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론과 훌] 젊은 세대의 서글픈 자화상 ‘소확행(小確幸)’

등록날짜 [ 2019-03-06 17:43:33 ]

“행복은 미래에?…아니요, 지금 바로요
어차피 못 살건 데 지금이라도 즐기자”
선택지 없는 요즘 젊은이 세태를 반영
이로움·육신적 소욕만 좇다 삶 망칠 수도


작년에 회자된 유행어 순위를 우연히 보았는데 1위가 ‘소확행’(小確幸)이었다. 소확행이 그렇게 많이 회자되었는지 의구심도 있지만, 이 단어가 현재 한국사회의 유행이자 문화를 보여주는 것은 사실이다. 소확행은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작지만 확실한 행복’의 줄임말이다. 원래 일본의 유명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1986년 사용한 말인데, 언제부터 한국의 소비 트렌드와 문화를 대변하고 있다. 행복은 갓 구운 빵을 손으로 찢어 먹으면서 느끼는 사소한 만족감 같은 데 있다는 것이다.


소확행이 유행하면서 소비 양상도 바뀌고 있다. 예전에는 소득에 따라 소비가 이루어지는 게 보통인데, 요즘은 가난한 대학생이 알바를 통해 번 돈으로 수십만 원대 명품을 구입하거나 일류 호텔이나 여행에서 번 돈을 몽땅 쓰면서 자신을 즐겁게 한다. 예전 소비자가 ‘가성비’, 즉 가격대비 기능이나 품질을 따지는 실용적 소비를 추구했다면,  요즘 세대는 가격과는 상관없이 심리적 만족감을 주는 ‘가심비’ 소비를 하면서 행복해한다. 미래를 위해, 더 나은 삶을 위해 사는 게 아니라 기회가 닿을 때 쾌락을 누리면서 물질적 행복을 극대화하는 소확행이 대세적 문화가 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탕진잼’(돈을 탕진하면서 기분이 좋아짐), ‘욜로’ 같은 말이 덩달아 유행하면서 소비를 행복과 동일시하는 경향도 커진다. ‘욜로’(YOLO)는 ‘인생은 단 한번 뿐이다’(You Only Live Once)의 줄임말이다. 한 번뿐인 인생이니 보람 있게 살자가 아니라, 즐길 수 있을 때 즐기면서 살자는 마인드다. 기성세대 눈으로는 잘 이해가 되지 않지만 이런 현상이 젊은이들에게 만연하고 있는데 라면이나 빵으로 점심을 때우고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는 것도 소확행을 통해 설명할 수 있다. 백화점 명품판매는 점점 증가하는 반면, 중저가 상품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값싼 브랜드가 사라지는 것도 소확행 때문이다.


예전 세대가 공존을 위한 희생을 당연시하고, 당장의 물질적 쾌락에 빠지기보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현재의 고통을 감내했다면, 지금 세대는 현재와 물질적인 것에 민감하고 이를 중시한다. 물론 그렇다고 젊은이들이 베짱이처럼 게으름을 부린다는 말이 아니라 요즘 시대정신이 그렇다는 말이다.


소확행은 언뜻 실용적이고 개성을 중시하는 젊은이들의 발랄함과 주체성을 보여주는 것 같지만, 사실 자세히 뜯어보면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공동체적 관계가 깨지고 있는 외로운 세태를 반영한다. 비전을 가지고 미래를 준비하기에는 경제를 포함한 사회 상황이 너무 불안정하고, 취업이나 사회 안전망이 미비하다 보니 내일을 위해 현재의 쾌락을 포기하는 것이 오히려 더 어리석다고 생각한다.


예전에는 열심히 노력하고 실력을 쌓으면 안정된 직업도 얻고 내 집도 마련하며, 내가 어려우면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그런데 모든 것이 불확실해지면서 나를 기쁘게 할 수 있는 물질적 사치라도 누리자는 일회적 풍토가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상류층처럼 어떤 부분은 분수에 넘게 사치를 부릴 수 있고 결혼을 포함해 남과 무엇을 나누기보다 내게 유익되는 것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이기적 속물주의 심리가 소확행에 깔려 있다.


물론 현재에 충실해야 하지만, 그것을 물질적 쾌락과 동일시하거나 더 나은 삶 대신 당장의 개인적 욕망에만 치중한다면 그것은 변형된 형태의 쾌락주의에 불과하다. 소확행의 확산은 자칫 물질만능주의, 개인주의, 쾌락주의를 조장하면서 현세의 감각적 행복만 좇는 물신숭배로 귀결될 수 있다. 현재의 이로움이나 육신적 소욕에 치중하다 보면 한 번뿐인 삶을 영원히 망칠 수도 있다.



위 글은 교회신문 <614호> 기사입니다.


김석 집사
現 건국대 철학과 교수 철학박사(프랑스 현대철학)
신문발행국 논설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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