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론과 훌] 시대를 깨우는 정신, 지금도 유효해

등록날짜 [ 2016-12-21 14:01:23 ]

일제강점기 前 조선과 비슷한 현재 한국과 국제 정세
기독교 근본 삼아라, 남 탓 말라
초대 대통령 당부를 거울 삼아야


1899년 1월 9일, 이승만은 고종을 퇴위시키고 입헌군주제 정부를 수립하려는 쿠데타 모의에 가담했다는 혐의로 체포됐다. 사형은 간신히 면했지만 5년 7개월간(1899년 1월 9일~1904년 8월 9일) 참혹한 수감생활을 했다.

한성감옥에 갇힌 이승만은 목에 10kg 나가는 형틀을 달고 두 손에 수갑을 차고 발에 형틀을 끼운 채 7개월을 지냈다. 나라를 구하려다 함께 투옥된 동료들은 하나둘 사형 집행을 받아 사라져 갔다.

자신도 언제 죽을지 모를 극한 상황에서 이승만은 배재학당에서 예배드리던 모습을 떠올렸고 거기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다. 인류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예수를 구주로 믿으면서 평안을 찾았다. 그 후 이승만은 예수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로 변신했다.

이승만에게 복음을 듣고 전도받은 40여 명은 한국 역사에 없어서는 안 될 귀중한 인물로 이름을 남겼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이준(헤이그 밀사 사건 주인공), 이상재(독립협회 간부), 박용만(하와이에서 사관학교 운영), 양기탁, 장호익, 유성준 등이다.

1904년 2월 8일 일본 연합함대가 청나라 뤼순항에 주둔해 있던 러시아 극동함대를 기습 공격해 러·일전쟁의 불씨가 됐다. 이 소식을 들은 이승만은 옥중에서『독립정신』을 써 내려갔다. 『독립정신』은 출옥하기 직전인 1904년 6월 19일에 집필을 마쳤다. ‘거적때기와 차꼬(족쇠) 밑에 종종 감추어가며 기록한’ 이승만의 처절하고 절박한 외침이었다. 조선왕조 최후 10여 년간의 기록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가치도 있다.

이승만은 『독립정신』에서 애국심이 무엇인지, 우리나라가 왜 민주제도로 개혁해야 하는지를 설파했다. 당시 양반 관리들은 나라를 구할 생각은 하지 않고 외세를 이용해 자기 자리를 보존 할 생각에 여념이 없었다. 백성은 무지해 어떻게 할지 몰랐다.

“우리 대한 동포들아! 신분이 높든 낮든, 관리든 백성이든, 부자든 가난한 자든, 양반이든 천민이든, 그리고 남녀노소 할 것 없이 2000만 민족 한 사람으로서, 나라를 이 지경으로 만든 데는 각자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책 첫 부분이다. 당시 약육강식이 지배하던 냉혹한 국제 정세에서 본다면 조선에서 일어난 러·일전쟁은 일본, 청나라(중국), 러시아 같은 주변 열강에 그 책임을 돌려도 문제가 없다. 또 나약한 국왕과 부패한 정치 세력에 화살을 돌릴 수도 있다. 하지만 이승만은 누구 탓도 아닌, 각자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고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하든지 상관하지 말고 먼저 자기 책임을 다하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이 호소는 오늘날 무엇이든 남 탓만 하는 현대인에게도 그 울림이 크다.

다음은『독립정신』마지막 문장이다.

“세계 문명국 사람들이 기독교를 사회 근본으로 삼더니, 그 결과 일반 백성까지 높은 도덕 수준에 이르렀다. 지금 우리나라는 쓰러진 데서 일어나려 하고, 썩은 곳에서 싹을 틔우고자 애쓰는데, 기독교를 근본 삼지 않고는 온 세계와 접촉 할지라도 참된 이익을 얻지 못한다. 신학문을 아무리 열심히 배워도 그 효력을 얻지 못하고 외교를 위해 아무리 힘써도 돈독한 관계로 발전하지 못할 것이다. 나라의 주권을 소중히 여겨도 서양 앞선 나라들과 대등한 지위에 이르지 못할 것이고 도덕적 의무를 존중해도 사회 기풍이 한결같지 않을 것이고, 자유를 소중히 여겨도 자유의 한계를 몰라 어려움에 직면할 것이다. 우리가 기독교를 모든 일의 근원으로 삼아 자기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위해 일하는 자가 되어 나라를 한마음으로 받들어 우리나라를 영국과 미국처럼 동등한 수준에 이를 수 있게 최선을 다해야 한다.”

교인 수 1200만 명에서 800만 명으로 추락한 한국 교회에 들려주는 112년 전 29세 청년 이승만의 외침이 어떻게 들리는가. 현재 일어나고 있는 대한민국의 모든 상황을 나라 탓, 환경 탓하며 안일하게 지내겠는가. 더 기도하지 못하고, 더 사랑하지 못하고, 더 섬기지 못한 내 책임이라고 고백하면서 애통한 마음을 품고 나라를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겠는가.


/정한영 안수집사
신문발행국

위 글은 교회신문 <508호> 기사입니다.


    아이디 로그인

    아이디 회원가입을 하시겠습니까?
    회원가입 바로가기

    아이디/비번 찾기

    소셜 로그인

    연세광장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