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론과 훌] 조국 사태와 한미 정상회담

등록날짜 [ 2019-09-26 11:51:43 ]

이낙연 총리 아닌 문 대통령 ‘전격 방미’

“비핵화 협력·동맹 공고화 논의” 발표했지만

북한뿐 아니라 트럼프도 북한과 직거래 선호

‘조국 논란’ 뒤로 한 채 갑작스런 외교 행보

사태 희석 의도 아니냐는 의구심 자아내


조국 사태로 혼란에 빠진 나라를 뒤로하고 문재인 대통령이 내일 뉴욕으로 떠난다. 문 대통령은 26일까지 미국을 방문하면서 유엔 총회에 참석하고 미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할 예정이다. 유엔 총회는 원래 이낙연 총리가 참석하기로 돼 있었지만 갑자기 문 대통령이 자신이 참석하는 것으로 전격 결정했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이런 결정은 공교롭게도 지난 9일 북한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이 미북 실무대화를 제의한 직후에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유엔 총회가 다 해결하고자 하는 자리라기보다는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고 말해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파기나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협상보다는 북한 핵 문제가 집중적으로 논의될 것임을 시사했다. 이번에는 마치 무언가 될 듯한 분위기를 풍기면서 말이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문 대통령의 방미 결정은 조국 사태와 맞물려 의구심을 자아내고 있다. 미 안보보좌관 볼턴의 해임과 미북 실무협상 재가동이라는 상황 변화가 있긴 하지만,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미북 실무협상에 끼어들어 이를 대대적으로 홍보함으로써 조국 사태를 희석하려는 의도가 깔린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미북 비핵화 협상에서 문 대통령에게 기대할 역할이 없기 때문이다. 애초에 비핵화 실무협상을 제의한 북한의 의도가 다른 곳에 있는 데다 북한도 문 대통령을 극도로 꺼리고 있다.


이와 관련해 먼저 최선희의 발표가 이달 초 중국 왕이 외교부장의 북한 방문 직후 이뤄진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왕이는 지난 2일부터 사흘간 북한을 방문해 리수용 북한 외무상과 회담을 가진 바 있다. 두 나라는 대외적으로는 북중 수교 70주년을 맞아 김정은을 베이징에 초청하기 위한 것이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정통한 중국 외교소식통은 김정은이 먼저 수교 70주년을 맞아 다음 달 베이징 방문 의사를 표명했으며 중국 당국은 김정은의 베이징 방문을 받아 주는 대가로 미국과의 비핵화 관련 대화에 나서도록 요구했다고 전했다. 중국은 교착 상태에 빠진 미북 비핵화 협상을 중재해 미·중 무역전쟁에서 미국의 압박을 조금이라도 누그러뜨리려 하고 있고 김정은은 역시 베이징 방문을 성사시키기 위해 마음에도 없는 미국과의 비핵화 실무협상에 나선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김정은은 지난 6월 30일 판문점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 비핵화 실무협상 재개를 약속해놓고도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거부해왔다. 비핵화할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북한이 먼저 협상 재개를 제의했지만, 시간만 끌다 끝날 가능성이 큰 것이다.


다음으로 문 대통령에 대한 북한의 강한 거부감을 살펴보자. 김정은은 이미 지난 4월 시정연설 때 문 대통령에 대해 “오지랖 넓은 중재자 행세하지 말라”고 깎아내린 바 있다. 또 지난달에는 문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를 비난하며 “남조선 당국자들과는 더 이상 할 말도 없고 다시 마주 앉을 생각도 없다”고 했다. 문 대통령에 대해 미북 협상에 끼지 말라고 경고한 것이다. 더구나 북한은 그동안 실명을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누가 봐도 문 대통령임을 알 수 있게 욕설에 가까운 비난을 퍼부어왔다. “정말 보기 드물게 뻔뻔한 사람”, “북쪽에서 사냥총 소리만 나도 X줄 갈기는 주제에”, “바보”, “겁먹은 개”, “삶은 소대가리도 앙천대소(仰天大笑)할 일” 등 보통 사람들 사이에서도 입에 담기 어려운 막말로 문 대통령을 비난했다. 이런 걸 문 대통령이나 외교·안보 라인도 모를 리 없을 텐데 성과를 기대하고 한미정상회담에 나서는 것이라면 바보이고, 알고도 나선 것이라면 문 대통령 역시 진짜 목적이 비핵화 논의에 있지 않다는 것을 방증하는 셈이 된다. 이 때문에 이번 방미 목적에 의구심이 제기되는 것이다.


더구나 문재인 정부의 연이은 반미·반일 행보로 한미관계도 최악인 상황이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을 파기하고 이를 복원하라는 미국의 압박에 대해 용산기지 조기 반환 요청으로 미국을 압박하고 있다. 미국은 지소미아 종료일인 11월 22일까지 복원하라는 최후통첩을 문재인 정부에 보내놓은 상태다. 욕설에 가까운 말로 모욕을 주는 북한에 대해서는 제대로 말 한마디 못하면서 미국과 일본에 대해서는 할 말을 한다는 문재인 정부에 대해 미 트럼프 대통령은 무슨 생각으로 한미정상회담을 진행할까? 이번에도 2분짜리 정상회담이 되지 않길 바랄 뿐이다. 북한뿐 아니라 미 트럼프 대통령도 북한과 직거래를 더 선호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미국, 일본, 중국뿐 아니라 북한에까지 모두 외면당하고 있다.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지만 혹시라도 조국 사태를 덮기 위해 한미 관계나 남북 관계를 이용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만약 그렇다면 더 큰 역풍을 몰고 올 것이다. 지금 경기도 파주와 연천 일대는 북한에서 넘어온 것으로 추정되는 아프리카 돼지 열병이 확산되면서 초비상이다. 이럴 때 남북 공동방제가 필요하지만 틈만 나면 ‘우리 민족 끼리를’ 외쳐대는 북한이 정작 이럴 때는 협조를 거부하고 있다. 현 정부가 진정으로 국가 안보와 국민의 안위를 위한 외교를 해주기를 바라는 건 지나친 기대일까?



위 글은 교회신문 <642호> 기사입니다.


이웅수 집사
KBS 보도국 기자
신문발행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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