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론과 훌] 말세와 난세에 다시 생각하는 정명론

등록날짜 [ 2016-12-08 12:50:47 ]

정명을 회복해 사회 무사안일과 도덕불감증을 바로 잡아야
사명을 감당하고 깨어 있는 것이 말세 교인의 자세


공자의 대표 사상인 ‘정명론(正名論)’은 ‘이름을 바로 잡는다’는 뜻을 가지고 보통 유교적 신분 질서와 통치를 정당화하는 이론으로 활용되었다. 정명론은 제나라 경공이 공자에게 정치의 본질을 물었을 때 공자가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부모는 부모답고 자식은 자식답게”라고 말한 것에서 그 실천적 의미를 잘 드러낸다. ‘이름을 바로 한다’는 것은 자기 본분에 충실하면서 대의명분을 분명히 하는 아주 중요한 일이다.

공자의 사상은 보수적이고 위계적으로 보이지만 거꾸로 임금이 임금답지 못하거나 부모가 부모답지 못하면, 그리고 신하나 자식이 해야 할 도리를 다하지 못하면 그에 맞는 대우를 받지 못하거나 심하면 쫓겨날 수도 있다는 혁명성을 내포하고 있다. 실제로 맹자는 공자의 정명론에 근거해 역성혁명, 즉 신하가 임금을 몰아내고 새 왕조를 여는 정변을 옹호하기도 했다. 맹자가 역성혁명을 두둔했으므로 조선 초에는 <맹자>를 금서로 정하기도 했다.

최근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탓에 온 나라가 어지럽다. 따지고 보면 이 사건이 그리 큰 여파를 몰고 온 것도 대통령과 그를 보좌하는 공직자가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과 책임을 못하고 오히려 아무 권한이나 법적 지위가 없는 사람들을 국정에 개입하게 했기 때문이다. 큰 조직이든 작은 조직이든 조직을 운영하고 공동 목표를 실현하려고 지도자들을 세우고 그들에게 특정한 임무와 권한을 주는데, 이를 소홀히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작금의 사태가 잘 보여준다. 당사자들이 어떤 변명을 하더라도 자기 이름에 충실하지 못한 점에 있어서 합당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하나님이 당신을 찬미하게 하려고 지은 천사가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처소를 떠나면서(유1:6) 대적 마귀와 사단이 되었다. 이사야 14장을 보면 이들은 자신들의 보좌를 높여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 창조주 하나님과 비기려고 했다. 그 결과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에 묶여 흑암에 갇혔다. 성경에 따르면 죄는 결국 자기 지위를 소홀히 하거나 자신이 감당해야 할 사명을 배신하는 행동이다. 아무런 유익을 남기지 못하고 도로 한 달란트만 가져온 종을 주인이 책망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공자의 정명론이나 타락한 천사 이야기는 현재 벌어진 시국 문제는 물론 말세를 사는 모든 기독인들에게도 시사해 주는 바가 크다. 정도 차이는 있지만 누구나 자기 자리와 이름이 있다. 통치자들에게 이름에서 나오는 본분과 권한이 있듯, 모든 사회 조직과 가정에도 자기 역할이 있으므로 각자는 자기 명(名)에 충실해야 한다. 특히 자신이 한 집단의 책임자라면 그에게 주어진 책임은 더욱 크다. 그러므로 혹시라도 자신이 자기 자리에 합당하지 않다면 그 자리에 욕심을 내서는 안 되고 어떤 역할이 주어졌다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번 국정농단 사태를 정치적으로 큰 후유증 없이 해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무사안일과 도덕불감증을 바로 잡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12월이면 교회도 신년에 감당해야 할 직분을 주고, 새 기관과 조직을 구성한다. 혹시라도 자기가 속할 조직이나 직분이 없다면 나중에 천국도 열외가 되어 바깥으로 밀려날지 모른다. 미혹이 기승을 부리는 말세에 자기 자리를 떠나지 않고 사명을 감당하도록 경각심과 사명의식을 가져야 한다.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고전4:2)이라고 하였다. 교회와 가정, 사회와 국가에서 우리는 다양한 이름과 본분을 부여받는다. 올 한 해 자기 정명에 충실했는지 반성하면서 마음가짐을 새롭게 해 새해를 준비하자.



/김석 집사
철학박사(프랑스 현대철학)
現 건국대 자율전공학부 교수
신문발행국 논설부장

위 글은 교회신문 <506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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