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론과 훌]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현실

등록날짜 [ 2019-04-11 16:24:40 ]

갑질, 성격적 파탄, 성적 타락, 마약 등
언젠가부터 영화에서나 있을법한
상류층 일탈행위가 현실에서 너무 잦아
이 땅에 소돔과 고모라 같은 불안감 엄습
악은 쉬쉬할 게 아니라 뿌리를 뽑아야


미국 액션물이나 갱 영화를 보다 보면 너무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장면이 자주 나온다. “실제 저런 일이 우리 주변에서 수시로 벌어진다면 어떻게 살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해본 적 있다. 영화처럼 길에서 악당들이 사람을 쉽게 죽이고 도심에서 경찰과 총격전을 벌이고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무사하게 돌아다닌다면 아마 일반 시민들은 불안감 때문에 하루도 살 수 없을 것이다. 언젠가 미국에 사는 지인에게 “정말 밤거리가 영화처럼 살벌하냐?”고 물어본 적 있는데, 대답은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었다.


영화가 묘사하는 현실이 엽기적이고 잔인하더라도 우리가 그것을 즐겁게 볼 수 있는 것은 순전히 오락을 위해 만들어진 장면이고, 허구(픽션)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영화는 영화고 현실은 현실이기에 극장 문을 나서는 순간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다.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영화를 볼 기회가 있으면 필자는 <에일리언> 같은 SF영화나 정치적 음모나 커넥션을 소재로 삼은 영화를 선택한다. 이런 영화에는 잔혹하거나 양심도 눈물도 없는 인간 말종처럼 타락한 인물이 많이 등장하지만 잠깐 영화에 들어가 이를 즐길 수 있다. 하지만 만약 어떤 동영상이 실제 장면이라면 그것을 똑바로 보기 어렵다. 예전에 이라크에서 IS에게 참수(斬首)당한 기독교인 참수 영상이 인터넷상에 돌아다닌 적 있고 필자에게도 누군가 보내줬지만 끝내 보지 않았다. 보는 것 자체가 소름이 끼치고, 순교한 이들에게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철학자 칸트는 아무리 무섭고 끔찍한 것이라도 안전한 곳에서 스펙터클처럼 바라볼 수 있으면 오히려 숭고함이나 새로운 환희를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숭고함을 느끼기 위해서는 위험이나 무서운 대상으로부터 적절한 거리와 보호막이 있으면 된다. 그런데 만약 이 경계가 허물어지고 우리를 두렵게 하는 것이 경계를 넘어 침투해 오면 엄청난 혼란과 두려움을 준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영화에서나 있을 법한 일들이 대한민국 땅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 공포 영화는 아니지만 수준이 B급쯤 되는 장면들이다. 예컨대 재벌 2세나 3세, 고위 공직자나 정치인들의 상식 이하의 갑질 행동과 성격 파탄적 모습을 대중이 목격하는 일이 너무 잦다. 최근에는 고위층 자녀와 연예인들의 성적 타락과 마약 중독, 이들이 향락을 위해 어울리는 클럽 문화 실태가 속속 보도되면서 우리나라 상류층의 도덕성과 악이 영화보다 더 심하다고 놀라는 사람들이 많다. 영화 <내부자들>이나 <아수라>처럼 재벌, 정치인, 언론인, 검경(檢警) 실세들의 유착과 특권 누리기가 실제 있는 일로 밝혀지면서 현실과 영화의 구분이 무너졌다고 사람들이 한탄하곤 한다. 미디어가 발달하면서 전에는 소문으로만 떠돌던 일들이 동영상 형태로 인터넷에 유포되고 사람들이 영화에서나 볼만한 일을 실제로 목격하면서 충격을 받는 것이다. 유명인뿐 아니라 중·고등학교 등에서 종종 벌어지는 학교폭력, 어린이집 아동 학대, 일반 시민의 싸움 영상은 차마 보기 힘들게 잔인하다. 영화라면 좀 끔찍해도 딴 나라 얘기처럼 감상할 수 있지만, 날마다 뉴스와 유튜브에서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실제 동영상이 넘치는 것은 정말 참기 괴롭다. 내가 사는 대한민국이 소돔과 고모라처럼 변한다는 불안감이 엄습하기 때문이다.


더러운 쓰레기를 흙으로 덮는다고 해도 냄새가 진동하는 것처럼 악은 은폐하고 쉬쉬할 게 아니라 근본적으로 일소하고 단죄해야 한다. 영화와 현실의 구분이 생겨야 상식도 복원되고, 영화도 편하게 볼 수 있다. 현실이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사회는 제정신으로 살 수 없는 곳이다.



위 글은 교회신문 <619호> 기사입니다.


김석 집사
現 건국대 철학과 교수 철학박사(프랑스 현대철학)
신문발행국 논설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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