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론과 훌] 자살은 하나님에 대한 명백한 범죄다

등록날짜 [ 2016-09-22 15:41:55 ]

죽음의 문제는 인간이 좌지우지할 것이 아니니

언제 어디서나 당당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야

 

지난 826() 롯데그룹 부회장이 검찰 소환을 앞두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는 은퇴 후 여생을 보낼 목적으로 자주 찾던 경기도 어느 산책로에서 목을 매 인생을 마감했다. 그간 적지 않은 사회 저명인사들이 검찰 수사를 앞두거나 조사 도중에 자살한 일이 많아 이런 비극이 새삼스럽지 않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은 어느 날 갑자기 비리 혐의로 수사 대상에 오르면 평생 쌓아 온 명예가 실추돼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일반인보다 훨씬 크게 느낀다고 한다. 또 자신이 속한 조직에 누를 끼치면 안 된다는 중압감도 커서 자살로 어려움을 회피하려는 충동적 행동을 나타내기 쉽다.

작고한 이 부회장은 기독교 신자로 알려졌고, 평소 낙천적인 사람이어서 주변에 주는 충격이 컸던 모양이다.

언뜻 보면 죽음을 통해 모든 허물과 죄를 책임지고 명예도 지키는 것 같지만, 사실 자살은 그 목적이 어떠하든 범죄이고, 책임 있는 행동이 아니다. 유다는 예수를 판 후 자기 잘못을 깨닫고 자신이 무죄한 피를 팔았다고 한탄하면서 목을 매어 죽었지만 저주받은 자로 성경에 기록되었다. 압살롬의 반역을 돕다 자신의 실패를 깨닫고 고향에 돌아가 자살한 아히도벨도 마찬가지다.

자살은 생명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에게 도전하는 행위이며, 속죄를 구하는 겸손한 행동과는 거리가 멀다. 진정 용기가 있다면, 베드로처럼 예수를 세 번이나 부인했지만 자기 잘못을 회개하고 남은 인생을 그 빚을 갚기 위해 산 것처럼 살아야 할 것이다.

인간 윤리로 판단할 때도 범죄 혐의자가 자살하는 것은 숭고한 행동이 아니라 범죄 혐의를 덮고 조직을 감싸려는 이기적 행동이다.

자살에 대한 많은 논의와 주장이 있다. 고대 키레네학파 같은 쾌락주의자들은 쾌락을 최고 선이자 인생 목적으로 추구하면서 결국 고통을 피하는 방법은 인간적 한계를 넘기 위해 죽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실제로 고대 철학자 헤게시아스는 자살을 권장했고, 많은 사람이 그 영향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프랑스 문필가 장 아메리는 자살은 자유의지에 따른 결정이므로, ‘자유로운 죽음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유명 작가 중에서도 자살한 사람이 많다.

분명 인간에게는 여러 가지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의지가 있다. 때로는 사는 것보다 죽음이 더 명예롭거나 심지어 대중적인 찬양을 받기도 한다.

예를 들어 일제 침략을 규탄하며 대한 독립을 위해 헤이그 밀사로 싸우다 일제의 방해로 뜻을 이루지 못하자, 한을 남긴 채 순국한 이준 열사 같은 분이 있다.

하지만 자살자 상당수는 대의를 위한 희생보다는 자신이 당면한 문제로 괴로움과 고통을 겪다가 거기서 벗어나려고 죽는다. 설사 자신이 속한 조직이나 특정 비밀을 지키려고 죽는다 할지라도 그것은 결국 사람의 목숨을 도구처럼 대하는 희생주의 사고의 연장일 뿐이다.

이번 롯데그룹 이 부회장 같은 경우도 그가 남긴 유서처럼 비자금도 없고, 사측에 아무 잘못이 없다면 죽을 것이 아니라 검찰 수사를 받아 그 진실을 밝히려고 노력했어야 한다. 죽음으로 모든 것을 덮은 게 아니라 의구심만 더 키운 게 이번 자살의 본질이다.

진정 하나님의 영광과 복음을 위해 사는 크리스천들은 어떠한 경우에도 자살이나 성경이 금하는 극단적 행동을 삼가야 한다. 그리고 세상 삶에서도 공동체와 역사에 대해 진실하고 윤리적으로 떳떳해야 한다. 죽음에 대해서 인간은 늘 겸손해야지, 그것을 내가 좌지우지할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하면 안 된다.

 

/김석 집사

철학박사(프랑스 현대철학)

건국대 자율전공학부 교수

신문발행국 논설부장

위 글은 교회신문 <495호> 기사입니다.


    아이디 로그인

    아이디 회원가입을 하시겠습니까?
    회원가입 바로가기

    아이디/비번 찾기

    소셜 로그인

    연세광장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