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론과 훌] 위기의 김정은…미북정상회담 ‘새로운 길’ 있을까

등록날짜 [ 2019-03-13 17:58:59 ]

2차 미북 정상회담이 합의 없이 끝났다. 이것만은 모를 것이라고 생각한 비밀 우라늄 농축 시설을 미국 측이 제시하자 김정은이 크게 당황한 것으로 전해졌다. 회담장을 걸어 나온 트럼프는 기자회견을 한 뒤 알래스카를 거쳐 워싱턴으로 날아가 버렸고, 김정은은 호텔에 머물렀다. 충격을 받은 리용호 북한 외무상은 다급하게 새벽에 기자회견을 열어 영변 핵시설 영구폐기를 조건으로 2016년에서 2017년 채택된 제재 5건 중 민수경제와 인민생활을 제약하는 항목에 대한 제재 해제를 미국 측에 요구했다고 발표했다. 제재 일부 해제를 요구했다는 말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기본적으로, 북한은 제재 전체를 해제하기를 원했다”고 밝힌 데 대해 엇갈린 주장을 함으로써 회담 결렬의 책임을 미국에 떠넘기려는 의도였다. 전형적인 혼란전술이다. 하지만 북한 경제 특성상 민간 부문과 군수 부문 구분이 무의미하고 현재 대북제재는 서로 긴밀하게 연결돼 있어 일부 해제는 전체 해제나 다름없다는 점에서 북한 측 주장은 타당성이 없었다.


김정은은 이런 결과를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듯하다. 김정은은 평양을 출발하면서 대대적인 환송행사를 치렀다. 노동신문 등 북한 매체들도 대대적으로 회담 전망을 낙관하며 장밋빛 선전전을 펼쳤다. 북한 내부 소식에 정통한 NK 지식인연대 김흥광 대표는 김정은이 북한 주민들에게 트럼프와의 담판을 성사시켜 제재를 풀어 줄 것이며 다음 달부터 사회주의 지상낙원이 올 것이라고 선전했다고 한다.


최고지도자를 믿고 제재가 풀어지고 이제 살 만한 세상이 오리라는 기대에 부풀었던 북한 주민들, 그리고 해외에 나가 있는 무역일꾼들의 충격이 크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북한 노동신문은 회담 결렬 사실을 감추고 이번 하노이 회담이 성공적이었던 것으로 보도했다. 하지만 중국으로부터, 그리고 장마당에서 입소문은 빠르게 퍼져나가고 있다고 한다. 문재인 정부와 국내 언론들도 당황했다. 지난달 27일 회담이 시작되면서 회담 전망을 낙관하는 뉴스들을 쏟아냈다가 결렬되자 허둥댔다. 김정은과 문재인 정부 모두 트럼프 대통령의 예상치 못한 일격에 충격을 먹었다. 


하지만 이런 결과를 전혀 예상치 못했던 건 아니다. 필자도 지난호 아론과 훌에서 2차 미북 정상회담에 대해 부정적으로 전망했다. 미북 양측이 서로 줄 것이 마땅치 않아 기대감도 낮다고 했다. 김정은이 어떻게 위태로운 줄타기를 할 것인가가 관전 포인트였다. 많은 전문가의 견해도 비슷했다. 다만 결과가 더 충격적이었다.


이번에 김정은이 내놓은 영변 핵시설 폐기 카드는 이미 식상할 대로 식상한 카드다. 물론 북한 측으로서는 영변 핵시설 전체를 폐기하겠다는 제안이 자신들로서는 처음이라고 강조했지만 미국은 영변 핵시설 말만 들어도 진저리를 친다. 1990년대 1차 북핵 위기, 2002년 발발한 2차 북핵 위기에서 북한은 영변 핵시설을 이미 미국에 두 번이나 팔아 이익을 챙긴 바 있다. 이후에도 북한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영변 핵시설을 협상카드로 내밀었다. 이번에도 세 번째 미국에 ‘같은 말’을 팔아먹으려고 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속지 않았다. 영변 핵시설 폐기 카드로 미국으로부터 제재 해제를 얻어내려 했다면 김정은이 트럼프를 너무 쉽게 보았거나 트럼프의 수에 말려든 것이다.


이제 주목되는 것은 김정은의 대응이다.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을 복구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하지만 이제 섣부르게 도발하면 김정은은 목숨도 부지하기 어려울 것이다. 미국은 한반도 주변에 대북·대중국 군사작전을 위한 준비를 거의 마친 것으로 알려졌다. 빈 라덴을 잡았던 미 특수부대는 언제든 김정은 참수작전에 돌입할 수 있다. 또 현재 동북아 상황은 몇 년 전과 다르다. 중국이나 러시아가 과거처럼 북한의 방패막이 노릇을 해줄 수 없다. 미국과 무역전쟁을 치르며 경제가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는 시진핑은 제 코가 석 자다. 트럼프가 이번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에서 걸어 나간 것은 중국에 대한 경고이기도 하다. 트럼프가 무서웠는지 시진핑은 이번에 중국 땅을 거쳐 돌아가는 김정은을 만나지도 않았다. 반면 트럼프는 이번 정상회담 결렬로 정치적 입지가 더 다져지고 있다. 매사에 트럼프를 공격하던 민주당과 언론들도 이번에는 긍정적 평가를 내놓았다. 북한 문제에 관한 한 민주당은 오히려 공화당보다 더 강경한 입장인 데다 대(對)중국 무역전쟁에 대해서도 트럼프와 견해를 점점 같이해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과거처럼 김정은이 미사일 발사나 핵실험이라도 한다면 미국이 본격적으로 김정은 정권 교체에 나설 수도 있다. 이미 베네수엘라에서는 우파로 정권 교체가 일어나고 있음을 김정은도 잘 알고 있다.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김정은에게 비핵화 의사가 없음을 확인한 미국은 제재 수위를 더 높이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북한과 거래하는 중국 은행들을  제재하면 김정은은 더 숨이 막힐 것이다. 중국의 손발을 묶은 트럼프가 김정은의 숨통을 더 조이고 있다. 김정은에게는 지금 1분도 고통스럽다. 김정은은 도발할까 아니면 핵을 포기할까? 김정은에게 ‘새로운 길’은 있을까?



위 글은 교회신문 <615호> 기사입니다.


이웅수 집사
KBS 보도국 기자
신문발행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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