은 후퇴하는 군인들과 섞여 강을 건너고 산을 타고 배에 매달려야 했다.

 

동족 간의 싸움에 흥남부두는 비극을 만들어 갔다. 세차게 불어 닥치는 해풍(海風)과 눈보라는 피난민들의 가슴속을 더 싸늘하게 파고들었다. 엄마를 잃은 아이는 얼굴이 사과처럼 빨갛게 얼고 콧물과 눈물이 범벅이 돼 지쳐 주저앉아 발버둥치고 있었다.

 

어떤 엄마는 자식의 이름을 목청 높여 불러 가며 반 미친 상태로 아이를 찾아 헤맸고, 법도, 질서도, 인정도, 양심도 찾아볼 수 없는 비극의 현장이 바로 흥남 부두였다. 결국, 미군 장군인 알몬드 장군은 결정을 내린다.

 

“배 안의 모든 무기를 버려라.”

 

군인이 무기를 버리고, 민간인을 배에 태우는 결정은 군인으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군용물자를 훼손하는 일은 군형법으로 엄하게 처벌해야 하는 일인데, 경우에 따라서는 사형에 처할 수도 있는 엄청난 사건이다.

 

알몬드 장군은 배에 싣고 있는 모든 군수물자를 버리라고 지시하고, 피난민을 태우라고 명령한다. 군수물자를 버리는 모습을 본 배에 탄 피난민들도 자신들의 모든 짐을 버리고 한 명이라도 더 태우려고 노력한다.

 

#3. 민간 유조선인 메러디스 빅토리호는 승선 가능인원 2000명을 7배 초과한 1만 4000명을 태웠고 버지니아 빅토리호도 1만 4000명, 레인 빅토리호 7000명, 일본상선 마다게쯔호 6000명, 요니야마호 3000명, 미 해군 LST함 수십 척, 우리나라 민간어선 등으로 피난민 철수 작전을 감행한다. 결국 선박 총 193척이 국군과 미군, 피난민 10만 명을 모두 싣고 흥남에서 철수하는 데 성공한다.

 

메러디스 빅토리호는 화물선으로서 무려 1만 4000명을 태우는 기적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었고, 그 비좁은 배에서 새로운 생명 5명이 태어나기도 했다. 1950년 12월 24일에 있던 이 사건을 사람들은 ‘크리스마스의 기적’이라고 불렀다. 이 사건을 기념하려고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있는 흥남철수작전기념비 인명에 10만 명을 구한 영웅 6명의 얼굴이 새겨져 있다. 이후 미군도 알몬드 장군을 군형법에 따라 처벌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생명을 구하는 일은 그 어떤 것에도 비교할 수 없는 가장 숭고하며 위대한 일이다. 100년도 채 되지 않는 인생을 위해서 바치는 수고도 위대할진대, 영원한 삶을 위해 영혼을 구하는 일은 그 어디에 비교할 수 있을까. 이제 내년을 위해 새로이 맡겨진 사명, 영혼 구원이라는 값진 일에 쓰임받을 수 있다는 기쁨을 영원히 잊지 말아야 하겠다.

 정재형 편집장
 

위 글은 교회신문 <413호> 기사입니다.


    아이디 로그인

    아이디 회원가입을 하시겠습니까?
    회원가입 바로가기

    아이디/비번 찾기

    소셜 로그인

    연세광장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