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론과 훌] 잦아지는 총소리… 흔들리는 김정은 체제 

등록날짜 [ 2016-08-15 16:02:41 ]

북한에서 총소리가 잦아지고 있다. 올 들어 벌써 60명 넘는 북한 주민이 공개 처형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은 집권 이후 해마다 평균 30여 명을 공개 처형했다고 알려졌는데 처형자 수가 벌써 두 배에 이른다. 공개 처형을 금지하라는 국제사회 요구가 빗발치고 있지만 북한은 귓가로도 듣지 않는다. 통일연구원이 발간한 2015북한인권백서를 보면 2000년에서 2014년까지 모두 1382명이 공개 처형당한 것으로 집계됐다. 해마다 한국에 들어오는 북한 이탈주민 200여 명을 대상으로 심층 면접조사를 벌여 파악한 수치니 실상은 이보다 더 많을 것으로 추정한다.

북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북한 당국은 공개 처형 전에 주민에게 먼저 인민반이나 기업소 등을 통해 이를 알린다고 한다. 형장에 직접 와서 보라는 것이다. 장마당 같은 넓은 공공장소에 사람들이 모이면 임시재판소가 열리고 처형하는 사람의 죄목이나 경력이 공개된다. 처형당하는 사람은 끌려나오기 전에 이미 고문과 구타로 초주검이 된 상태다. 입에는 재갈이 물려진다. 처형 방법은 총살형이 대부분이다. 군인 3명이 3발씩 9발을 쏘는데 수십 발씩 난사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런 장면을 가족들에게 직접 보게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가족들이 받는 충격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북한이 공개 처형을 자행하는 이유는 체제유지를 위한 이른바 주민 교양 차원이다. 북한 형법상 살인죄에 해당하는 경우 공개 처형 대상이지만, 1990년대 중반 식량난이 심각해지면서 생계형 범죄까지 공개 처형 대상이 되고 있다고 한다. 소를 훔쳐 몰래 도살하거나 전깃줄을 훔쳐 파는 경우도 사회질서를 문란하게 하고 정권의 기반을 위협한다는 죄목으로 공개 처형당한 사례가 접수되고 있다. 부정부패와 비리가 만연한 북한에서는 이제 누구나 공개 처형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특히 남한 가족들과 휴대전화로 통화하는 등 남한과 관련된 경우는 가차 없이 처벌당한다고 한다

또 지도자의 실패를 덮기 위해 공개 처형하기도 한다. 1990년대 초반 이른바 심화조 사건이 그것이다. 김정일은 김일성 세력을 축출하려고 심화조 사건을 일으켜 대대적인 숙청을 단행했다. 이 과정에서 김정일은 농업담당 비서 서관희를 미제의 고용간첩과 비료 30만 톤 착복 혐의로 몰아 공개 처형했다

서관희는 평양시 낙랑거리 장마당에서 평양시민 5000여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공개 총살당했다고 한다. 서관희 처형으로 고난의 행군 기간 김정일에 대한 민심 이반은 한풀 꺾였다. 하지만 서관희는 북한 최고의 농업 전문가로 북한의 식량난 해결을 위해 고군분투했던 인물이었다는 것이 탈북자들의 증언이다

화폐개혁 실패의 책임자로 몰려 2010년 총살당한 박남기 전 노동당 계획재정부장도 마찬가지다. 박남기는 북한의 대표적인 경제 관료로 북한 경제를 살리고자 누구보다 김정일과 김정은에게 충성했지만 최고지도자의 실패를 무마하기 위한 희생양으로 20103월 평양에서 공개 총살당했다

이렇듯 공개 처형 대상도 달라지고 있다. 김일성 시대에는 핵심군중, 다시 말해 항일 빨치산 가족, 6.25 전쟁 공로자, 당 일꾼 등 간부와 가족에 대해서는 관대하게 처리했다고 한다. 정치범들도 수용소로 끌고 가 조용히 처형했다고 한다

하지만 김정은 시대 들어 장성택이나 인민무력부장 현영철 사례에서 보듯 최고위층도 불경죄 등 사소한 이유로 공개 처형당할 수 있다. 김정은 집권 이후 처형당한 간부가 100여 명에 이른다는 것이 정보당국의 평가다

김정일, 김정은으로 이어지며 더 잔인하고 무자비해지는 공포정치는 역효과를 내고 있다. 김정은 집권 이후 남한으로 망명한 북한 핵심 고위간부가 40~50명에 이른다. 김정은에게 아무리 충성을 바쳐도 하루아침에 정책 실패의 희생양으로 전락할 수 있는 상황에서 너도나도 뛰쳐나오는 것이다

일반 주민의 탈북도 줄어드는 듯하다가 다시 느는 추세다. 이에 김정은은 정찰총국과 국가안전보위부 등 권력기관을 총동원해 공포 통치를 강화하고 있지만 이는 탈북을 더 부추기는 순환고리를 만들어 냈다. 한 저명한 북한 전문가는 5년 이내에 북한에서 무슨 일이 날 것 같다고 걱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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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웅수 집사

KBS 보도국 기자

신문발행국 논설위원 

위 글은 교회신문 <492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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