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론과 훌] 진정한 달관을 위하여

등록날짜 [ 2015-04-07 17:26:09 ]

최근 모 신문사에서 요즘 20~30대 젊은이들을 ‘달관세대’라고 부르며 칭찬한 기사가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이 신문에 따르면 불황이 계속되면서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삼포세대’ 혹은 ‘88만원 세대’라고 자조하며 절망하던 젊은이들이 최근에는 미래에 대한 헛된 기대를 버리고 적게 벌더라도 주어진 것에서 행복을 찾으려고 태도를 바꾸고 있다고 한다. 새롭게 철이 든 젊은이들은 풍요로운 미래에 대한 환상을 버리고 햄버거를 먹고 궁핍하더라도 현실을 긍정하면서 자기 조건에서 만족을 찾는다고 한다.

 

물론 현실이 바뀌지 않는다면 절망하고 분노하기보다는 차라리 현실을 긍정하면서 주어진 여건에서 적은 만족이라도 찾는 것이 나을지 모른다. 문제 해결이 어렵고 구조적일수록 분노하기보다는 긍정적으로 사태를 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안 그러면 화병으로 파멸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도 지난해에 개인적으로 오래 준비하고 기도한 일이 실패해 몹시 울화가 치밀고 낙심하기도 했지만 점점 하나님의 섭리를 기도 속에 찾고 주어진 여건에 감사하면서 이를 잘 극복하는 중이다. 달관은 이렇듯 좋은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모든 문제를 필자처럼 그냥 받아들이면서 개인적으로만 풀라고 말한다면 자칫 사태의 본질을 호도할 수 있다. 더구나 그간 경제 성장의 과실(果實)을 누릴 만큼 누린 기성세대가 궁핍에 처한 청년층을 위로한다고 하면서 불안정한 일자리라도 감사하면서 받아들이고 매사를 긍정하라는 둥 격려하는 모습은 어딘가 공허하고 무책임해 보인다. 달관세대라는 말은 자칫 사회구조에서 비롯되는 구조적 문제를 개인에게 온전히 전가하면서 마치 자세만 바꾸면 불행 속에서도 행복을 찾을 수 있는 것처럼 호도할 수 있다. 필자가 보기에 젊은 세대는 달관보다는 체념세대에 가깝다.

 

한국경제가 언제부턴가 끝없는 침체에 빠지고 안정된 일자리가 줄면서 특히 사회생활을 막 시작한 젊은 세대에게 경제적 고통이 집중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먼저 이러한 냉혹한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대학에 몸담고 있는 필자는 학생들이 졸업할 나이가 지났는데도 졸업을 유예하고 도서관을 전전하며 시험 준비에 매달리고 미래를 불안해하는 것을 보면서 젊은이들의 이유 있는 무력감과 절망에 많이 공감한다.

 

적어도 필자가 대학을 다니던 1980년대에는 취업이나 결혼 때문에 아등바등 고민하지는 않았다. 실제로도 어떤 식으로든 먹고살았기 때문이다. 요즘 학생들을 보면 삶의 비전이나 가치관을 고민하면서 낭만을 즐기고 패기 있게 모험하려고 하기보다는 어딘가 위축되어 있고 소극적이다. 학생들과 상담할 때도 제일 많이 나누는 화제는 직업과 장래에 대한 것이다. 이럴 때면 필자는 적극적인 삶의 태도와 젊은이다운 도전정신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도 마음 깊숙이 안쓰러움과 큰 도움을 주지 못해 무력감을 느낄 때가 많다.

 

삶에서 물질적인 것보다 정신적인 것이 더 중요하고 특히 삶을 주관하는 절대자를 믿는 신자들은 범사에 감사하고 때로 주어진 삶을 그 자체로 아름답게 만드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렇다고 해도 여전히 물질적인 것은 부정할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하다. 나라의 운영을 책임진 사람이나 어른들은 젊은이들이 절대 빈곤에 허덕이지 않게 해 주면서 이들이 물욕과 정욕을 벗어나 달관의 지혜를 터득할 수 있도록 이끌어 줘야 한다.

 

성경은 우리가 너무 풍요로워 하나님을 외면하거나 반대로 너무 가난해 도둑질을 하면서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않고 살 수 있기를 기도하라고 한다.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적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잠30:8).

김석 집사

철학박사(프랑스 현대철학)

現 건국대 자율전공학부 교수

신문발행국 논설부장

위 글은 교회신문 <429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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